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생활 채집일기
고사리를 꺾을 때는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고사리 생각만 해야 된다. 아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고사리를 많이 꺾을 생각이라면 말이다. 김연아 선수가 스트레칭을 하며 남겼다는 유명한 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를 생각하면 된다. (생각이라는 단어가 몇 번 들어갔는지 생각해 보자.)
아무튼 나는 이걸 제주에서의 네 번째 봄, 고사리 꺾으러 간 지 네 번째 만에 깨닫게 됐다. 드디어! 일 년 만에 고사리를 꺾으러 간 오늘 아침. 막상 고사리를 꺾을 장소에 도착하자, 같은 장소에 네 번째 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생전 고사리를 처음 꺾어 보는 사람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낯설고 막막했다. 같이 온 언니는 고사리 꺾을 채비 - 올해 처음으로 빌려 입은 비닐 바지 입기, 모자 쓰기, 장갑 끼기, 고사리 담을 가방 챙기기. 를 하자마자 바로 허리를 숙여 고사리 꺾기를 시작했는데 말이다. 나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풀밭을 훑어보기 시작했지만, 고사리님이 나 따위에게 쉽게 모습을 보여줄 리가 없다. 하릴없이 풀밭을 따라 걸으며 한두 개 수확을 하다가, 유독 털이 많은 고사리를 하나 꺾었다. 문득 고사리에도 먹는 고사리가 있고, 못 먹는 고사리가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건 먹는 고사리인지 물어보려고 같이 온 언니를 찾아 주위를 살폈는데 언니는 저 멀리에 있고, 왠지 고수의 향을 풍기는 아저씨가 고사리 수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인 것 같아 그 고사리를 보여주며 물어봤다. 아저씨 말로는 고사리에는 원래 독성이 있어서 삶아서 먹으니 한두 번 삶으면 다 괜찮다고 먹을 수 있는 거라고 얘기해 줬다. 아저씨가 가져온 고사리 가방은 내가 챙겨 온 것과 같은 유명 마트의 쇼핑백이었는데, 그 쇼핑백의 반이 조금 넘게 차서 아주 많은 양은 아닌 듯했지만 굵고 긴 고사리들이 가지런하게 놓인 모습이 두 시간 동안 딴 것이라며 뿌듯하게 자랑할 만했다. 봄마다 고사리를 꺾으러 간 것이 올해가 세 해째이지만 (한 해는 건너뛰었다.) 그렇게 굵고 긴 고사리는 내가 꺾은 것 중 해마다 스무 개 안팎이었을 것이다. 내가 말을 거니 기다렸다는 듯 자랑하시는 모습이 그 아저씨도 완전 고수는 아닌 것 같았지만, 어쨌든 ‘삶으면 된다’는 말을 믿고 나도 분발해 보기로 했다. 그 아저씨가 가시덤불 아래도 과감하게 들어가야 된다는 말을 남기고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금 더 걷다 보니 가시덤불을 향해 나 있는 작은 길이 보였다. ‘과감하게’라는 말을 떠올리며 조금 들어가 봤는데, 그곳은 역시나 고사리 스팟이 맞았다. 긴 고사리 대가 튼튼하게 솟아 있었는데, 아쉬운 점이라면 그 고사리들이 모두 꺾어져 머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없이도 그렇게나 길고 튼튼한 고사리들이라니.. 그 길을 낸 것은 고사리 꺾기의 고수이자 개척자들이다.
머리 없는 고사리들의 밭에 남은 것은 아마도 너무 작거나 너무 어려서 꺾지 않고 지나간 작고 얇은 고사리들 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수가 간 곳이라고 해도 남을 뒤따라 간 곳에는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남아있는 고사리도 안 보인다. 고사리를 찾아 열심히 눈을 굴려도 모자랄 판에 다른 생각에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면 고사리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말하자면 ’ 멀티 태스킹‘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나는 여태껏 그걸 모르고 고사리를 꺾으러 가면 온갖 생각을 하느라 머리가 바빴다. 인생에 대한 생각, 멍멍이들에 대한 생각, 생각을 정리해서 문장으로 만들 생각.. 하지만 고사리를 꺾으러 왔으면 고사리를 꺾어야 한다. 힘들게 고사리를 꺾으러 와서 뿌듯하게 바구니를 채워 가려면 다른 방법은 없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고사리를 꺾는 것.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고사리는 손으로 꺾으면 되고, 찾는 것은 눈이 하면 되는데 왜 생각까지 하면 안 되느냔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뇌의 신비다. 뇌가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쓰고 있으니 눈이 그만큼 재빠르게 움직여지지 않는 것 아닐까.
