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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Sep 27. 2020

커피 말고 이탈리아에 대해 뭘 알지?

코로나 시대에 쓰는 지난 여행기 

아침을 먹는데 커피 준비하기가 귀찮아서 티백으로 된 차를 마셨다. 요새는 캠핑용으로 들고 다니는 드립퍼도 있다는데, 휴대하기 좋고, 커피 내리기 간편한 걸로는 모카포트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여행 갈 때 모카포트를 가지고 다니고, 성인이 되어 독립하거나 할 때면 모카포트를 선물해 준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마트를 가면 우리나라에서 냄비나 프라이팬 팔듯이 모카포트를 진열해 놓고 있다. 모카포트용 가루 커피도 종류별로 많고, 에어비앤비에는 꼭 모카포트와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 중 제일 여유롭게 머물렀던 네투나의 에어비엔비에는 라바짜 커피가 있었고, 아마 볼로냐의 에어비엔비에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행지의 커피, 이탈리아의 라바짜는 특별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가장 저렴하고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커피인 것 아닐까? 커피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필수품이니까 카페에서 파는 에스프레소도 저렴하지만 그것보다 더 저렴하고 쉽게 마실 수 있게끔 선택지가 준비되어 있는 것일 테다. 특히 커피를 직접 갈고 내릴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가 시간을 즐기는 것과 커피가 연결되어 있어서, 핸드드립이 많이 발달하고, 원두의 신선도나 품질이 중요하게 된 것 같은데, 커피가 생활인 곳에서는 사실 그런 건 별로 따질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아침을 먹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는데, 슈퍼에서 기성품으로 나온 커피 말고 다른 걸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았다. ‘보급형’ 말고 ‘고급형’이나 스페셜티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 우리가 여행 다니면서 보고 접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보급형’이었을 테고. 

항상 커피가 있던 네투노에서의 아침과 점심

이탈리아도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를 갔을 때도 별로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여행자가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고, 어떤 여행이냐에 따라서도 경험하는 부분이 많이 다르겠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그 나라의 경제상황까지 짐작하거나 많이 생각해 보게 되지 않았다. 다만 기차역의 뒷골목은 어느 나라나 조금 비슷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은 했다. 특히 독일은 이민자들이 더 많아서 그런지 그들의 커뮤니티가 있는 곳은 조금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예전에 갔던 Marburg 같은 소도시는 그런 차이가 덜하겠지만, 뒤셀도르프 같은 곳에서는 그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이탈리아는 약간 북쪽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는데, 피란에서 택시 타고 트리에스테로 가서 거기서 기차를 타고 볼로냐로 갔다. 트리에스테 까지는 도로를 이용했고, 또 국경 도시라서 그런지 아직 이탈리아인지 슬로베니아인지 실감이 잘 안 났고, 중간에 베니스에서 기차를 갈아탈 때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처음으로 실감했던 것 같다. 커피 값이 1유로인가 1.5유로였는데 맥도날드에서 앉아서 마시는데도 정말 맛있었다. 환승역이라 기차에서 내리면서도 확신이 없어서 엄청 두리번거렸는데, 노신사께서 영어를 못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독일-체코-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를 거쳐 오던 중에 가장 영어가 잘 안 통하는 나라, 그리고 가장 열정적인 나라에 도착했다. 


