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 호기심이 주는 힘
Yellow : 호기심이 주는 힘
Yellow 노란색은 삶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켜주는 색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호기심에 영감을 주며, 정신적인 도전을 의미하는 색입니다.
말 못 한 한 가지 비밀이 있었습니다. 온종일 집에 붙어 있어야 하는 날이면 누워서 한 걸음도 떼지 않는 폐인이 되는 것. '회사를 박차고 나온 여유로운 프리랜서'라는 있어 보이는 수식어 뒤에 있는 나의 진짜 모습.
가끔 스마트폰에 기록되는 하루 걸음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날이 있었습니다.
하루 걸음수 7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온 어느 하루도 아니고, 너무 아파 끙끙 앓던 날도 아니었습니다. 나의 에너지를 어떠한 활동에도 쓰지 않은 날, 아침부터 소파에 누워있는 채로 남편의 출근을 배웅(?)하다가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저녁까지 그 자리, 그 자세 그대로 움직임 없이 누워있는 날.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살이 찌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면의 질이 현저하게 낮아졌습니다. 잠을 깊게 못 자는 상태에서 맞는 까칠한 아침이 늘어갔습니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진정제처럼 찾아오는 작은 성취는 내면보다 껍질에 공들일 명분을 마련해주었고, 어느 순간 게으름을 고백할 용기가 내게 없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런 나에게도 한 가지 빼먹지 않는 루틴 같은 게 있었습니다. 바로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영어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 현대인, 도시인에게 늘 빠지지 않는 필수 덕목이 영어공부가 아니던가요. 집에서 나와 집 밖으로 나가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세팅되고, 무엇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영어가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가는 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영어 단어보다는 '영어가 왜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먼저 던져주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영어공부가 하고 싶은 이유, 학원이라는 장소에 출석하고 싶은 이유,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을 만나고 싶은 이유, 밖으로 나오고 싶은 이유. 다 다른 질문이었지만 답은 비슷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루틴 속에 있다는 느낌, 그것을 누가 봐주고 있고, 또 내가 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은 게으름에 만연된 내 일상에 작은 틈과 같은 루틴이었습니다.
‘수업을 듣고 싶다'는 내 욕망을 발견한 것은 나를 보호해주는 방패막이되어준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내용을 듣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게으른 나를 직면할 자신을 없었지만, 대신 내가 원하는 활동을 소소하게나마 이어갈 의지는 있었기에, 그 루틴을 부여잡으며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자, 시간이 많이 주어져도 성취해내지 못하는 자, 원하는 것만 많고 실천해내지 못하는 자, 무능하고 비효율적인 자.' 내 안에서 늘 이런 비난의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하지만 내게도 하나의 루틴이 존재한다는 얕은 방패막 하나를 부여잡고 그 뒤에 숨죽여 버텨낼 수는 있었습니다.
이제, '내 결핍은 나의 게으름에 있다'고 용기 내어 말하고 싶습니다. 수면을 살펴보고, 끝없이 올라오는 내 근심을 살펴보고, 가족에 관한 원망과 공포를 들여다보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창작 활동의 끄나풀을 잡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수업을 듣는 일에 집중해볼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고, 위의 것들 중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무작정 걸어보도록 나를 독려하는 것. 모든 것은 내 결핍이 게으름에 있다는 것을 인지한 후에 벌어진 일들이었습니다.
게으름을 고쳐 온전히 부지런한 나로 바꾸어 보고 싶다는 멋진 포부는 없습니다. 게으름이라는 결핍은 늘 내 안에 있을 것이고, 부단히 애쓰지만 아주 느리게 바뀌어가는 모습을 스스로 지켜봐 주며 살아야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결핍이라면 그 모습을 버텨내 주며 살아가는 것도 꽤 괜찮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추기보다 용기 내어 드러내고 말함으로써 내 게으름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적어도 밖으로 내뱉는 용기를 지닌 순간에는, 내면에서 올라오는 비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저에게 힘을 줍니다.
우연히 게으른 자를 만나면 자랑스럽고 비밀스럽게 치부를 꺼내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기도 하겠지요. 언젠가 게으른 자들이 모여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게으른 자들의 느슨한 루틴을 함께 수행하며 공생하는 공간이 되겠지요. 물론 언제 오픈할지는 모릅니다. 저는 게으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