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스캔들이 재미없다.
지동희가 범인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일타스캔들’이라는 드라마가 방영을 시작하고, 인기가 높아질 무렵 나도 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본 건 아니라서 1-5화 정도까지는 유튜브 요약 영상으로 봤다가 결국은 다시 처음부터 다 봤다. 전도연 언니랑 정경호 배우 나오는 장면들이 너무 재밌고 둘 다 사랑스럽고 무해해서 다른 일 하면서 배경으로 틀어놓기도 했다. (집중하는데 도움이 안 되는 습관이긴 한데, 혼자 있으면서 단순한 일을 할 때 다 본 드라마를 틀어 놓는 편이다. 음악보다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더 좋을 때도 있고, 라디오나 팟캐스트처럼 청취자를 상정한 것이 아니어서 집중하지 않고 백색소음처럼 듣기가 좋다. 처음 본 드라마나 너무 예전에 봐서 잘 기억이 안 나는 드라마는 안 되고, 너무 스펙타클한 것도 안 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나 '미생'처럼 비교적 최근에 봤고, 줄거리에 상관없이 흘러가는 대사가 많은 드라마를 틀어놓는데, 최근에는 ‘일타스캔들’이 그렇게 틀어 놓기에 놓았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많은 드라마라서 그랬던 것 같다. 학군 좋은 동네의 극성스러운 엄마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도 설득력 있었고, 고등학생들의 풋풋하고 예쁜 그림도 좋았다.
뒤늦게 정주행을 시작한 드라마를 밤에 한 편씩 보면서 ‘너무 예쁘다’, ‘연기 너무 잘한다’, ‘사랑스럽다’, ‘너무 재밌다’ 하는 말을 매일 했다. 내일을 위해 그만 보고 자야 하는데 ‘10분만 더 볼까?’하고 다음 편까지 이어 보다가 ‘안돼, 자야 돼’하고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행복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있긴 했다. 자살 이거나 타살 이거나 죽음에 대한 사건들이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 것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른 일이라고 해도 다른 이의 죽음이 가십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무리 공부가 최우선으로 여겨지고, 자녀의 교육을 위해 주거지를 선택한 부모가 다수인 학원가라고 해도 너무 비인간적인 태도 같았다. 주인공에게는 트라우마를 남긴 중심 사건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카더라’로 소비되고 마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주인공을 둘러싼 가까운 시간대의 사건들은 그 일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가볍게 다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재밌게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 걸렸다. 스토킹을 하던 여학생은 길을 가다가 쇠구슬을 맞고 어떻게 되었는지, 옥상에서 떨어진 남학생은 타살 가능성이 있는데도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 빨리 사건을 정리하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급히 수사를 종결하고, 그 일을 대하는 학원가의 엄마들은 단지 아이들의 학업에 지장이 있을지 에만 초점을 맞춘다. 학원의 강사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는데, 그 사건에 대한 반응은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서 멀리 나가지 않는다. 로맨스와 서스펜스를 함께 끌어나가려니 어려운 일이기도 할 것 같다.
어느새 드라마 방영 스케줄에 맞게 시청을 하게 되어 어제는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 중 마지막 화인 12화를 봤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미스터리를 풀어갈 생각인 듯했지만 그 과정이 너무 거칠어서 실망스럽고 화가 날 정도였다. 여느 때처럼 자기 전에 보려고 기대를 하고 잘 준비를 했는데 보고 나니 너무 찜찜해서 뭔가 기분 전환을 하고 자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건 꼭 범인이길 원하지 않던 사람이 범인인 것이 분명해져서 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번 주말에 방영된 11화, 12화는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에 주변 인물들의 행동도 설득력 없이 답답하고 극단적인 태도가 반복되어서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단 하나 맘에 드는 것은 로맨스가 시작되는데 시간을 끌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 둘의 장면 말고는 흥미로운 장면이 없었다. 주변 인물들의 행동도 너무 갑작스럽게 변화해서 그전에 보인 행동들이 우스워 보일 정도였고, 서스펜스를 둘러싼 인물들의 행동도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드라마니까’ 하고 알아서 이해해야 할 장면이 많아서 피곤했다. 초반에는 연기력으로 설득력을 획득했던 등장인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연기력으로도 설득하지 못할 만큼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이 반복되어 지루하고 짜증이 났다. 이 모든 것을 상쇄할 만한 작가의 의도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첫째 아들이 대입과 재수에 실패하고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변호사 엄마는 둘째 아들의 입시 성공에 집착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이 살인 혐의로 조사를 받는데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화만 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 와중에 둘째 아들의 성적에 집착하며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하는 것은 그동안 그가 견지했던 합리와 명분을 따지는 태도와도 맞지 않는다. 수면제와 알콜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그의 스트레스를 짐작해 볼 수 있겠지만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그렇게 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질문에 답하자면 ‘아니요’라는 쪽이다.
다른 학부모들의 모습도 점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고 있다. 자녀가 다니는 학원 선생의 행실에 관심이 있을 수 있지만, 자녀 교육을 이유로 다른 사람의 인생에 아무렇지도 않게 개입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상황에 따라 바뀌는 여론의 모습들을 계속 보는 것도 피곤하다.