볼로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다음이라 기차역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버스를 탔는데, 그 사이 이별과 만남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다른 이가 보기에도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로 긴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였던 건, 다른 나라의 기차역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차에서 내려 애틋한 키스와 작별 인사를 나누던 모녀가 기차역으로 함께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주목하게 될 정도의 이별 모습이었기에 당연히 거기가 끝인 줄 알았으나 다시 손을 잡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인사를 하다가 아쉬움이 짙어져 더 멀리까지 배웅을 나선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게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볼로냐에 도착하기까지 멈췄던 기차역 플랫폼에서 본 사람들이 나누는 포옹과 키스와 인사들도 다른 나라에서들 보다 훨씬 열정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래서 기차에서 이미 ‘역시 이탈리아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밤거리 불 꺼진 쇼윈도의 색채들도 다른 도시들과는 달랐다. 독일에서는 ‘묘하게 옛날의 것들과 최신의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라고 생각했고, 체코는 오래된 도시, 그리고 관광지의 느낌이 강했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는 도시의 아름다움과 잘츠부르크는 자연 풍광이 압도적으로 눈을 사로잡았고, 슬로베니아는 왠지 정이 가는 느낌이었다면 이탈리아에 도착해서는 또 ‘역시 이탈리아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의 모든 색채가 다양하고 강렬했다. 잔상에 붉은색이 많이 남는다. 노란색과 초록색과 검은색도. 과감하고 다양하고 색감이 튀어서 이전의 도시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왜 이탈리아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닮았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는데, 열정적이고 감정이 잘 드러나는 모습 때문인 것 같다.

오가닉 상점의 크리스마스트리 _볼로냐

커피 얘기에서 시작해서 이탈리아에서 빈부격차를 생각하게 된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다른 얘기가 길었다. 이탈리아는 여행 준비를 하면서부터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도이체 반을 예약하는 것과, 트랜 이탈리아를 예약하는 것의 차이 때문이었다. 오래돼서 정확하진 않지만 도이체 반은 예약도 직관적이고 쉽고, 취소와 환불도 비교적 빠르고 정확했는데, 트랜 이탈리아는 예약도 번거롭고 여정을 바꾸는 일도 뭔가 복잡했던 것 같다. 상황은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그때 내가 이탈리아 철도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자 친구가 ‘이탈리아가 시스템이 있는 나라였나’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왠지 이탈리아는 뭔가 엉성하고,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는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물론 여행 제일 마지막이라서 준비가 제일 덜 됐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그 느낌은 이탈리아에 도착해서 더 강해졌다. 기차역의 느낌도 달랐고, 사람들의 스타일도 달랐다. 시스템이 없는 것 같지만 동시에 자유로움도 느껴졌다. 비슷한 톤과 스타일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던 독일과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이탈리아는 fashion 그리고 passion의 도시인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왜인지 이탈리아에서는 빈부의 격차를 의식하게 되었는데, 보통 여행지에서는 기대하지 않는 감상인 것 같다. 가장 여러 도시를 다녔던 독일에서 느꼈던 차이들과는 또 달랐다. 독일에서는 옛 서독에서 동독으로 오면서 느꼈던 차이가 있었지만, 생활감이 없는 여행자로서 큰 차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의식하려고 애써서 보인 것들이 더 많았달까? 예를 들면 색채 같은 것인데, 라이프치히에서는 전반적으로 이전 도시들보다 회색의 느낌을 더 받았던 것과 동시에 그래피티 같은 것도 더 많이 발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볼로냐-피렌체-시에나-로마-네투노 순서로 여행했는데, 로마로 오자 이전 도시들의 북부 이탈리아 특징이라는 것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부는 여행해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북부 이탈리아는 협동조합이 잘 되어있다고 하던데, 우리가 방문한 중에 가장 북쪽이었던 볼로냐에서 COOP매장을 제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COOP Italia의 원형이 처음 등장한 것이 볼로냐였고, 볼로냐가 주도인 에밀리아-로마냐 주가 사민당 지지성향이 가장 강하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북부가 남부보다(GDP 기준) 나은 상황이라고 하는데, 경제 상황과 정치적 지향이 일치한다고 보고 싶지만, 대한민국 강남의 정치 지향을 보면 그렇게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다음은 시에나. 피렌체와 로마는 확실히 관광지 느낌이 더 많이 났다. 그리고 로마에 있을 때와 로마에서 네투노로 이동할 때 이탈리아의 민낯(?)을 더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붉은빛의 도시 시에나
시에나 일 캄포 
피렌체 베키오 다리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인상에 영향을 많이 미친 것은 볼로냐의 스파게티도, 시에나의 젤라토나 피렌체의 두오모도, 로마의 판테온이나 바티칸이 아니었다. 로마의 밤거리를 헤매다 찾아간 콜로세움과 로마-네투노의 전철 안과 밖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네투노의 마을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이었고, 호텔에서 만난 직원이었다. 

