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Apr 05. 2021

집 보일러 공사가 시작되었다.

제주 살이

집 보일러 공사가 시작되었다.      

원래 있던 바닥 위에 보일러 배관을 깔고, 시멘트를 부어 미장을 새로 하는 방식인데, 공사하시는 분이 방 하나를 먼저 해 줄 테니 그 방에 짐을 옮겨 놓고 나머지 공사를 하자고 하셔서, 며칠 전에 침실 바닥 공사를 하고 오늘 아침에 나머지 공간 공사를 시작했다. 아침 9시에 오시기로 했는데 1시간 정도 일찍 와서 짐을 옮기던 중에 정신이 없었다. 늦게 왔어도 결국은 정신없이 마무리하게 되었을 것 같지만. 그래서 먼저 공사를 끝낸 침실에는 짐이 한가득 쌓여 있다. 짐들이 그 한 방에 다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어젯밤에 이웃집 분들과 바닷가에 세워둔 카라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밤에 들어왔는데, 짐을 챙기려고 하니 뭐부터 싸야 할지 잘 몰라서 캐리어에 대충 꾸려 넣고 닫아 뒀었다. 그러고 나서 아침에 정신없이 짐들을 옮기면서 생각하니 내가 입을 옷도 제대로 안 챙겼지만, 형용이 물건들은 하나도 안 챙긴 것이다. 

어젯밤까지도 오늘 공사를 정말 시작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빨리 해치웠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미뤄졌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막연한 귀찮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자주 그런다. 어떤 일이 닥쳐오기 전까지 구체적인 준비는 안 하면서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하는데, 정작 필요한 준비는 해 놓지 않았으니 그 일과 맞닥뜨릴 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싶은 것이다.      

여기까지 썼는데, 집주인 내외가 왔고(나는 외부 작업실에 있었다), 안에 있을 수만은 없게 되어 밖에 나가 괜히 왔다 갔다 하고 공사하는데 지켜봐야 할 사항까지 당부를 듣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써 버렸다. 바닥 시멘트가 다 마르고 장판을 깔려면 금요일은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멘붕이 와 버렸고.(멘탈 붕괴라는 말은 누가 생각해 낸 걸까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보일러 공사 아저씨가 왔을 때 집 한 두 군데 더 손봐달라고 얘기한 걸 잘 지켜봐 달라고 당부를 했는데, 그때 우리가 집에 없다고 할 걸 그랬다. 사실이 그렇다. 집에서 지내지도 못 하는 판에 공사하는 것 까지 지켜봐야 한다니.. 윗집 게스트 하우스 내외와 친분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보리를 데리고 어디에 가 있으며 공사하는 걸 지켜본단 말인가. 집주인은 우리에게 공사 감독까지 시키면서 일주일 동안이나 집을 못 쓰고 고생하는 건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그나마 조금만 참아달라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 갔지만, 아저씨는 시멘트가 좀 마르면 짐을 좀 옮겨놓고 먼저 공사를 끝낸 방에서 지내면 안 되냐는 둥 허튼소리만 하고 갔다. 집을 못 쓰는 것에 대한 보상은 바라지도 않지만, 공사 감독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그때 말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결국 우리가 살 집이니 공사를 착실하게 해 놓는 편이 당연히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집을 쓰지도 못 하고, 갈 곳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 속이 쓰린 것 같다. 아니, 속이 쓰린 게 아니라 정말 당황스러운 상황이긴 하다. 어떤 상황이던지 사람들은 각자 형편에 따라 방법을 찾아내게 마련이니 비슷한 상황에서도 각자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들이 다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 다르다. 살면서 겪어야 할 다양한 상황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이란 게 있을 수 없고, 그러니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일 테다. 

집 공사를 결정하고, 집주인 아저씨가 공사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큰 선심을 쓰는 듯, 그 외에 집을 못 쓰는 불편에 대해선 말도 꺼내지 못하게 화를 내고 간 후에 생각을 좀 해 보았다. 우리가 무리한 걸 바라는 것인지, 집주인 아저씨와 말이 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 집 일이 있기 며칠 전에 제주 사는 친구와 만났을 때, 친구가 그런 얘기를 했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전세나 월세를 살면 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집주인과 상의하고, 집주인이 그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한데, 제주에서는 세를 살아도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집주인에게 얘기하는 것이 괜히 껄끄럽고,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인데도 그러면 안 되는 일처럼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 세를 살면서 집주인이 자잘한 간섭을 안 하는 편이 당연히 더 좋고, 연락을 해야 할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문제가 생겼을 때는 원활한 의사소통과 적절한 문제 해결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친구 얘기를 듣고 보니, 우리도 제주에 살면서 집에 문제가 있을 때 집주인에게 연락하기 괜히 불편하고, 웬만한 일은 우리가 해결하고 말자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았다. 제주 특성상 집주인이 육지에 있으면 당장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하기에도 오래 걸리고, 제주 사는 사람들은 동서남북을 나눠 다른 지역에 있으면 굉장히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주 서남쪽인 우리 집의 경우만 해도 제주 북쪽인 시내에 사는 집주인이 들르는 일은 꽤 큰 이벤트로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로 그래서 집 계약도 집주인의 방문에 맞춰 이 집에 살고 나서도 한참 만에 했다. 

