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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Dec 18. 2020

일단락이 난 모양이다

개와 고양이 이야기 

지난 가을부터 시작한 글들을 하나도 마무리 하지 못했다. 아이비와 아기들 데려온 다음에 쓰려고 했던 글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렇게 시작하는 글도 마무리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오늘 아이비와 새끼들을 용수리에 데려다 주고 왔다. 이제 얼굴이 익고 구분이 가기 시작한 콩이, 메밀이, 쌀이, 파시, 시루 귀엽고 똘망똘망한 아이들을 쓰레기가 가득한 창고에 두고 왔다. 아이비가 새끼 낳던 자리에 옷가지들을 깔아두긴 했던데, 밥그릇도 물그릇도 없기는 마찬가지고, 더 이상 자세한 기술도 하고 싶지가 않다. 문을 닫아두면 아이비는 배변은 어디서 할 것이며, 새끼들은 조금만 있으면 밖에 나오려고 할 텐데 정말 답답하다. 그 쓰레기장에서 어디 처박혀서 낑낑거리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아이비는 줄에 묶여서 구해주러 가지도 못할 텐데. 시발. 

생각하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우리를 만나기 전에도 그 아이는 거기서 살았고, 만나지 않았어도 새끼를 낳거나 낳지 않거나, 잃거나 잃지 않거나 하며 살았겠지만, 나는 그 아이를 왜 만나게 되었을까. 그리고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이비는 이렇게 아직까지 살아있을까. 20만원을 들여 아이비 건강검진을 했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젊어서 그랬나, 수유기간 동안 잘 먹여 그랬나. 그 모든게 무슨 의미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작년 봄에 아이비 새끼들에 붙은 진드기를 애써 떼 주고 약을 발라 준 것, 밥을 챙겨 준 것, 그리고 남은 두 아이중 하나를 입양 한 것, 한 아이를 입양 보낸 것, 그리고 또 새끼를 낳은 걸 발견하고 집에 데려와 한 달을 키워 낸 것.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그렇게 살아서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세상에 개들은 너무 많은데 그 중 행복하게 사는 아이들은 SNS로 유명해 질 만큼, 방송에 나올 만큼 드문 것 같다. 그나마 방송에도 행복한 아이들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책임지지도 못하는데 왜 개들은 자꾸 새끼를 낳게 하는지. 우리 동네에도 개가 새끼를 낳은 집이 내가 본 것만 두 집이다. 한 집은 새끼 한 마리와 부견만 남고 다 사라졌고, 한 집은 새끼들이 꼬물거리며 조금 멀리 나가기 시작하는데 어미는 줄에 묶인 채 애가 닳아 난리다. 날이 많이 춥던 엊그제 아침엔 그 아이들이 지붕도 없이 땅바닥에 뭉쳐있었다. 쓸 수록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 든다. 

대체 이런 일은 언제부터 안 볼 수 있을까. 언제쯤 되면 개를 묶어서 밖에 기르면 안된다는 걸 알게 될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까. 아이비와 그 아이들을 그렇게 두고 와서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그렇게 위로가 될까. 허공에 대고 그 할아버지를 향한 쌍욕을 내뱉는다고 괜찮아질까. 아이비의, 콩이의, 쌀이의, 메밀이의, 파시의, 시루의 눈빛을 잊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가 없을 것 같고, 그래서도 안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 용수리에 가서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할아버지를 변화시킬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할아버지를 동물학대로 신고하는 것 정도겠지. 그것도 지금 같아서는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너무 힘들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나 응원도 잠깐의 힘이 될 뿐 나에게는 해결책이 필요한데, 너무 오랫동안 해결 방안이 없는 고민을 해 온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나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겠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보리와 수수를 잘 키우는 것, 그리고 검찰 송치 결과를 기다렸다가 할아버지를 신고하는 것 정도일까? 그 할아버지는 내가 강아지들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마당에 갔다가 나오니, 새끼들 정상적으로 어미랑 떨어지려면 60일은 있어야 하니 그 뒤에 오란다. 미친.... 애기들 입양 보내려면 지금부터 한 달이 최적기라고 생각했고, 그 시기를 놓치면 더 어려워 질 거라 생각했었다. 그 짐을 내가 얻고 싶지는 않은데, 새끼들이 또 보리나 무무처럼 다시 묶여 있을 걸 상상하면 심장이 또 덜컹거린다. 생각은 또 꼬리를 물고 앞으로.. 

이 글은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올려놓으련다. 그래야 다시 뭐라도 쓰기 시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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