로마에서는 내내 비가 많이 오고 추웠는데, 이틀 동안의 숙소도 별로 좋지 않아 더 고생을 했다. 첫날 배가 고픈 채로 너무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탈리아의 식당들이 저녁 장사를 시작하는 시간이 우리 기준에 너무 늦었다. 둘째 날은 아침 일찍 바티칸에 갔는데, 계속 들고 다니다 피렌체에서인지 시에나에서인지 버린 우산이 아까워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사지 못하고 돌아다녔다. 바티칸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비가 많이 와서, 뒤늦게 우산을 같이 써 주신 분이 있었는데도 스미는 냉기에 몸을 떨었다. 바티칸은 감동적이었지만 대성당을 보러 가기 전에 싸우는 바람에 그 유명한 피에타를 화가 난 상태로 보게 되었다. 나는 두오모 박물관의 피에타가 더 감동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는 ‘그’ 피에타가 아닌가.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와중에도 사람을 압도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느껴야 할 순간에 이렇게 싸우고 짜증 나는 감정을 겪고 있다는 게 더 화가 나는 요인이 되기도 했고. 

성 베드로 대성당이 이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있었다. 한밤중인 것 같지만 다섯시가 조금 넘었을 것이다.

싸움 때문에 바티칸에서의 일정이 생각보다 길어졌고, 그 이후의 일정도 더 늦춰졌다. 그래서 콜로세움까지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라는 생각을 하며 찾아갔는데, 비가 다시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비수기인 데다 입장 시간도 지나 행인도 없는 콜로세움은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규모야 말할 것도 없이 겉에서 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그 엄청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 내부의 위용을 짐작하고서라도 주변에 2000년 전 돌이 쓰임이 없이 쓰러져있는 것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라고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아 정부에 돈이 없어서 복원을 안 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문화유적을 관리하기 위한 정부의 자원과 능력이 부족한 것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이탈리아에는 유적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걸 모두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는 선택하고 포기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닐까.

콜로세움

로마 일정은 2박 3일이었지만 늦게 하루를 더 추가했다. 바티칸을 다녀온 다음날 하루가 더 생긴 것인데,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대신 로마에서 하루 더 쉬면서 지내고, 다음날 이동하기로 했다. 로마가 아쉽기도 했고, 다음 일정을 정하는데 좀 더 시간을 두고 결정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날은 결국 오전 내내 로마 숙소를 찾고, 비 오는데 이동하느라 보내기는 했지만, 로마에서의 하루를 더 괜찮은 숙소에서 지낼 수 있어서 좋았고, 유명한 젤라토도 먹고, 숙소 가는 길에 발견한 중국식품점에서 라면도 샀다. 

다음날은 로마를 조금 더 살펴보자고 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테라스에서 아침식사는 못 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식당을 찾아 브런치를 먹고, 네투노 가는 기차를 탔다. 로마의 기차역은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다고 하는데, 긴장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평화롭게 지나갔다. 유명하다는 젤라토 체인에서 젤라토도 먹었는데 엄청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젤라토는 시에나에서 먹은 것이 제일 맛있었다. 

테르미니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전철 같은 것으로 갈아탔는데, 그때 봤던 풍경들이 인상적이었다. 로마에서 출발해서 기차를 타고 가던 중에는 아파트 바깥에 빨래가 걸린 풍경이 많이 보였다. 마치 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 같았고, 로마의 유적과 관광지로부터 얼마 많이 오지도 않았는데, 그런 생활감 있는 풍경이 보이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조금 ‘가난’한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보통 기찻길 옆에 부잣집들이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풍경-로마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가난한’ 풍경-은 로마에 있었던 내내 만났던 느낌이었다. 로마에서 처음 이틀을 묶었던 숙소의 직원은 아마 학생이 아닐까 싶었는데, 조금 어리바리한 느낌에 영어도 잘 못해서 나도 모르게 그의 교육 수준이나 경제 수준을 짐작해 보게 되었다. 눈을 빛내며 나를 도와주려고 애써서 괜히 더 마음이 쓰이고 안타깝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로마 외곽의 저렴한 숙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어떤 배경을 지녔을까 라고 괜히 짐작해 보게 되는 것이었다. 

