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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24. 2020

보리 중성화 수술

개와 고양이 이야기

집에 돌아오니 고양이가 승애집 문 앞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마치 어서 오라는 듯. 우리는 보리가 들어가 있는 켄넬을 둘이 영차영차 들고 왔는데, 우리가 들어와도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고양이가 놀라 움직인 건 켄넬 안에서 보리가 나온 다음이었다. 보리는 마취도 덜 풀리고, 한 시간 동안 차 안에서 고생한 터라 밖에 나와서도 정신이 덜 차려져서 고양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겠지만, 고양이는 의외의 동행에 놀라 금세 있던 자리에서 달아났다. 하지만 멀리 가지는 않고 마당에 깔린 데크의 끝 부분에서 보고 있었다. 정말 이제 마당 고양이가 되었나 보다. 개가 나타나도 없어져버리지 않고 마당에 있다니.

중성화 하고 집에 돌아온 보리. 우리집에 당분간 두기로 했는데, 우리집도 지낼 곳이 마땅치는 않다. 그래도 원래 집보다는 깨끗하다는 걸 위안으로 삼기로 한다.

사실 보리를 데려가면 얼마 전 보리처럼 중성화 수술을 하고 아직 회복 중인 고양이가 어디로 도망가려나 걱정이 조금 되기도 했는데,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를 더 걱정해야 하려나보다. 보리를 당분간 작업실 옆에 있는 빈 창고에 두기로 했는데, 다 치워두고 바닥도 깔아주고, 보리 집보다는 깨끗하다고는 해도 여전히 바깥이라서 고양이나 다른 벌레들이 다가가서 괴롭힐까 봐 걱정이 됐다. 그런데 고양이도 안 가고 마당에 있으면서 우리가 강아지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라서, 나중에라도 강아지한테 가서 자극하지는 않을지 불안한 것이다.

일이 이쯤 되니까 정말 우리 집 마당이 동물농장이 된 것 같고, 나나 형용이도 동물들 챙기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말하자면 ‘현타’가 온 것인데, 이건 오늘 동물병원에서 크게 느꼈다.


오늘 아침 11시까지 동물병원에 가야 해서 9시부터 보리를 켄넬에 태운다, 차에 싣는다, 수선스러웠다. 그 와중에 아이비까지 줄이 한번 풀려서 형용이가 흥분한 보리와 아이비 사이에서 아이비를 다시 묶어놓느라 힘을 뺐다. 그러는 중에 무무도 짖고, 난리의 전조였다. 그래도 보리는 반 억지로 켄넬에 넣어 차에 태워 갔는데, 제주시까지 가는 동안은 나름 잘 가다가 동물병원을 확인하고 주차할 곳을 찾아 시내에서 서행하는 동안 켄넬 안에서 토를 했다. 결국 급히 근처에 차를 세워 보리와 내가 먼저 내리고 형용이는 주차를 하고 오기로 했다. 켄넬에 해 놓은 토는 형용이가 다 닦고, 나는 보리 닦고.. 생각보다 토를 많이 해 놨다. 보리는 차에서 내리니 살 것 같은지, 낯선 곳인데도 신이 나서 이곳저곳 냄새 맡으며 걷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게 문에 자기가 비치자 신기한지 한참 쳐다보기도 하고. 자기 모습을 알아보는 듯 신기해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는데, 새삼 보리는 한 번도 거울을 본 적이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 타고 어딘가 멀리 가는 것도 처음이었을 텐데, 진작 켄넬 연습도 할 겸 가까운 해변에라도 데리고 나갔다 와 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강아지도 아닌데 못 해준 것이 미안하고, 아쉽고,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키우겠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답답한 현실이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신이 난 보리. 지나가다가 가게 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금방 적응해서 신이 난 것 같다. 보리는 한 번도 거울을 본 적이 없구나.

병원에서 더 그런 것을 느꼈는데, 보리는 걱정과는 달리 병원에서는 너무 얌전하게 잘 있었다. 보리 이름을 불러 주위를 돌릴 필요도 별로 없었고, 앉으라는, 한 번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미션을 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병원에 있는 강아지나, 다른 사람들이나 강아지들이 오갈 때 관심을 보이는 정도였을 뿐 대체로 우리 가까이에서 만져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는데, 전에 없이 예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도 했다. 하긴 집에 있을 때는 우리가 가면 무조건 일어나 나오는 게 일이었고, 산책을 가서도 주로 걷거나 냄새를 맡거나 하지 얌전히 앉아 있을 일은 별로 없었으니까 그런 모습을 볼 일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병원에서는 너무 예쁘게 잘 앉아 있고, 별로 낯설어하거나 불안해하지도 않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주변을 살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동물 병원의 조명 때문인지 오늘 날씨 때문인지 밖에서 나와 보니 정말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보리는 내 강아지가 아니었다. 내 강아지였다면 목욕도 시켰을 것이고, 예방접종도 하나도 안 한 채로 이렇게 클 때까지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내가 보호자였다. 나와 형용이가 한 시간을 차를 타고 보리를 병원에 데려갔으며, 보호자란에 이름도 썼고, 보리가 의지하는 건 우리뿐이었다.

