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강아지 호두

오늘 만난 비인간 동물

by 서기

오늘부터 제주 장마가 시작되어 보리 산책을 비 오기 전 일찍 나갔다가, 밥 먹고 비가 안 오길래 또 잠깐 나갔다 오려고 했다. 형용이가 집 앞 골목에서 보리랑 같이 뛰는데, 골목 끝에서 하얀 개가 보였다. 호두였다.

앞집 강아지 호두. 재작년 설 즈음인가 아이들이 통통한 강아지를 안고 다니는 걸 봤는데, 가끔 그 아이들이 집에 올 때 빼고는 텃밭에 둘러놓은 철장 안에서 지내는 것 같았다. 좁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 안은 한 번도 치워주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가끔 아이들이 올 때 놀아주고, 산책도 시켜주고 하니 그나마 낫겠지 하고 지냈는데, 한 살쯤 되어갈 땐가 그 강아지가 동네 어귀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걸 봤다. 마침 그 집 트럭이 지나가는 것 같아 댁네 강아지가 아닌지 물어보니, 맞는데 잡히지가 않아 종일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주말에 아이들이 오면 그때 잡을 수 있을 테니 그냥 두라고. 아무리 시골 마을이지만 지나다니는 차들도 제법 되고, 조금 더 나가면 일주도로인데, 또 언제 가임기가 올지 모르는데 돌아다니는 것도 걱정됐다.

다행히 내가 가끔 그 집에 들러 철장 안으로 간식을 넣어주곤 했기 때문인지, 나를 알아보고 쫓아왔다. 그렇게 그 집에 강아지를 데려다 주니 아저씨가 강아지를 들어 철장 안에 넣었다. 아이들이 다녀간 다음이라서 그랬댔나, 뛰어오르다가 철장 위 덮개를 열고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자꾸 철장에 다시 넣어두기만 하니 잡히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천장을 잘 정비를 해도 아이들이 오면 잠시라도 꺼내줄 테고, 그러다가 마당을 나가면 또 얼마나 놀다가 올지 모르니, 그 강아지를 중성화 수술이라도 받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댁은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사시는데, 아드님이 거의 매일 와서 농사일을 같이 돕고, 주말이면 자주 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지내다 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오면 강아지를 풀어서 데리고 돌아다니다 우리 집에 마당이 있으니 놀러 오기도 했다. 한 번 우리 집에 와서 보리랑 놀기도 하고, 내가 이런저런 얘기하며, 사료도 먹이고, 간식도 주고 하니 올 때마다 내가 있으면 우리 집 마당에 놀러 왔다.

강아지에게 고추도 먹이고, 남은 음식 쓰레기를 준다고 하는데 헉 하면서도 너무 뻔한 일이라 별 말 안 하고 싶었다. 그래도 괜히 애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게 됐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강아지에게 먹고 남은 음식물을 주는 게 적합하지는 않을 텐데, 어른들이 그렇게 하니 뭐라고 말은 못 하고, 우리 집에 오면 강아지가 굶었다거나, 사료가 없다거나, 매운 걸 먹었다는 말을 자꾸 해서 나는 더 속이 상했다. 아이들은 그저 우리 집에 와서 강아지가 맛있는 걸 먹는 게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강아지가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살게 된 연유도 듣게 됐는데, 엄마가 개를 어디선가 데리고 왔는데, 아빠가 털 있는 동물을 집에서 키우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해서 할머니 댁에 오게 된 거라고 했다. 역시 너무 흔하고 뻔한 스토리라 전혀 놀랍지 않았다.


강아지는 그렇게 아이들이 오면 잠시 바깥 외출을 했다가, 다시 철장 안에 들어갔다가 하며 지냈는데, 어느 날부터는 마당 한쪽에 묶여 있게 되었다. 강아지가 철장 안에 들어가는 걸 너무 싫어하니 밖에 묶어 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명절 선물을 드리며 강아지 사료도 한 포 사다 드렸었는데, 할머니가 그 사료를 다시 주문해 달라고 돈을 주시기도 했다. 저렴한 걸 골라서 3kg에 5만 원 정도 하는 사료였다. 동네 마트에서 파는 사료는 너무 크고, 또 강아지가 잘 안 먹는다고 했다.


이름은 호두라고 했다. 약간 스피츠가 섞였는지 털이 복슬복슬한데, 눈은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이다.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실외사육견 중성화 지원사업 공고가 떠서 호두 중성화를 시켜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뭘 그런 걸 하냐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묶여 있으면 분명 가임기가 됐을 때 임신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그냥 그렇게 되도록 둘 수는 없었다. 잠깐 앉아서 좀 더 설득을 하니 해 주라고 하시고, 서류에 사인도 해 주시고, 신분증도 내어주셨다. 바로 읍사무소에 가서 신청을 했다.


며칠 지나서 아드님을 만나 서류 낸 얘기를 하니 그런 일이 있으면 본인에게 연락을 하라고 연락처도 주시고, 강아지 병원도 본인이 데려가시겠다고 했다. 너무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호두가 중성화 수술 하러 가는 날, 할아버지가 또 쓸데없는 일 한다고 안 좋아하시니 마을 어귀에서 아드님과 만나서 호두를 트럭에 태워 데려가시도록 하고, 수술이 끝나면 내가 데리고 오기로 했다. 트럭 뒤에 태워갈 생각을 하시길래, 너무 위험할 것 같아 조수석에 비닐 포대 같은 것들을 깔고, 머리 받침에 리드줄을 묶어 데려가시도록 해 드렸다. 출발하기 전에 산책하면서 쉬도 하고, 응가도 했는데, 가는 길에 차에서 응가를 또 했다고 했다. 아마 차에 타 본 일이 거의 없었을 테니 무서워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키우면서 그런 일은 많았다며 괜찮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래도 왠지 죄송스러웠다.