로마에서의 두 번째 숙소가 있던 곳은 중국인 식료품점도 있고, 아시안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 같았다. 아마 로마 중심의 호텔 같은 곳을 숙소로 잡았다면 만날 수 없는 동네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느꼈다. 가난한 풍경. ‘가난’이라는 말을 자꾸 쓰는데 주저함이 생기는데,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표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난’이라는 말이 가진 이미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경제적으로 평균을 밑도는, ‘로마’의 위상과는 대비되는’ 정도의 이미지로 쓰고 싶다. 


첫 번째 숙소에서 보다는 더 편한 오후를 보내고, 옆방을 장기렌트하고 있던 대만 여자애와 상의해가며 세탁기도 돌렸다. 다음날은 로마에서의 완전한 휴식을 위해 로마 외곽 도시인 네투노로 가는 일정이었다. 

로마 떼르미니에서 탔던 기차를 중간에 내려 전철로 갈아탔는데, 그 중간에 학교가 있는지 학생들이 많이 탔다. 여행 중에 학생들을 볼 일은 별로 없었고, 늦지 않은 오후에 도착했던 시에나에서 몇몇을 봤던 정도였는데, 그때 봤던 학생들과 전철 안의 학생들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다들 예쁘고 발랄했지만, 학생이라서 풋풋한 느낌보다는 언밸런스한 느낌이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네투노는 아름다운 동네였는데, 중세의 돌길과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동네에 우리 숙소가 있었다. 마침 마을에서 처음이었는지, 두 번째였는지 열린 중세 축제와 일정이 겹쳐서 사람들이 중세 의상을 입고 다니며 공연도 하고, 먹을거리와 물건들도 팔았다. 구경할 거리가 많아 재밌었다. 축제와 겹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떤 행사인지 묻고 싶어서 길에서 음료를 파는 중세 옷을 입은 학생들에게 이게 무슨 행사인지 물어보았는데, 그들은 잘 알아듣지 못했는지, 말하기를 쑥스러워했는지 옆에 구경하러 온 학교 선생님이 설명해 주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보다 영어를 잘 못 하는 사람과 대화할 일이 더 많았는데, 네투노의 학생들이 수줍게 웃기만 하고 영어로 대화는 잘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은 네투노가 외곽의 ‘시골’ 동네이기 때문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가난과 시골이라니.. 편견으로 가득 찬 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중세와 해안도시의 느낌이 공존하던 네투노의 숙소
중세 축제의 동화구연
네투노 바다 

네투노에서 잘 쉬고, 다시 떼르미니 역으로 왔다가 공항과 가까운 안치오로 갔다. 한적한 도시의 작은 호텔에서 묵었는데, 조식을 먹을 때 만난 직원이 무척 친절했다. 젊은 여성이었는데, 내가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하자 다시 이탈리아어로 받아주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해서 영어로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나는 그가 학생이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을 했고 집안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고.. 일본어에도 관심이 있어서 조금 할 줄 알고,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내 이탈리아어 발음이 좋으니 더 공부하고 싶고 물어보고 싶은 게 생기면 연락을 달라며 메일 주소를 적어주었는데 주머니에 넣었다가 한국 와서 빨래하면서 없어진 것 같다. 아직까지 아쉽다.

안치오 바다

너무 긴 글이 되었지만 내가 본 이탈리아의 모습을 장면 장면 적어보았다. 판테온도 아니고, 천장화나 피에타도 아니고, 로마의 맛집도 없는 여행기라니..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사회학 관점도 갖지 못한 나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가득한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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