그렇게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고사리를 찾다가 잠시 허리를 들어 들어온 곳을 돌아보는데 문득 앞에 난 길과 지나온 길이 비슷하게 보이며 내가 어디서 온 건지 헷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포장길에서 그리 많이 들어온 것은 아니었고,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고사리를 꺾어야 많이 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더 꺾어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점점 겁이 나서 다시 되돌아가 가기로 했다. 되돌아가서 드디어 내가 들어온 길의 입구를 찾아 비로소 작은 안도감을 느끼는데, 삼춘 한 분이 그 길로 성큼성큼 들어오시며 길 입구에 둔 가방이 누구 것이냐고 물었다. 내가 괜히 거추장스럽고, 깊이 들어가지 않을 생각으로 입구에 두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손에 든 고사리를 보시고는 그것밖에 못 했냐며 안으로 더 들어가자고 하셨다. 내가 길을 잃을까 봐 무서워서 나오고 있었다 하니 여기서는 길을 안 잃어버린다며, 고사리는 더 가야 있다고 같이 가자고 하셨다. 들어가면서 몇 군데를 가리키며 멀리 가지 말고 이 주변에서 꺾으라고 하셨는데, 그러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더 들어가셨다. 그 발걸음이 성킁성큼 거침이 없어서 갑자기 길이 넓게 보이고, 아까 그 정도 들어가서 길을 잃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정말 이 정도로 길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그리고 그게 사실일 것이다.)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가자 여기저기 덤불이 있는(그런 덤불들 주위로 고사리가 많다.) 작은 터에 다다라 이 주변에서 꺾으라며 나를 남겨두고 가셨다. 그러면서도 그 주변에서 멀리 벗어나지 말 것과, 들어온 길 쪽 나무에 걸려있는 리본을 기억해 두라는 것과, 앞쪽에 축사가 있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과, 그러고도 길을 잃어버린 것 같으면 큰 소리로 ‘삼춘’을 부르면 내가 올 것이라는 말을 당부를 남기며 절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던 내 자신감을 오히려 약간 하락시키고 가셨다.
그 숲에서는 큰 소리로 일행을 불러도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고사리 꺾으러 갔던 첫 해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까지 먼 거리가 아닌 것 같은데도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심지어 전화를 해도 신호가 닿지 않았다. 분명 같은 곳에서 출발해 조금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느새 멀어져 불러도 잘 들리지 않는 곳까지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큰 소리로 부른다고 해도 잘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회의감 때문인지(심지어 그 삼촌도 내가 ‘근데 여기서 불러도 잘 안 들리잖아요.’라고 하자 ‘그건 그렇긴 해’라고 하셨다.) 삼춘을 따라 들어올 때의 확신은 옅어지고 불안감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길을 잃을 수도 있을 만큼 깊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자 또다시 고사리는 눈에 잘 안 들어오고, 더 자주 고개를 들어 내가 돌아가야 할 방향을 확인했는데, 나무에 걸린 리본도 보였다 안 보였다.(이상한 현상이지만 정말 그렇다.)해서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마치 나는 분명 수영을 잘하고 있는데도 언제라도 물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갑자기 숨이 차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공포감 때문에 더 이상 고사리에 집중할 수 없었고, 그러느니 그냥 다시 길을 나가며 고사리를 찾는 편이 더 마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고사리를 꺾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라는 말은 ‘고사리를 꺾다가 길을 잃었지만 찾아 나온 사람들‘이 있으니 전해지는 것일 테고, 거기서 길을 잃는다고 해도 어떻게든 찾아 나갈 수 있을 테니 일단 그런 걱정은 하지 않고 꺾으면 될 텐데, 그러니까 ‘길을 잃을까 봐 무섭다’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그리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마침 거의 다 길을 찾아 나왔는데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가 터지는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꺾기로 했다. 내가 처음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함께 온 것도 이 언니고, 내가 고사리를 꺾을 때는 늘 언니와 함께였는데, 제일 처음 다른 어른들과 함께 왔을 때 빼고는 늘 간단하게 도시락을 싸와서 먹곤 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컵라면이 주 메뉴다. 한라산 어리목코스와 영실 코스도 둘이 함께 다녀왔는데, 그때도 꼭 컵라면을 가져가서 윗세오름에서 먹었다. 윗세오름에는 쓰레기를 남기고 올 수 없기에 컵라면을 국물까지 다 먹어야 하는데, 고사리를 따러 가서도 마찬가지다. 아무 죄책감 없이 컵라면을 국물까지 싹싹 먹을 수 있는 한 해 몇 번 안 되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언니가 뽕잎을 넣은 간단한 김밥을 싸 와서 같이 먹었다. 한라산에 갈 때는 밥에 간단한 반찬들을 싸서 컵라면과 같이 먹기도 하고, 언니와 입맛이 비슷한 편이라서 같이 도시락을 준비해서 먹으면 좋다. 언니가 훨씬 음식솜씨가 좋은 편이라서 내가 늘 더 덕을 보는 쪽이기는 하다.
