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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24. 2020

날씨가 갰다

개와 고양이 이야기

날씨가 갰다. 오전만 해도 다시 비가 올 것처럼 흐리고 꾸물거리는 날씨였는데, 오후가 되어 커피 한잔 마시는 동안 거짓말처럼 하늘이 파랗게 변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파랗게.     


고양이도 오랜만에 햇볕에 몸을 말리고, 말리려고 펼쳐 놓은 우산이랑 놀다가, 또 말리려고 꺼내 놓은 박스랑도 놀다가 내가 나가면 야옹거리고 따라다니다가, 반응이 없으면 혼자 누워 쉰다. 날이 개니 새삼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고 온 뒤를 생각하며 여러 가지 상상을 했었는데, 지금 이 상황은 내가 그때 대체 뭘 생각하긴 했었나 싶은 상황이다. 중성화 수술을 하고 와서 하루 반을 안 보이더니 저녁에 나타나서 신나게 밥을 얻어먹었다. 그러더니 우리 마당에 거의 자리를 잡았는데, 이 녀석 때문에 동네 수컷 고양이들이 다 모여들고 있다. 중성화도 했는데 수컷 고양이들은 왜 나타나는 건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도는 탓에 내가 다 신경이 곤두선다. 궂은 날씨 때문에 더 심란했고, 다 불쌍한 고양이인데도 우리 집 고양이(정들까 봐 이름도 못 지어줬다) 때문에 다른 고양이들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어려운 건, 수컷 고양이 중 유독 가까이 오는 고양이를 TNR 시켜주면 좋을 것 같아서 통덫에 먹이를 넣어 두었는데, 우리 집 고양이가 그것까지 들어가서 먹어버리는 것이다. 밥 먹다가 덫에 잡혀서 중성화 수술도 하고 왔는데 대체 덫을 왜 안 무서워하는지.. 나도 형용이도 여전히 경계하니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람과 가까워져서 다른 곳에서 위험에 처하게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되기는 한다. 그렇다고 당장 집 안에 들여와 키울 수도 없고.. 얼마 전 비가 많이 올 때 다른 고양이가 왔다 가고 나서 우리 집 문을 열어 주자 한 발짝 안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방충망까지 닫으려고 하자 바로 나가버렸다. 그 뒤로는 아예 들어와 버릴 것 같아서 틈을 오래 주지 않고 있다. 같이 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우리 집은 너무 좁아서 고양이와 같이 살 수 없고, 집에 살게 되더라도 밖을 들락날락거릴 수밖에 없을 텐데 그걸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한 발짝 들어왔다.

이렇게 고양이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동시에 강아지들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아프다. 하나의 이슈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고양이에 강아지 세 마리까지.. 그리고 이 모든 게 다 내가 자초한 일 같아서 무능력하게 일만 벌여 놓은 사람 같아 자책감이 든다.


비가 계속 올 때는 강아지들이 걱정은 되면서도 밥 주러 가기는 너무 귀찮고, 그래서 자꾸 미루는 내 모습도 싫고, 마당에 있는 고양이만 챙기게 되는 것도 강아지들에게 미안했다. 날이 궂으니 중성화 수술하러 나가는 것도 미루게 되는데, 중성화하러 가는 날은 또 어떻게 데려가야 하는지 하는 고민까지,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막상 해 보면 될 일을 미리 생각만 많이 하는 것 같긴 하지만, 날씨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마음만 급하고 일이 잘 될지 걱정만 자꾸 많아졌다.      

 강아지들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이어서 해 보자면, 강아지들은 확실히 고양이보다 손이 많이 가는 느낌이다. 소형견이라면 모르는데, 보리, 아이비, 무무는 각각 중형견 이상이니까 켄넬에 넣어서 들기도 쉽지 않고, 안고 갈 수도 없고, 켄넬 없이 생전 처음 타본 자동차 뒷좌석에 얌전히 앉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고양이는 우리 집 마당에서 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배변은 내가 모르는 곳에 가서 하고 오고, 그루밍도 하니까 밖에 있어도 강아지보다는 좀 더 깨끗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강아지도 묶여 있지 않다면 적어도 배변 공간과 자거나 먹는 공간이 분리는 되겠지. 묶여 지내는 개들을 생각할 때 가장 안쓰러운 부분 중 하나가 그 부분이긴 하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산책만 시켜준다면 자기가 자거나 먹는 곳에 똥을 싸진 않겠지만 보통 개를 바깥에 묶어놓고 키우는 사람들이 산책까지 시켜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토요일에 보리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한번 씻기고 데려가고 싶지만 계속 비가 오는 데다 민박집에도 손님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고, 오늘날이 갰으니 산책은 한번 하고 내일 아침에 데려가려고 한다. 수술하고 나서 회복 기간 동안 잘 쉬게 해 줘야 하는데, 어디서 쉬게 해 줘야 하는지, 켄넬 채로 마당에 둬야 하는지, 창고에 있게 해야 하는지 어느 방법도 마음이 푹 놓이는 일이 아니라서 걱정이 많이 된다. 생각이 이쯤 되니까 중성화를 해 주는 게 맞는 일인지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앞으로 강아지의 견생을 생각할 때 지금 잠깐 우리가 힘들고, 강아지도 고생하더라도 해 주는 게 맞겠지.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어쩌면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몇 번의 임신을 하고, 또 그렇게 태어난 강아지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알 수 없으니까. 세상에 불쌍한 생명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대체 모를 일이다. 이 답을 찾을 수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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