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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27. 2021

제주도에서 보리 키우는 이야기

제주도에서 보리 키우는 이야기


오랜만에 브런치에서 알림이 왔다.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는 좋아요 알림도 오곤 해서 브런치 알림이 뜰 때면 괜히 기분이 좋다. 그런데 오늘은 지난번에 글 올린 후로 구독자가 늘었는데 글이 없다며 알림이 왔다. 꽤 오래 브런치에 글을 안 올리긴 했다. 강아지들 데려다주고 나서는 그 주제로 글을 쓸 수도 없고, 또 다른 생각을 해도 꼭 강아지들 생각이 끼어들었다. 지금도 매일 생각나고, 걱정이 되는데 겁이 나서 가 보지도 못하고 있다. 내가 참 한심한데, 이런 감정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신뢰도가 자꾸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 당장 내가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나서서 답 없는 일을 시작할 것이 아니라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할 수밖에 없지.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블로그에 거의 매일 일기를 쓰는 것으로만 하루 글쓰기 양을 채우고 있는데, 사실 공부하고 싶은 것도 글로 정리해 보고 싶은 것도 많다.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관념적인 주제들은 쓰기 시작하기가 어려우니 우선 매일 하는 보리 키우기 얘기부터 먼저 쓰자. 쓰다 보면 다른 생각도 조금 정리가 되지 않을까?      


아침에 요가하는데도 쳐다보는 보리가 너무 예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놓고 싶었다. 가끔, 종종, 많이 보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뭔가 생각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볼 때가 정말 예쁘다. ‘생각하는 표정’이라는 걸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사진을 찍어도 다 담기지 않을 텐데. 사람이 강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강아지도 그럴까? 그 ‘생각하는 표정’은 강아지가 사람을 궁금해하는 표정인 걸까? 요가를 하는 우리를 보리가 가만히 쳐다보는 것처럼?

보리가 내가 놀고 있는 것과 집중해서 뭔가 하고 있는 때를 구분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전부터 하고 있다. 보리가 교통사고로 다리 수술하고 집에서 요양할 때, 산책은 못 해도 실외 배변은 하게 해 주려고 하루에 네다섯 번은 마당에 나갔는데, 보리가 낑낑 거리면 우리가 밖에 데리고 나가 준다는 걸 알았는지 꼭 쉬가 마렵지 않아도 나가고 싶다고 보채는 일이 많았다. 물론 산책도 못 하고 줄곧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고 심심했겠지만 그렇게 마당만 돌다가 그냥 들어온 적도 많았다. 그런데 그때 내 느낌에, 보리는 내가 뭔가 집중하고 있으면 보채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꼭 쉬거나 딴짓을 하면 소리를 내거나 부산스럽게 돌아다녀서 관심을 끌고 밖에 데리고 나가게끔 만들었다.    

  

내가 쉴 때만 보리가 나가자고 보채는 건 단지 기분 때문일지 몰라도, 개들이 감정을 느끼고 생각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때로,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사실을 간과할 뿐이지. 개들의 지능이 세 살 아기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15년이 넘게 세 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고 하는 말이 단지 ‘개를 키우는 게 힘들다’가 아니라, 세 살짜리 아기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지 떠올려 본다면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 살 아기가 발달과정상 어떤 단계에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단편적으로 경험하거나 본 바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싫고 좋음을 분명히 표현하며, 주변의 사람이나 동물들에 공감하고 배울 수 있다. 그러니까 강아지들도 무언가 보고, 판단하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동물 복지’, ‘동물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이유다. 적어도 인간에 의한 고통은 피할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의 삶에도 사실 도움이 안 된다면 더욱더 의미 없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예는 우리가 사는 삶 속에서 너무나 많아 어느 하나만 예로 들기도 힘들다. 실험실 안과 밖에서, 먼바다와 가까운 바다에서, 시골과 도시에서, 옆 마을과 옆집에서. 그래서 그것이 내게 마음 아픈 일과 기억이 되기도 한다.      

보리를 키우는 일이 종종 슬프다. 보리랑 행복한 것이 자주 미안하다. 한 존재만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도, 알아서 자꾸 그렇다. 자꾸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면서도 태도가 흐트러진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리 키우는 이야기를 잘 적어야겠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지.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 생각을 놓치지 않고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게 힘들어도 자꾸 이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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