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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r 27. 2021

집 없는 설움

제주 살이

집 없는 설움을 갑자기 느끼게 되었다. 자취 생활이 10년이 넘었고, 내 집 없이 남의 집에 전세나 월세로 사는 것이 너무 당연했는데, 갑자기 ‘집 없는 설움’이라는 관용구가 확 다가왔다. 그런 말들이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만들어진 말들이고 보면 나도 앞으로 그런 말들을 실감하게 될 날들이 더 많아지겠지.

얼마 전에야 ‘마음이 찢어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같은 표현들을 실감하게 되었으니까. 알 것 같은 것과 아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어쩌면 지금 느끼는 집 없는 설움도 더 심각한 상황을 만나고 보면 지금 일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한 달쯤 전부터 보일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고, 그전부터 수도세가 이상하게 많이 나왔었다. 보일러에서 물이 새는 것 때문에 수도세도 거의 4배 정도 나오고 방바닥에서 물기도 올라오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문제는 그전부터 제대로 해결했어야 하는데 적당히 넘어가서 생긴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서 그런 생각은 아무 소용없지만.. 당장 집을 구하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창문 아래 벽지 부분에 곰팡이가 있었던 것도 결로 현상 때문일 거라고 믿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방바닥 틈새로 계속 습기가 올라오는 건 이상하긴 했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보일러에서 물이 콸콸(이 표현도 마찬가지다) 새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겨우 내 보일러에 큰 문제없이 지나간 것은 그중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하긴 내가 없었을 때 파트너 혼자서 물이 새는 것을 발견하고 며칠 동안 고생을 했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신경을 썼고. 어쨌거나 이제는 손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서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고, 오늘 집주인과 보일러 전문가가 와서 문제를 진단해 보았다.

집 안 어딘가 파이프에서 물이 새고, 그 물이 바닥 아래쪽 자갈로 빠지고 있다는 결론이 났다. 그걸 찾아서 수리하기에는 파이프가 옛날 것이라 너무 얇고, 찾기도 힘든 데다가 어차피 오래되어서 그냥 새로 보일러 파이프를 까는 바닥 공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말로 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그 공사를 하려면 집안의 짐을 다 빼야 하고, 시멘트를 새로 부어 굳기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사이 우리는 갈 곳도 필요하고. 그런데 집주인은 우리더러 공사를 반반씩(공간을) 나눠서 하고, 공사를 안 하는 쪽에서 지낼 수 있지 않느냐고 한다. ‘지낼 수 있지 않느냐’라기보다는 ‘왜 지낼 수가 없냐’라고 했다는 게 맞겠다. 공사하는 집에서 본인이 직접 산다는 상상은 해 보고 그런 말을 한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대게의 사람들이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이라는 상상은 잘 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하면 될 걸 굳이 다른 곳에서 지내야 한다고 숙박비를 달라고 하는 것인지에 불만을 표시했다. 우리가 정확히 숙박비를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공사하실 분이 먼저, 그렇게 어떻게 사느냐고 세입자에게 숙박비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이었고, 우리 입장에서는 공사하는 동안 겪게 될 불편에 대해 집주인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 것이었다. 내가 직접 그 대화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정확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개요는 그렇다.

그리고 내가 직접 본 것은, 기분이 많이 상한 집주인이 계속해서 ‘내가 공사비 300만 원을 내는데’와 ‘숙박비를 내놓으라니’라는 말을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끼어들지 않고 그 모습을 관찰한 바로는, ‘공사비 300만 원이 들 것도 아까운 일이고, 자신이 그렇게 까지 돈을 들여 집을 고치는데 세입자들이 조금의 불편함도 감수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냐’라는 입장인 것 같았다. 마치 우리가 ‘숙박비를 내놓으라’고 무리한 요구를 해서 기분이 무척 나쁜 것처럼 굴고 있었지만, 이 집은 우리가 돈을 내고 빌린 자신의 집이고, 이 집을 수리할 의무는 당연히 집주인에게 있고, 고치는 동안 우리가 집을 못 쓰게 되었다면 그 기간에 대한 보상도 집주인이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그렇지가 않았다. 집주인의 말 중 중요한 부분은 ‘육지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제주에서는 안 그런다’였고, 공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못 해주겠으니 그게 싫으면 ‘나가라’는 것이었다. ‘가는 정 오는 정’ 얘기도 했는데, 그건 워낙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자세히 쓰지 않겠다.

아무튼 ‘싫으면 나가라’는 부분에서 우리는 약자일 수밖에 없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계속 대화를 하려고 해 봤자 힘들기만 할 뿐이라는 걸 짧은 제주 생활(제주 생활만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경험이 제주에 한정되어 있으니 그렇게 쓴다)을 통해 뼈아프게 많이 경험했다. 더 말하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었고,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하는 깨달음이다. 언젠가는 그 생각을 꼭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는 일이 되었고, 보상을 해준다고 해도 1-20만 원 상관이었겠지만, 중요한 건 그 기간 동안 짐을 옮겨 둘 곳은 파트너의 작업실 뿐이고, 그러면 그동안은 일을 못 하는 것이고, 우리는 짐을 옮기고 다시 돌려놓는 수고는 물론 그 기간 동안 강아지와 함께 묵을 곳을 찾아야 하고, 비용이 발생하고, 그 모든 일이 번거롭고 힘든 일이 될 거라는 사실이다. 그런 것에 대해 집주인이 가타부타 말이라도 한 마디 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가 너무 인정에 기대는 사람들인 탓일까.

계약서를 들춰가며 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따질 수 없는 일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한다면 힘들게 구한 우리의 집을 진흙탕 싸움으로만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맘에 안 드니 남은 연세를 모두 돌려받고 이 집을 나가겠다고 해도 당장 어디에서 어떤 집을 구할 수 있을지 난감한 것도 현실이다. 그러니 ‘집 없는 설움’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차분하게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면 될 일이지만 당장 수입도 없이 책상에만 앉아있는 몸으로써 무척 부담되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즐겁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활비 고민이나 짐을 옮기고 들여놓고 청소할 것까지 생각하면 도무지 즐겁기가 어렵다. 그래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부지런히 머리와 몸을 굴려보자. 

도대체 올해 어떤 좋은 일이 있으려고 연초부터 이렇게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지난 몇 년이 이렇게 어두운지 그걸 잘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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