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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Yoo May 24. 2020

불완전한 문장들 - 적당한 무게로 살고 싶은 마음


적당한 무게로 살고 싶은 마음

하루가 다 끝난 시간에도 노트북 앞에 앉아 본다. 버겁게 느껴지기보다 하루의 끝에 엄숙한 정산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매일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낀다. 스스로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허락하며 살고 있다. 그만큼 의무감을 느낀다. 느껴지지 않는 날은 그 무게를 일부러 살짝 감지해보려고 한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살고 싶은 나의 중심에 기록을 둔다. 개인적인 차원의 의미인지 사회적인 가치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느낀만큼 기록하기'를 나의 과제로 가져가고 싶다. 매일의 글쓰기로 나에게 의무를 지어주고 싶다. 매일의 나를 마감하며 적당한 무게로 살고 싶다.


나를 설명하는 단하나가 있을까?

오늘 아침 모뉴클에서 들었던 말 중에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 "일이 완벽하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이 프로젝트가 나라는 사람을 보여줄 수 있는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일과 나를 동일시하다보면 생기는 혼란이 있다. 일에서 생긴 실수를 나라는 사람의 치명적 결함으로 받아들인다거나, 한 번의 일로 나의 가치가 전부 입증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완벽주의에 집착하다가 일의 완성 자체를 그르쳐서는 안된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동시에, 핵심은 같지만 반대적 입장의 문장도 떠올랐다. 임경선 작가의 말이었다. '내가 쓴 책이 나보다는 나아야지.'(뉘앙스는 비슷하나 워딩은 정확하지 않음.) 이 역시 일과 나를 분리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책을 읽고 나면 사람들은 그 작가를 환상적으로 보는 경향이 생긴다. 이 작가는 늘 훌륭한 결론에 도달하겠지, 이런 걸 깨달은 사람일거야 등등 책쓰는 자아와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분리하여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늘 책처럼 멋진 문장, 완성된 결론으로 살 수는 없다. 책은 나의 것 중에 좋고 좋은 것, 다듬고 다듬어진 것을 추출해서 보여줄 수 밖에 없다는 말로 이해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아름다운 그릇에 담아 전달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나는 아니다. 때로는 아름다운 노력이 나 자체이기도하고, 어떤 실수가 나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완전한 것과 엉성한 것, 둘 다 나일 뿐. 하나로 나를 귀결하려는 성급한 결론 앞에서, 나는 일과 나를 분리하는 능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위해 일하고 있나?

라이프컬러링 수업을 하다보면 에너지가 급격히 소진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것에만 집중할 때이다. 참가자의 즐거움을 충족하기 위해 나의 즐거움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순간, 에너지가 과도하게 흐르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 나에게 이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이 일에서 나의 즐거움이 충족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을 놓친다면 나는 즐겁게 일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건강한 회고, 건강한 평가

기록의 중요성을 상기하면서, 동시에 회고의 중요성을 상기한다. 어떤 프로젝트가 마감되었을 때 이해관계자를 모아 회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뉴클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상기했다. 모임에서 마지막 5분,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모임의 만족도와 느낌을 결정하듯, 마지막으로 모여 회고하는 시간에 프로젝트의 마감, 정산, 평가가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프로젝트가 아닐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일을 마치고 나와의 회고시간을 갖는 것.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놓쳤는지. 내가 나아가는 과정에 이 일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 일에서 나에 대해 발견한 점은 무엇인지. 이런 건강한 회고를 더 많이 연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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