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

오늘 만난 비인간 동물들

by 서기


아침에 보리랑 산책 삼아 한림 나가서 짬뽕이랑 짜장면도 먹고, 하뭉이 집에 쳐 줄 천막도 사고, 라라랑 같이 갔던 포크 카페에서 커피도 테이크아웃 해서 왔다.

점심시간 지나 지인이 돌보는 강아지들 cctv 설치해 드리러 갔다. 귀여운 검은색 강아지인데, 얼마 전 누가 돌을 던졌는지 머리에 혹이 났다고 했다. 며칠 됐는데, 혹 크기는 줄었지만 여전히 아주 큰 혹이 머리에 있었다.

하우스 앞 닭장을 지키는 개인데, 주인이 버젓이 있지만, 밥을 주는 것도 cctv를 사서 다는 것도 지인이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개 집이 하우스 맞은편이라 하우스 꼭대기족에 cctv와 태양광 패널을 달고 설치했다. 와이파이와 전기가 없으니 4G 심카드를 사서 꽂고 태양광 패널로 작동하도록 하는 cctv를 구입했다.


그 다음 장소에 있는 강아지들 자리에 cctv를 설치하러 갔다가, 그곳에는 이미 다른 곳에 달려있는 cctv를 옮겨 놓았기에 20분 거리의 다른 곳에 가서 설치해 주기로 했다. 여기 있는 강아지들은 몇 년 전 할머니가 다른데 분양 보냈던 강아지를 방치하고, 안 키운다고 해서 지인이 데리고 왔는데, 이제 와 그 할머니가 찾아와서 강아지를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린다고 한다. 말이 안 통하고 막무가내라서 혹시라도 찾아와 강아지를 풀어버리거나 하면 위험할 지도 몰라 급히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한 것이었다. 급한 만큼 다른데 있던 cctv를 임시로 옮겨 설치했던 것인데, 그걸 풀어서 다시 원래 있던 곳에 가져가느니 원래 있던 곳에 새걸 다는게 나을 것 같다고 해서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이건 가야 하는 곳이 20분 거리라는 걸 형용이에게 얘기하지 않아서 그렇게 결정된 것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가야 하는 곳이 그렇게 멀면 번거롭더라도 cctv를 다시 옮겨 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왕 가기로 했고, 나중에 지인이 혼자 가서 시시티브이를 다시 설치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시간을 낸 김에 가서 설치해 주고 오는 게 더 나은 일 같기도 했다. 그래서 성경이와 은총이가 있는 곳에 가서 cctv를 달아주기로 했다. 성경이와 은총이는 교회에서 오랫동안 키우던 개들인데,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바뀌면서 교회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계속해서 나가라는 종용을 받아왔다고 했다. 지인이 한편에 견사 자리만 내어 달라고 해서 밥도 챙기고 산책도 해 주면서 오랫동안 돌보았는데, 몇 달 전 짧은 말미를 두고 나가라고 통보를 해 와서 어렵게 구한 땅 한편 닭장에 몇 년 간은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옮겼다고 했다. 그 닭장을 청소하고, 펜스를 치고 정비하는데 며칠이 걸려 개들을 데려다 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인이 마음을 바꾸어 못마땅해하며 나가라는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온전히 주인이 작성한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는데, 개들을 죽이고 싶다는 말까지 하며, 압박을 해 왔고, 불안한 마음에 cctv를 알아봐서 설치한 것었다. 하지만 결국엔 주인이 정한 말미를 한 달 이상 남겨두고 결국 다른 곳을 찾아 다시 정비를 하고 옮겼다. cctv는 새로 옮긴 자리에 달아야 하는 것이었다.

몇 글자로 적으니 간단하고, 또 결국엔 옮길 곳을 찾았으니 다행인 일이 되었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나는 상상만으로도 진저리가 난다.