병원에서 너무 얌전히 있는 보리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한 가족이 강아지를 데려와 진료를 보고 있었고, 그다음에도 꽤 많은 사람과 강아지들이 오갔다. 처음 진료를 보고 돌아간 강아지는 한눈에 보기에도 축 늘어져 많이 아파 보였는데, 할머니와 부부인 듯 보이는 남녀가 함께 있었다. 얼핏 듣기에도 강아지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 몇 가지 검사를 더 하고, 의사 선생님이 ‘내 강아지라면’을 가정하고 얘기했다. 가족들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고, 여자 보호자의 얼굴은 운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계산한 병원비는 20만 원쯤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아기 진돗개를 데리고 온 커플이 있었는데, 예방접종을 하고, 몇 가지를 샀는데 5만 원 정도를 내고 갔고, 포메 성견과 새끼를 데려온 사람은 무슨 검사를 했는지 오래 있진 않았는데 10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내고 갔다. 맡겨둔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러 온 사람도 20만 원 남짓한 비용을 내고 갔다. 그리고 어떤 분은 강아지 소변에 또 피가 조금 섞여 나왔는데 요로결석이 재발한 건 아닌지 잠깐 상담을 하고 갔다. 그분은 유기견을 데려와 키우고 있다고 했는데, 중성화 수술은 물론 성대 수술을 두 번씩 했고, 요로결석 때문에도 큰돈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돈 보다도 개들이 아파서 마음이 아픈 건 물론이고, 집안 분위기도 어두워진다고 했다.

첫 번째 가족이 나가고 나서 보리 순서였고, 그 사이 요로결석을 상담하러 온 분이 다녀갔고, 보리가 피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진돗개 가족과 포메 가족이 다녀갔다. 우리는 중성화 수술비용은 지원을 받았는데, 혈액검사를 안 하고 수술을 진행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고양이는 안 하고 했을 것이다), 5만 원을 내고 추가로 하기로 했다. 심장사상충 검사는 지원 항목에 있는 줄 알고 검사를 해 달라고 했는데 전화해서 물어보니 심장사상충 검사도 별도로 해야 한다고 했다. 보리는 수술에 들어간 후였고, 인터넷으로 심장사상충 검사가 혈액검사는 13만 원, 키트 검사는 4만 원 정도라고 했다. 비용 걱정이 너무나 많이 되기 시작했다. 13만 원에 혈액검사 비용까지 하면 18만 원이었고, 그 돈은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큰돈이었다. 8만 원이 없어서 충치 치료를 미루다 결국 금으로 때운 게 빠져서 고산 치과에 가지 않았던가. 7만 원인 레진과 1만 원인 GI치료에서 선택은 당연히 GI치료였고.

보리가 아무리 예쁘고,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도 실제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보리가 우리 강아지라고 할 때, 나이가 들어서 이런저런 병원비가 나온다고 하면 과연 그걸 다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선뜻 개 한 마리를 키우겠다는 말이 안 나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보리를 우리 개라고 데려와서 키운다고 해도, 그러면 아이비는, 무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무와 아이비

보리는 우리 개는 아닌데 병원에 데려가 중성화 수술을 하고 다시 데려오는데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꼬박 걸렸다. 집에 와서도 지낼 곳을 마련해 준다, 밥을 준다, 약을 먹인다 한두 시간이 훌쩍 가고, 지금도 또 이렇게 보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입양을 홍보하는 글을 써야 하는데, 대형견이 입양을 가는 일이 쉽지가 않다는 걸 아니까 홍보에 초점이 맞춰진 글도 잘 안 써진다. 어제 보리를 산책시키고, 집에 들어와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서 보리가 오늘 무사히 잘 다녀오고, 앞으로 행복한 일만 많았으면 좋겠다고 썼다. 병원은 어찌어찌 무사히 잘 다녀왔다. 병원비 무서운 것도 실감하고, 중성화시킨다고 병원에 가는 일이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고 힘든 일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그래도 해 봤으니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다. 보리가 앞으로 행복하려면 좋은 곳에 입양을 가는 것 말고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입양을 보내는데 더 애를 쓰는 것 말고는 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고양이와의 불편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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