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Sep 05. 2020

이미 아이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

이런저런 생각들

아이들이나 강아지가 저지레를 하는 건 당연하다. 그걸 못 하게 하려고 영상을 보게 하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이에게서 많은 가능성을 빼앗는 일인 것 같다.

민호가 집에 놀러 왔다. 예전에 작은 집에 살 때 규민이가 집에 놀러 왔다가 며칠 차로 민호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규민이는 놀러 와서 호기심은 있지만 조심스러웠던데 비해, 산만하고 이것저것 만지고 돌아다니는 민호를 보고 만약 여자아이였다면 두 아이에 대한 평가가 사뭇 달랐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평가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걸 거라고. 지금도 그 생각은 다르지 않지만, 민호와 규민이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두 아이가 집에 놀러 왔을 무렵은 4월이었고, 지금은 8월이니 4개월 정도가 지났고, 아이들은 정말 쑥쑥 자란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민호와 언니가 같이 놀러 온 적이 있었고, 피자를 시켜먹고 청귤청을 담가줬는데, 그날따라 보리도 두 번이나 가출을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청귤청을 담그는 동안 얘기를 하며 거실에서 언니랑 민호가 놀았고, 저녁이 되어 돌아갔는데, 집을 어질러 놓고 가는데 대한 미안함과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서 오는 편안함이 같이 느껴졌다.(내 기준으로 짐작한 내 생각이니 언니 생각은 달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제 민호네 온 가족이 놀러 왔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아이는 밥도 잘 안 먹고 밥을 먹는 내내 우산을 들고 테이블 주변을 돌아다녔다. 어른들은 적당히 맞장구쳐주고, 아이에게 시선을 두면서도 대화를 이어갔다. 물론 아이가 중간에 큰 행동이나 소리를 내면 대화가 끊어지기도 했다. 우산을 들고나가려고 하는 아이를 말리기는 했지만 아무도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현관에 나갔다가 들어오려는 아이에게 발을 닦고 들어오도록 하거나, 우산을 위험하게 들지 않도록 조심시키거나 실내에서 피지 않는 거라는 주의를 주는 정도였다. 그 외에는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고 억지로 먹이지 않았고, 아이를 위해 깎아둔 복숭아를 스스로 먹을 수 있게 놔두었다. 아이가 뭘 원하는지 집요하게 묻거나 억지로 자리에 앉혀두려고 하지 않으니 아이가 주변에 돌아다녀도 오히려 아이와 함께 하는 식사 자리가 더 편안했다. 아이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주고 챙기느라 부모가 너무 애를 쓰고 있거나, 아니면 가만히 앉혀 놓기 위해 영상을 보여주거나 했다면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다.

그 날 아이가 한 일 중에 가장 반향이 컸던 것은 벽에 연필로 선을 그은 것과 그에 대한 내 파트너의 반응이었는데, 연필로 벽을 칠한 것 정도는 지우개로 지우면 그만이었고, 그에 대해  집주인이 속상해하며 부러 과민한 듯 반응하고 또 그걸 다들 유머로 받아들인 것이 관전 포인트였던 것 같다. 어젯밤에는 지우개 가루가 벽 앞에 잔뜩 떨어져 있었지만 재미있는 장면으로 남았고, 집 벽에서는 연필 자국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나는 육아를 해 보지도 않았고, 어떤 육아방식이 맞는지는 모른다. 어제저녁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강아지 키우기나 아이 키우기가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고, 강아지를 키우는 일도 힘든데 아이를 키우고 책임지는 일을 어떻게 감당할까 싶기도 했다. 강아지를 키울 때도 혹시 나쁜 버릇이 들지는 않을까, 어디가 아프거나 힘든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때때로 든다. 매체에서 강아지가 사람을 물거나 다른 강아지를 물거나 했다는 뉴스를 보면 더 두렵고 걱정스러워지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동물들이 끔찍한 학대를 당했다는 소식에도 마음이 아프고, 내가 겨우 강아지 한 마리 행복하게 해 주는 것으로 괜찮을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더 많은 두려움과 걱정들이 있을 것이고, 강아지를 키우는 일에는 없는 기쁨이 아이 키우는 일에 있기도 할 것이다.

지난번에 쓴 글에서처럼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에도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이나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 때문에 힘든 일이 많은데,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사회의 간섭도 더 많은 것 같다.

육아는 동물을 키우는 것과는 달리 정상, 보편, 일반의 테두리 안 거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에 따라 동물을 키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의 보호망을 갖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육아가 여성의 영역에 많이 치우쳐 있으면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것 만큼의 배려는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반려 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것도 궤를 같이하는 것 아닐까.(통념상 반려 인구에는 여성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매체에 등장하는 전문가-수의사, 동물행동 훈련사 등- 들에는 왜 압도적으로 남성 비율이 높은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수의대 여남 비율도 거의 비슷하다고 하는데.)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을지 고민 중이라는 분과 얘기하던 중에, 다들 그렇게 애들을 싫어하면서 왜 자꾸 애를 낳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제주도라서 더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페들은 노키즈존인 경우가 정말 많다. 아이가 있는 친구와 카페를 가려고 하면 미리 검색하거나 물어보지 않으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노키즈존이 많고,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비하하는 말이 생기고,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조금만 떠들거나 울어도 금세 인상을 찌푸리고 도덕군자처럼 예의를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이는 대체 어디서 키우라고 낳으라고 하는지 말이다. 아이는 저절로 크지 않는다. 원가족 안에서만 자란다고 잘 자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에서 관대하게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어야 관대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이를 키우는데 물론 부모의 영향이나 책임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아이들이 자라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고 생각할 때, 모든 어른들이 그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일을 부모에게만 맡겨두고 맘에 안 드는 모습에는 쉽게 손가락질하다가, 그 아이가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관용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 약자를 대하는 일에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 대한 시선이 조금만 더 관용적이라면 아이를 키우는 일도 조금 덜 힘들고, 아이도 더 풍부한 경험을 하며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아이들이 살아가기 너무 힘든 세상이다.

작가의 이전글 혼수를 마련하는 기분은 어떨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