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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r 21. 2021

삶을 이어나간다

개와 고양이 이야기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서 지난 글들을 훑어봤다. 이사한 후 일상을 잘 기록해 보려고 했던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고, 가을이 훌쩍 지나 겨울 초입에 들어섰을 때 아이비와 아기강아지들을 데리고 왔었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 딱 한 달이 되던 날 아이들을 용수리에 다시 데려다주었고. 그 뒤로는 SNS도 하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뭔가 하려고 하면 너무 많은 고난과 희생과 예상할 수 없는 변수들이 있었기에 어떻게도 나서지 못하는 채 봄을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 많은 ‘고난과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엄두를 내지 못했고, 가진 것도 없지만 그 중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나서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생활이나, 파트너와의 관계, 아주 조금의 경제적 여유 같은 것들이 얼마나 무너질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생활과 아이비와 아기강아지들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저울질 되었을 때 내가 선택한 것은 내 생활의 안락함이고, 그것이 너무나 알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보잘 것 없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하게 되는 내가 부끄러워서 힘들었던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힘들었던게 아니라. 


SNS에는 개를 잘 키우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개들’을 키우는 사람도 많고,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도시에서 큰 개를 키우면서 산책도 많이 하고, 집에서는 깨끗하고 따뜻하고 재밌게 잘 키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SNS에는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쨌든 그들의 부지런함이나 반려동물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여유 같은 것들이 자꾸 부러워졌다. 그리고 내 이야기에, 우리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의 응원을 받는 것이 이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열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못했고, 내 노력이나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더 이상 SNS로 다른 동물들의 견생역전 이야기를 보기가 힘들었다. 행복하게 잘 지내는 개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롭고, 한편으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개들과 그들을 구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로웠다. 나는 그들처럼 희생하지도 못했고, 해내지도 못했다. 나는 고작 우리 동네에서 만난 개 한 마리와 그 새끼들도 구해내지 못하는데, 그들은 개농장의 수 십 마리 수 백 마리 개들을 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공고기간 임박이라며 올라오는 개들의 다음 소식은 어디에서 봐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 간극이 너무 어려웠다.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과 살며 수많은 랜선이모,삼촌들의 사랑까지 받는 강아지들과 제발 입양해 달라는 듯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강아지들을 몇 초 차이로 번갈아 보는 것도 괴로웠다. 그리고 내가 좀 더 애썼더라면, 능력이 있었더라면 아이비와 아기들도 사랑받는 강아지가 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도 너무 괴로웠다. 아이비와 아기들도 정말 예쁜데. 달력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예쁜데.. 


그러니까 그렇게 예쁜데도 쓰레기장 같은 집 마당에 묶여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웠고, 학대가 분명한데 학대가 아니라고 하는 법과 관행이 너무 무서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어야만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방법은 있다.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 설득하는 것. 그게 너무 무섭다. 그리고 그 설득이 된다고 해도 아이비와 혼자 남은 것 같은 강아지를 데려와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그 고생문을 넘어서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우연히 제주 숙소 검색을 하다가 그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남았을 거라 추측할 수 있는 글을 하나 봤고, 그 날 밤엔 펑펑 울었다. 울기만 하는게 너무 싫으면서도 그랬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걔네들부터 데리고 와야 하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보리가 차에 치이는 사고가 일어났다. 모든 것이 정지. 우리의 경제적 능력과 시간이 빠듯하게 거기에 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더 이상을 바라는 것도 내 욕심이었다. 내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이 가장 힘들고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은 자꾸 잊혀지고, 그걸 바라는 것이 때로 사치처럼 느껴진다. 아직도 자꾸 힘이 든다. 내가 느슨하게 이어가고 있는 내 삶의 안정을 위해 결국 다른 생명들의 중요함을 잊어버리거나 놓아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치열하게 살아감으로써 그 아픔들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인지. 아이비와 강아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이어나가는 평화로운 내 삶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럼에도 그 모습을 눈으로 볼 자신이 없어서, 마음이 찢어지는 느낌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곳으로 발걸음조차 하지를 못한다. 잊어버리고 쿨하게 앞으로 가지도 못한다. 어정쩡하게 하루하루를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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