밥을 먹는데 안개비가 점점 부슬비로 변해서 제법 빗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다가, 방울토마토에 점점 물기가 맺히고, 빗줄기가 점점 세지는 느낌에 급히 정리를 하고, 다시 고사리 꺾기를 시작했다. 앉아서 여유 있게 밥을 먹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고사리를 꺾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 비였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곧 장갑이 다 젖어서 손까지 축축해졌다. 하지만 고사리는 비에 젖어 점점 더 잘 보였다. 아까는 분명 못 보고 지나쳤을 곳인데, 눈을 돌리면 고사리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엄마가 고사리를 해뜨기 전에 꺾어야 한다고. 어스름하게 밝아올 때 고사리들이 반짝반짝 빛나는데 그때 꺾어야 하고, 해가 뜨면 잘 안 보인다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았다. 늘 새벽에 출발해서 이슬이 조금 맺혀 있을 때 꺾고 해가 밝은 다음까지 조금 더 꺾다가 가는 식으로 해서 그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고사리는 해뜨기 전, 날이 밝아올 무렵에, 또는 흐린 날, 안개비가 내리는 날 꺾어야 하는 것이다. 손이 젖어서 힘든데도 고사리들이 잘 보이니까 왠지 자꾸 욕심이 났다. 대신 밥 먹고 나서는 주변에 쓰레기들을 같이 주웠는데, 쓰레기를 주우니 왠지 고사리도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을 더 곱게 먹고 고사리님들을 영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까 삼춘이 안내해 줬던 깊은 곳 까지도 같이 들어가 보리고 했다. 말하자면 ‘고수들의 스팟’ 언니한테 중요한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아마 들어가서 한참 더 꺾고 나왔을 텐데 통화가 길어지고, 빗줄기도 점점 세져서 몸도 다 젖어가고 있었기에 돌아오기로 했다. 내 보따리는 여전히, 늘 언니의 고사리 보따리보다 현저히 양이 적지만 그래도 나는 올해 ‘고사리를 꺾으려면 고사리 생각만 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멀티태스킹이 잘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고, 그러니까 고사리 꺾을 때는 고사리 생각만- 법칙은 아마 다른 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당장은 답답한 일 같아도 그게 현재를 더 충분히 즐기고, 얻을 것을 온전히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매년 고사리를 꺾으러 갈 때마다 진드기 때문에 고생했던 생각에 올해는 가지 않으려고까지 했었는데, 올해는 비닐바지 덕분인지, 날씨 때문인지 진드기가 없었다.(물기 때문에 진드기가 붙지 않았나.) 진드기가 없으니 물에 젖어도 훨씬 좋았다. 아마 진드기가 있었다면 집에 오기 전에 카페에 들러서 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커피가 많이 필요했는데, 집에 오기 전에 언니가 맛있는 빵과 커피를 사줘서 따뜻하게 몸을 녹이고, 얘기도 했다. 9시 반에 출발해서 4시에 집에 돌아온 긴 여정이었다. 고사리 손질은 아직 못 했다. 비가 와서 축축한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
올해는 고사리를 꺾으면서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익숙해 진 모양이다. 이건 며칠 뒤 산책길에 꺾은 고사리. 그날 꺾은 고사리는 이모가 오셨을 때 드렸다. 드릴 수 있는게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