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단상

오늘 만난 비인간 동물들

by 서기


가끔 가는 카페 근처에 있는 검은 강아지가 새끼들을 낳았다. 대문도 없는 집인데,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은 그리 나이가 많지 않은 것 같은데도 볼 때마다 강아지 밥그릇에는 알 수 없는 때가 말라 붙어 있고, 바닥에는 똥이 널려 있다.

그나마 양쪽으로 바닥에 고정된 와이어 줄에 1m쯤 되는 줄을 매달아 두어 활동 반경이 조금 보장된 정도가 그 아이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복지인 듯하다.

간식을 챙겨간 날이면 조금씩 주고 왔는데, 비 오는 오늘 보니 아빠가 흰 강아지였는지, 검거나 얼룩무늬를 한 강아지들이 그 집의 화단을 돌아다니고 있다. 보리를 보고 이쪽으로 종종종 달려오는 것 같았고, 어미는 눈에 띄게 경계하는 듯해서 얼른 그곳을 지나왔다.

그 강아지를 잊고 있었던 터라 줄 간식도 없는 걸 미안해하며 잠시 보고 있었는데 난데없는 꼬물이들이라니..

강아지들이 조금만 더 자라면 도로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미는 얼마나 애가 탈까.

어미 강아지는 우리가 사라진 쪽으로 담을 넘어 보다가 웡 하고 한번 짖었다.

우리 동네의 아기 강아지는 검은 강아지만큼의 최소한의 복지도 없이, 여전히 짧은 쇠줄에 매여있다. 강아지가 싸는 똥은 점점 커지고, 쌓이기 시작한다. 낑낑거리는 소리는 깡 하고 짖는 소리로 변하고, 사람에 대한 경계도 조금 생긴 것 같다. 주인을 만나지 못해(만나고 싶지 않아서) 피하던 사이 시에서 지원하는 중성화 수술 지원사업 신청이 끝났다. 4월 말까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업인데, 이 어린 강아지에게 그때는 너무 이른 시기였을 것이다. 12월 초에 한 달 정도 지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상반기 지원 사업을 신청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래도 밖에 있는 아이라 발정이 더 빨리 올지 어떨지... 괜히 불안하다.

주인을 만나 중성화 수술 얘기를 꺼내기에 너무 이른 시기일 것 같기도 했다. 주인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으나, 그 집에 있는 할아버지와 얘길 해야 한다면 턱도 없을 것 같다. 성희롱이라도 안 당하면 다행이다.


캐나다와 미국으로 입양 간 강아지들은 너무나 잘 지낸다. 정말 끔찍한 환경에 있다가 운 좋게 구조가 되고, 입양까지 잘 간 아이들은 정말 ‘견생역전’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드라마틱한 삶의 변화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해도 될 만큼 동화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동화 같은 결말 보다, 동화에 나오는 악당의 결말이라 해도 너무할 만큼의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들이 더 많다. 심지어 동화 같은 스토리로 구조하여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었던 아이들도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죽어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보는 ‘구조’ 스토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사실은 우리 주변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면,

개를 키우다가 부모님 댁에 보낸다는 사람들,

큰 개는 밖에서 키워야 한다는 편견(얼마나 큰 개가 '큰 개'인지는 모르겠지만),

귀여운 아기 강아지가 어디에서 온 건지 생각해 보지 않는 무관심,

마당 있는 집에 살면 개를 키우겠다는 로망,

개들은 털이 있으니 안 추울 거라는 기만(그럼 여름은 더워서 어떻게 하나),

야생성이 어떻고, 서열의식이 어떻고 하는 공부도 안 해보고 하는 허튼소리들.

그런 것들로부터 우리가 정말 자유로운지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나는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무서워 이제는 개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도, 산책을 시켜주지도, 밥을 주지도 않는다. 그 개들에게 마음을 주고 보살피면서 힘든 게, 외면하면서 아픈 것보다 더 힘들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돌보다가 멈추는 게 그 강아지들에게도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그렇다.

제보도 하지 않는다. 내가 책임질게 아니면 그건 그냥 남에게 짐을 떠맡기는 일인 것 같다. 이건 내 처세일 뿐이고, 주변에 힘든 비인간 동물을 본다면(인간도 포함하자), 도와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얼마나 도울 수 있는지 그 끝은 한번 꼭 생각해 보면 좋겠다.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쓸 수 없다면 그냥 물 한 모금, 멀리서 간식 한 번 주고 갈 길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만 얼마간이라도 책임을 나눠가질 의지가 없다면 다른 이에게 구조해 달라는 말도 삼가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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