아무튼 그렇게 집주인이 세를 준 집에 별로 신경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제주도의 년세 문화가 시작된 배경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년세’라는 개념이 생긴 데에는 ‘괸당’ 문화가 그 배경에 있다고 한다. 제주는 섬이고, 동서남북을 오가기 쉽지 않은 지리적 특성상 지근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대게 친인척인 ‘괸당’이기 마련인데, 그런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려니 거저 빌려줄 수도 없지만 큰돈을 받기도 어렵고, 매달 세를 받는 것도 불편한 일이라 저렴한 가격에 일 년을 빌려주는 ‘년세’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 기간 동안 집은 빌린 사람 소관이라 자잘한 문제들이 생겨도 사는 사람이 해결하는 것이 호의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라면 집주인이 제법 큰돈을 들여 집을 고쳐주는 것이 말 그대로 ‘가는 정’ 일 것이고. 하지만 요즘은 어디 그런가. 제주도 년세는 해가 다르게 오르는데, 값은 올라도 생각은 하나도 바뀌지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제주도 년세 개념까지 들먹이며 엄마한테 설명을 했더니 그런 것 까지 이해하느라 애쓴다고 했다. 

작년에 한참 집을 구하려고 할 때도 그런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동남쪽에 어떤 집은 년세 없이 수리해서 살면 된다고 해서 보러 갔는데, 그 집에 살려면 거의 집을 새로 지어야 하는 수준이었다. 어떤 사람이 먼저 들어와서 손을 보고 살려다가 그만둔 모양으로, 거실 마룻바닥도 다 뜯어져 땅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집 뼈대는 남아있으니 연세가 무료라면 잘 수리해서 몇 해 살아볼 수 있었겠지만 집주인과 연락을 해 보니 첫 해는 무료고 그다음 해부터는 년세를 받을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집을 살 만하게 고치려는 속셈이 너무 빤했고, 집을 살 만하게 고치려면 몇 천만 원이 들지 모르는데 그 돈을 들여 고치고 또 다음 해부터 돈을 내고 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집들이 많다. 년세를 싸게 빌려주고, 수리해서 살라고 하는 집. 그러다 보니 엉망인 집을 그대로 방치해 둔 채 세입자를 찾는 집들도 허다하다. 한 번은 동네 어른들이 크고 좋은 집이 싸게 나왔다며 보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말 그대로 집은 무척 크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많고, 연세도 500만 원으로 집 규모에 비해 저렴했지만 보일러가 고장이 나 있었다. 집 모양은 잘 남아 있었지만 오랫동안 빈집으로 방치되어 손 봐야 할 데가 많았다. 정말 호의로 괜찮은 집이 나왔다며 보여주신 것이지만 제주 사람들이 외지 사람들에 대해서, 집을 빌려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본 것 같았다. 

제주에 살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집을 사거나 빌려서 멋지게 고쳐놓고, 살거나 장사를 하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그렇게 만든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기도 하고, 그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 때문에 제주 사람들의 기대가 올라가기도 했을 것이고, 그렇게 집값과 땅값이 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본다. 실제로 제주 이민 1세대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상처들을 가지고 제주를 떠나기도 한 것 같다. 작년에는 10년 만에 제주로 오는 인구수보다 떠나는 인구수가 더 많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의 차이들을 좁히지 못하고 버티다 떠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만 해도 강아지들 일 때문에 제주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집 공사를 할 때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 다른 관념의 차이를 극복하거나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고, 세입자의 입장에서 제주살이를 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았고, 이렇게 생각과 문화가 다른 곳에서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주뿐 아니라 어느 시골 동네에 가서 살더라도 다르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런 마음이 들 때는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이 괜히 크게 다가온다. 지금은 남한도 섬이나 마찬가지니 내 평생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제주에 올 때 애초에 이곳에서 평생 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지는 않았다. 서울에 살 때도 ‘평생’을 생각해 보진 않았겠지만 ‘언젠간 떠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제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자꾸 떠날 때를 생각하게 된다. 살아져서 살고 싶지는 않고, 조금은 계획을 세워서 살고 싶다. 글의 시작에서처럼 자꾸 준비 없이 상황들을 맞닥뜨리고 조금씩 피하면서 편한 길을 찾아 그때그때의 수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른이 넘어 마흔에 가까워지면서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느리게 맞이하는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