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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Mar 10. 2023

경칩에 받은 편지

내가 되는 꿈_을 읽은 소감


최진영 작가의 '내가 되는 꿈’을 3일 밤에 걸쳐 아껴서 읽은 다음에 아쉬운 마음에 끝의 끝 장 까지 열어보다가 급히 닫았다. 정용준 작가의 발문이 있었는데, 글의 앞머리에 나만 느낀 줄 알았던 소설의 독후감이 거의 똑같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작가와 나만 공감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공간 방울이 흩어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책을 덮는 손이 다급했다. 나만의 감상을 잘 적어둔 다음에 다른 이의 글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도 감상을 적는 일은 미루기만 했다. 작은 원룸이라 어디에 뭐가 있는지 한눈에 보이는데, 하얗고 깨끗한 책등과 마뜨료시까가 그려진 책 표지를 눈길만 흘깃 주고 돌아다니며 몇 날을 보냈다.



내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지만, 왠지 내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다. 보통 '불안정한', '위태로운' 그리고 '싱그러운'따위의 말을 붙이는 청춘의 시절, 누구나 지나고, 지나온 시절을 작가는 섬세하게 그려낸다. 섬세하다-는 표현보다는 더 유쾌하면서 구체적인 표현이 있었으면 좋겠다. 글은 무거운 듯 하면서 유쾌하고, 무심한 듯 하지만 세심하다. 소설 속 중학생 태희는 세상과 삶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하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심드렁해 보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라도 심통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지만 뜨겁게 안아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을 지나며 높낮이가 제각각인 그림을 그리며 지나가겠지. 그가 문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고, 안쓰러운 듯 귀엽게 바라볼 수 있는데 어쩌면 그 마음은 편지를 받은 '어른' 태희도 같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십 대의 태희도, 껍데기만 어른이 된 것 같은 지금의 태희도 모두 나 같은 것인지도. 그래서 무슨 감상을 남겨야 좋을지 몰랐다. 내 이야기가 아닌데 내 이야기 같은 이 소설에 대해서.    


카페에서 받은 소설가의 편지


그러다 경칩 무렵 작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나에게만 써 준 것은 아니고, 작가의 반려인이 하는 카페 손님들 중에 원하는 사람들에게 건네 주는 것인데, 향기가 입혀져 고급스러운 짙은 색으로 느껴지는 무표백 봉투에 들어있는 라벤더 색지에 쓰인 편지였다. 그 편지가 편지가 아닌 소설 같아서 나는 소설가에게 편지를 받는 기분은 원래 이럴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소설을 읽었기 때문인지 편지를 쓴 사람이 꼭 '내가 되는 꿈'의 태희 같았다. 편지지 뒤에 앉아 있는 태희의 모습을 상상하게 됐는데 또 그 편지지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이 나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상하게 붕 뜬 기분이 들어서 십 대 시절 내 방에 있던 핑크색 장농을 떠올리고 또 그 안에서 버건디색 떡볶이 코트를 꺼내 들어보았다. 실제로 코트를 꺼내 입고 떠난 적은 없고, 다만 침대에 누워 장농을 노려보면서 머릿속으로 짐을 싸고, 밖에 나가고, 그리고 나서 겪을 고생들을 상상하다가 스르르 눈에 힘을 풀고 잠에 들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그 사이에 바다가 있었는지도 모르지. 


어른이 된 나에게 편지를 쓰는 중학생 태희가 코트를 입고 기차역으로 나서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코트를 입고 나서고, 누군가는 편지를 썼다가 버려버리고, 누군가는 바다에, 누군가는 작은 방에, 혹은 바다 같은 작은 방에 자신의 기억을 남겨뒀겠지만 그래도 누구에게 이 이야기는, 편지는 자기 이야기 같을 수 있겠구나.


책에 발문을 남긴 작가에 대한 질투심을 거두고 다시 책을 펼쳐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한동안 이 책을 다시 읽지 않겠지만 내가 느낀(것과 비슷한) 기분을 글로 찾아내 적어내고야 마는 작가가 있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든든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또 든든해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으면 마치 어린 시절의 내가 적은 일기장을 보듯 낯선 기분이 들 지도 모르겠다.


커피는 아마도 어른의 맛


절기마다 편지를 쓰겠다는 작가의 말을 생각했다. 일 년에 24번 이라니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는데도 부지런해져야 하는 숫자다. 마치 열 밤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날처럼 느껴지던 어린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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