강아지들이 잠시 지내던 곳에도 묶여서 방치되던(땅 주인이 키우는) 개가 있었고, 새로 옮긴 곳에도 묶여서 지내는 개가 있다. 주인들은 다 자기 개에게 제대로 된 음식이나 적절한 잠 잘 곳, 단 한 번의 산책도 시켜 주지 않고 평생 개를 묶어 놓고 키우지만, 자기 개를 키우는 방식에 참견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새로 옮긴 곳에 있는 강아지는 우리 개와 이름이 같은 ‘보리’인데, 주인은 개에게 식당에서 얻어왔을 법한 뼈들만 잔뜩 주고, 사료라도 좀 챙겨주려고 하면 싫어하신다고 한다. 지인은 60여 마리의 방치되어 살아가는 개들을 혼자서 책임지고 돌보고 있는데, 그렇게 뼈만 먹으며 외롭게 살아가는 개를 가까이서 봐야 한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나도 한 번 만났는데, 보리랑 이름도 같고 작고 마른 것도 비슷해서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오늘도 보리를 보고 왔지만 괜히 주인을 만날까 싶어서 인사만 하고 지나쳐왔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 성경이와 은총이 집에 깔아준 이불이 다 젖어있었다. 펜스에 걸어 말려두고, cctv를 설치하고 왔다. 산책도 해 주면 좋았겠지만, 개들이 지내는 곳 주변이 도로인 데다, 괜히 낯선 사람인 우리가 산책시켜 주다가 사고라도 나면 안 되니 그냥 만져주기만 하고 돌아왔다.

하뭉이 그늘막을 만들어줘야 해서 바쁘기도 했다. 하뭉이는 ‘하우스 멍뭉이’의 줄임말이다. 동네 개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려고 버텼는데, ‘하우스 멍뭉이’를 줄여서 부르던 게 그냥 이름이 되었다. 너무 귀엽게 생겨서 외모가 정말 내 취향인데, 주인이 개를 챙겨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저씨에게 참견하지 않으면서 오가는 길에 가끔 간식 주고, 물 채워주고, 똥 치워주고 배고파 보이면 사료 조금씩 주고 그렇게 티 안 나게 챙기다 보니 작년 겨울에는 이불도 깔아주고, 옷도 입혀줬다. 몇 번 주인도 만났는데, 별로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다. 개가 지나는 사람이나 차에 가끔 짖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도 무서워서 반대쪽 담벼락에 붙어서 다니는데, 주인은 개가 하우스를 지켜야 하는데 사람들이랑 친해지는 게 싫어서 못 챙기게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자기는 사료를 주는데, 이웃 사람들 음식 쓰레기를 줘서 못 챙기게 하나 싶기도 하고..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난여름 한참 더울 때 그늘막 얘길 잠깐 했었는데, 해 줬더니 강아지가 다 뜯었다고, 그래도 개 집 옆에 큰 타원형 다라이(대야)를 놓고 물을 받아 열을 식히게 해 준다고 했다. 말 대로 대야에 물은 차 있었지만 그 물을 얼마나 자주 갈아줄지.. 내가 가면 물을 틀어 뿌려주곤 했는데, 그럴 때 외에는 개도 별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진 않았었다.


그때부터 하뭉이에게 그늘막을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더운 여름을 다 지나고, 겨울에는 이불 몇 번 깔아주고, 옷 입혀주며 버텨냈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부쩍 지쳐 보이는 날이 많은 것 같아 진작부터 그늘막을 작게라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천막을 사 와서 달아주었다.

개들도 그늘을 안다. 더운 날은 그늘로만 다니려고 하고, 그늘에 들어가면 앉아서 쉬려고 한다. 오늘 하뭉이도 그랬다. 내가 만져주니 좋아서 드러누웠다가, 그늘막이 거의 완성되자 바로 그늘 아래로 가서 자세를 잡고 앉았다. 뜯을 수 있을 만한 위치에 달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뜯어내 버리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덜 덥게 여름을 날 수 있기를.

하뭉이만 챙기고 오기는 미안해서 호두에게도 들러 간식을 주고 왔다. 간식만 주고 오려고 했는데 또 괜히 미안해서 잠깐 산책도 시켜줬다. 호두는 쉬를 할 때 엄청 깊이 앉아서 쉬를 한다. 언제 산책 나갈지 모르니 그냥 마려울 때 싸면 좋을 텐데,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참고 또 참다가 쉬를 하는 것 같다. 오늘도 한참을 앉아서 쉬를 했다. 또 호두를 어디 좋은데 입양 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비 온 뒤라 맹꽁이가 많이 운다. 아침에 한참 울다가 낮에는 조용하더니 또 밤이 되니 서로 대화라도 하듯 시끄럽다.

보리랑 나간 밤산책 길에는 벌레들이 나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톡톡히라는 별명을 가진 벌레도 있고, 풍뎅이도 있다. 무심한 발걸음이나 오가는 차들에 밟히기 너무 쉬운 존재들이다. 비인간 동물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삶의 조건들이 있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더 인간에게만 맞춰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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