Pink: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Pink 분홍은 희망의 표시입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기운을 북돋우는 긍정적인 색,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 말해주는 색입니다.
'게으름과 수면을 이야기하면서 가족상담 이야기까지 굳이 넘어가야 할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냥 아래와 같은 서사로 이야기를 매끄럽게 구성해볼 수는 없을까 하는 환상도 있었습니다.
나는 프리랜서 선언을 한 이후, 게으르고 나약한 자아를 이겨내고,
멋진 루틴 계획법을 기획하고, 마침내 부지런한 이가 되었습니다.
꺼내기 껄끄러운 서사를 생략하고 단정한 결론에 이를 수는 없을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빼고는 나를 지하로 끌던 마음의 짐을 덜어낸 이야기를 해낼 수가 없고, 일상의 회복을 이어나간 아주 느린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이어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상담은 분명 제 인생에 변곡점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습관을 들여다보고 -> 그 안에 분노와 공포를 발견하고 -> 꺼내어 놓는 작업을 통해 조금 단단해지고 -> 무작정 걷고 -> 몇 번의 큰 사건과 시행착오를 통해 가족상담을 하고 -> 루틴을 만들어 보고 -> 다시 일상을 바로 들여다본 후에야 비로소 일상의 회복이 이루어졌으니까요.
퇴사 후 꾸준히 다녔던 영어 수업은 '마음 돌봄의 장'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 안에서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자기혐오를 발견했습니다. 게으름과 수면도 모두 못난 내게 주어진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쩌면 나는 행복해지는 노력을 하기 싫은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확신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이 더 나아진다고 해도, 그래도 결국 가족 문제로 내 발목이 잡힐 거고, 그것은 반쪽짜리 일 수밖에 없다는 것, '결국 나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슬프고도 확신에 찬 결론이었습니다.
마음 돌보기 연습은 그런 저에게 작은 용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분노와 공포를 벗어나 내가 해보고 싶은 나를 위한 시도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가족들에게 용기 내어 '가족 대화 프로그램'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엉성한 8주짜리 프로그램이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제게 왔던 큰 결심 중 하나였습니다. 마음 돌봄의 시간이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만큼 이 과정을 가족들과 함께 해보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로 함께 상담을 받아보자고 하면 분명 거부감이 클 것 같다는 생각에 감정을 털어놓는 자리를 마련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성과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될 듯 안 될 듯 서로 감정을 뱉으려 하다 멀어지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는 단어가 나올까 노심초사하기 바빴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제가 생각보다 감정의 타격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직 서로에 대한 감정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그 감정을 온전히 들어주고 중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상처를 주고받은 상대에게 직접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도 위험한 시도라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남은 것은, 이 문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 한 나'에서 '위험할지라도 무언가 시도해 본 나'로 한 발짝 걸어 나가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어설프고 무모했던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덕분에 저는
결국 행복해질 수 없더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본다.
라는 문장을 마음속에 남겼습니다. 적어도 나는 시도했고, 원하는 만큼 다시 시도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충분히 시도해본 후에 후회 없이 나를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자.' 가슴 아픈 서늘한 고백임과 동시에 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다짐이었습니다.
가족상담을 받는 가족이 있다고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그 가족은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운이 좋은 걸까요? 운이 좀 나쁜 걸까요?
우리는 결국 가족상담을 받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특히 이 시작을 내켜하지 않는 아빠가 있었지만, 상담이라는 것이 '정신질환이 있는 중증 환자들만이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했던 가족 대화 프로젝트와 같은 '가족의 대화를 원활하게 하는 시도'라면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도 한 몫했습니다.
가족상담 내내 저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이렇게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중재자를 가운데에 두고 서로의 역사를 객관화해보고, 상처 받았던 사건에 대해 각자의 입장과 감정을 말해볼 기회가 있다는 것에 마음속 깊이 안도했습니다.
가족상담 내내 비교적 단순한 몇 개의 생각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상기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많이 힘들었구나. 내 발목을 잡고 있던 많은 상처들이 있었구나. 그런데 나의 가족도 나만큼 힘들었었구나.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상처를 안고 있었고, 또 해결하려 애썼구나. 우리 모두 상처 받았었구나'.
그리고 마침내 한 개의 문장이 저에게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 남아 여기에 와 있구나
그것은 '생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좋았던 시간, 힘들었던 시간을 거쳐 나와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상처를 가까스로 꺼내 이야기하는 우리의 모습은 행운으로 표현하기에 모자라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우리는 불행했습니다. 그리고 또 운이 좋았습니다. 가족 안에서 발화한 상처는 제 뿌리가 되어 제 잎을 건강하게 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잎 끝에 기름칠을 하기 바빴던 시간을 지나, 흙을 살피고 물 주기를 시도했습니다. 가족상담을 받았던 2~3개월 남짓의 시간 동안 많이 흔들렸고, 너무 소진되어 그만두고 싶다는 강한 유혹도 받았지만 결국 그 끝에 다다랐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일상이 저에게 왔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일상. 중간에 끝날 수도 있었는데 끝끝내 살아남은 자의 일상. 나를 위해 무언가를 시도해 본 자의 일상. 아픈 상처를 밖으로 꺼내어 바라본 자의 일상. 저의 일상은 그렇게 천천히, 아주 느리게 다시 회복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