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환자에게 루틴이란

Black: 나와 세상 사이의 장벽

by Bora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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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검정은 자기 자신과 외부 세계 사이의 장벽을 만들며, 외부의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색입니다.





게으름 뒤에 불면이 따라왔습니다.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였습니다.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일 일이 별로 없는 날이 많아지면서 불면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루에 써야 하는 에너지의 총량'이 미달되는 날이 많아지자 불면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것,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스스로 가장 큰 원인을 '컨디션 관리의 부족'으로 여겼습니다.


시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 게으름
컨디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 불면증



참으로 쉬운 계산법이지요. 동시에 다분히 자기 파괴적인 원인규명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불면 전에 게으름이 있었지만 그 게으름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것이 정말 시간관리의 문제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불면증의 시작은 결혼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새벽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빠의 고함소리가 들렸고, 엄마의 울음 섞인 윽박도 들렸습니다. 싸움을 알리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의 전화였지만, 결국 전화 수신자의 존재는 잊혀진 채 고성만이 수화기 너머에 남았습니다. 이상하게 전화를 끊어 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이후, 잠들기 전 휴대폰을 방해금지 모드로 설정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전화의 공포는 밤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혹시 밤 새 걸려온 비극적인 전화가 없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저에게는 제 뿌리는 흔드는 가족의 문제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언제든 제 심연에서 터질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시한폭탄. 그 폭탄은 늘 제대로 터질 준비를 마치지 않은 채 작은 폭죽 같은 파편을 가슴에 남겼습니다.


불안하면 스마트폰으로 쇼핑하기, 화가 나면 소파에 누워 TV보기,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굴기,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마음이 쿵 내려앉을 때는 '나는 왜 이러지'하며 끝없이 자책하기.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게으름의 시작은 불안이었을 것입니다. 불안한 나를 일으켜 세울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았고, 우울한 기분이 들면 더욱 몸을 일으키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사회적 가면을 쓰고 괜찮은 척 잠깐 잘 지낼 수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완전한 게으름뱅이 모드로 돌아갔습니다.



삼십 년을 켜켜이 쌓아 온 마음의 불안과 동요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심란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집 주변을 돌며 한 시간을 걸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걸으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시기에 하정우의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무명시절, 걷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어 무작정 걸었다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 일단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최소한의 게으름에서 탈피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복잡하고 무거운 정신에게, 땀이 선사하는 정직한 운동성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걷다 보면 어느새 발에 모터가 달리며, 내가 걷는 건지, 내 다리가 걷는 건지, 뇌가 걸으라 시키는지, 발 끝에서 타이어가 나온 건지 헷갈리는 시점이 찾아오지요.



걷는 동안에는 잠깐 잔가지처럼 올라오는 근심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가끔씩 이 문제에 빠져있는 나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탁 트인 한강변을 걸으면 문제의 원인들이 동일선상에 나열되고 백지상태에서 곱씹을 수 있는 틈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깐 SNS와 연동된 나를 멈추고, 순간의 바람에 집중해 보기. 눈알만 굴리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두 다리로 어딘가 이동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에 차보기. 내 마음대로 일이 돌아갈 수 없음을 알지만, 적어도 한 시간의 걷기 코스만큼은 내 뜻대로 해볼 수 있다는 일말의 자신감. 걷기가 나에게 준 성과였습니다.




무언가 배우고 싶다는 것.
근심이 많을 때는 걸으면 좀 나아진다는 것.



감사하게도 두 가지 루틴이 선물처럼 제 일상에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게으른 일상은 계속되었습니다. 동화처럼 갑자기 근면 모드의 내가 생기지는 않았지요. 걷기 싫고 몸이 찌뿌둥한 날도 있고, 배우러 가는 수업 날에도 마음이 울적한 날이 많이 있었습니다. 결국 적당히 이상적인 빡빡한 일상의 나로 한 번에 변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스며들 듯, 내게 내려앉은 루틴을 통해 아주 작은 일상의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적어도 한 명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살아갈 의미가 생긴다는 것처럼, 적어도 한 두 개의 루틴이 저를 지탱해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을 하루 종일 게으름뱅이처럼 보내도 내일 일어나 걷기를 해볼 수 있다는 것, 그런 활동이 나에게 하나쯤 마스터키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안심시켰습니다.


걷기와 배움은 단순한 단어적 의미를 벗어나, 삶을 채워주고, 나를 지탱해주는 소중한 활동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소중한 단어를 품고 산다는 것, 그것이 루틴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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