‘국가대표 반찬가게’의 인물들의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는데, 12화의 경우는 너무 무리한 장면이 나와서 당황했다. 남행선의 친구 김영주가 갑자기 함께 일하는 행선의 동생인 재우에게 갑자기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하더니, 산낙지를 앞에 두고 그거 먹으면 나랑 사귀는 거다? 라니... 클리셰 덩어리에다 재미도 없고, 그날 하루 일하면서 두 번 듬직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바로 그런 장면으로 넘어가다니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앞선 두 장면의 의도가 너무 뻔했고, 갑자기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웠고, 난데없는 고백은 내가 다 몸이 간지러울 정도였다. 배우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행선이 연애를 시작하자 갑자기 허전해진 영주가 농담반으로 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동안 영주가 ‘금사빠’라는 듯한 뉘앙스의 얘기가 몇 번 나왔으니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그전까지 전혀 없던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려니 무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에피소드는 없어도 괜찮았을 텐데. 행선과 치열의 로맨스를 더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지동희 실장에게 은근 관심이 있는 듯 보이던 영주에게 다른 관심 인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가장 중요하게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지동희’라는 캐릭터이다. 지금까지 말 한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갑작스럽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쌓아 놓은 인물에 대한 설명이 없이 갑자기 어떤 행동을 하고 그게 설득력이 없다는 것인데, ‘지동희’에 대한 부분은 가장 그 설명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시청해 온 사람들이 짐작한 것처럼 지동희는 과거에 ‘최치열’과 인연이 있는 인물이고 그게 최치열에 대한 사랑이나 집착, 그리고 그에 따른 주변인에 대한 질투나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게 몇 번이나 살인 또는 살인에 준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당연히 드라마에서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진 않을 것이고, 그 이유와 앞으로 벌어질 일에도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을 보여주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범죄를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는 지워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 주변에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중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드라마 속에서 애정을 가지고 보던 사람이 갑자기 사이코패스처럼 사람을 반복해서 죽이고 유기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래서 아마 나는 ‘지실장-지동희’가 범인이 아니기를 바랐던 것 같다. 너무나 순진하고 사람 좋은 얼굴을 하다가 갑자기 시청자들에게 의심의 실마리를 던져주면서 냉정하고 잔인한 표정을 보여주다니.. 너무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연출 같아서 실망스러웠다.
이해가 안 가는 주변 인물은 또 있다. 이선재의 형 ‘이희재’이다. 수능시험을 보는 날 나타나지 않은 이후로 주로 방안에만 있다는 은둔형 외톨이인 그는 길에서 보살피는 고양이들이 죽는 일들이 일어나자 그 일을 막거나, 진실을 알기 위해 움직이다가 사건에 휘말리게 된 듯하고, 그 와중에 경찰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애초에 도망을 가지 않았거나, 조금 진정이 된 후에 경찰에게 사실대로 말을 했으면 됐을 텐데, 입 다물고 있으라는 엄마의 윽박지름에 원망하는 표정만 짓다가 정말 입을 꼭 다물어버린다. 예고편을 보니 다음화에 나오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한 재판에서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20살을 갓 넘긴 어린 나이이고, 상처를 받아 집안에서 은둔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인물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답답하게 구는 데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지 않으면 납득하기가 힘들다. 점점 선재 가족에게 이입하기 힘들어지는 이유이다.
10화 까지는 정말 재밌게 보다가 갑자기 11화, 12화에서 미스터리가 해결되는 실마리들이 나오는데, 그에 연결된 내용들이 갑자기 개연성 없이 튀어버려서 당황스러웠다. 연애를 시작한 행선과 치열, 고등학생인 해이의 친구들 말고는 모두 갑자기 어색한 행보를 보이며 뚝딱거리는 느낌이다. 그 이상한 기류를 연애에 막 빠져든 행선과 치열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 연출되고, 행선은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버린 지동희의 행동에 의구심을 갖지만 그 또한 갓 연애를 시작한 커플의 다툼 소재로 소비되어 버린다.
재밌게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갑자기 너무 재미없어져서 속이 많이 상했다. 아직 4화가 남았는데 이렇게 불평을 쏟아내기에는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앞으로 재밌어 지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긴 글을 써 버렸다. 이번주까지는 두근거리면서 주말을 기다렸는데, 다음 주말은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대단한 반전이 있지 않는 이상.. 오죽 속이 상했으면 11화를 보고 지동희가 범인이 아닐 경우의 수에 대해서, 그리고 지동희가 범인일 경우 개연성을 떠올리기 위해 한참을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지동희가 범인이 아닐 경우 다른 범인이 나타날 가능성은 적어 보였고, 그렇다고 해도 지동희가 범인이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나는 정말 지동희가 범인이라서 속상한 걸까..
12화가 너무 재미없었던 나머지 작가들의 전작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두 편이 더 있었다. 한 편은 내가 재밌게 봤던 ‘오 나의 귀신님’이다. 그때도 한편으로는 로맨스가 전개되면서 한 편으로는 서스펜스가 있었는데, 그 경우에는 범인이 귀신에 들려 한 짓이어서 딱히 인간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거나 납득해야 할 만한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일타 스캔들’은 다르다.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의 무게가 크고, 이제 범인으로 밝혀진 인물의 극 중 비중도, 극 안에서, 그리고 시청자들의 애정도 컸다. 이 실망스러운 마음을 사그라들게 할 만한, 내가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하게 할 만한 전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스러운 전도연 언니와 정경호 OPPA의 연기가 너무 아깝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