수술이 끝날 때가 되어 호두를 데리러 갔다. 내가 구조했던 강아지들 대부분이 다녔고, 보리도 다니는 병원이라서 내게는 익숙한 곳이고, 호두는 나를 보고 반갑다며 꼬리를 흔들며 나왔다. 수술한 강아지 같지 않을 만큼 발랄한 모습이었다. 워낙 수술 솜씨가 좋은 선생님이다. 수술을 하고 5일 동안은 매일 약을 먹여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약을 챙겨 먹여야 할 테니 선생님이 하루 1번만 먹을 수 있게 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래도 5일 동안 그 핑계로 강아지 산책을 매일 해 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호두가 너무 기대하고 나를 기다리게 될까 봐 충분히 긴 산책은 해 주지 못했다. 밥을 좀 더 든든히 먹이고, 약 먹이고, 배변을 할 정도만 짧게 산책을 했다. 그걸로도 호두는 너무 좋아했다. 수술 회복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호두에게는 나름 행복한 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약을 다 먹은 다음부터는 매일은 아니고 이틀에 한 번 정도, 그리고 조금씩 더 긴 기간을 두고 갔다. 내가 호두를 평생 산책시켜 줄 수 있는 게 아닌데, 호두가 나에게 익숙해지고, 나를 기다리느라 종일 배변을 참고 있는 걸 바라지 않았다.


할머니는 걸음이 불편하셔서 호두를 산책시킬 수 없고, 할아버지는 개를 산책시키는 건 꿈에도 꿔 보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간식을 드리며 호두와 친해지기를 권하면 좋아하긴 하신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더 나아지며 호두가 10년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와 잘 지내며 살 수 있으면 어떨까?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호두에게 새 가족을 찾아주는 게 더 나은 거 아닐까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을 찾아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훈련하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아이들이 집에서 호두를 키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엄마를 설득해 보라고 꼬셔보기도 했다. 아파트에서도 충분히 개를 잘 키울 수 있다고. 그런데 씨알도 먹힐 것 같지가 않았다.


어느 날 보리 산책을 나가는 길에 호두가 짖길래 잠시 호두에게 들렀다가, 배가 고픈가 싶어 밥을 주려고 보리 줄을 놨다가 보리가 호두에게 가까이 갔는지 둘이 으르렁 거리며 싸움이 붙은 일이 있었다. 바로 떼어내서 큰일은 없었는데, 그 뒤로는 둘이 만날 때마다 짖거나 으르렁거리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호두와 마당에 놀러 오면 보리는 집 안에 있게 하곤 했었는데, 어느 날 호두가 아이들과 놀러 왔고, 마침 마당에 있던 보리 반응이 괜찮길래 줄을 잡고 호두와 아이들이 들어오게 해 주었다. 아이들이 호두 줄을 놓았고, 호두가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보리가 별 반응이 없길래 나도 긴장이 풀렸던 것 같다. 호두가 끌고 다니는 리드줄을 풀어주려고 보리 줄을 잡은 채로 호두에게 가까이 갔더니 두 개가 또 으르렁 거리며 붙어버렸다. 나도 순식간에 바닥에서 뒹굴고, 목덜미를 물고 있는 개를 떼어 놓으면 다른 개가 목덜미를 물었다. 누가 물고 있는지도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마침 집에 와 있던 친구가 내가 소리 지르는 걸 듣고 나와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이 났을지도 몰랐다.


언뜻 보니 호두는 물린 상처가 없는 것 같았고, 보리는 귀 쪽에 조금 피가 나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호두를 보내는데, 아이들이 상처 치료제가 없다며 걱정하는 게 들렸다. 다시 호두를 자세히 살피니 호두에게 상처는 없었고, 아이들이 호두를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약이 없다는 얘기만 하는 게 화가 나서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다. 나도 너무 정신이 없는 상태였고, 한동안 진정되지가 않았는데, 한참 뒤에 아이들에게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리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했다. 목덜미와 귀 뒤에 구멍이 여러 개 나 있었다. 동물병원 선생님께 전화드리니 개에게 물린 상처는 염증이 생길 수 있어서 잘 봐야 하는데, 상처가 깨끗하게 난 것 같다고 일단은 약 발라주고 잘 보라고 하셨다. 보리가 교통사고 났을 때처럼 하필 또 토요일이었다. 약을 발라주면서 보니 상처가 처음 본 것보다 더 많았다. 구멍도 꽤 크고 깊어 보였다. 보리에게도, 호두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호두가 상처를 입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호두도 상처가 났다면 잘 보살펴줄 수도 없는데 더 미안하고 속상했을 것이다. 보리의 상처는 다행히 잘 아물었고, 병원도 다녀왔는데, 괜찮다는 소견을 들었다. 그 뒤로는 보리와 호두는 절대 만나게 하지 않았고, 보리가 집에서 갑자기 짖거나 하면 호두가 풀려서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 산책을 나가다가 호두와 딱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호두 할머니는 본인이 산책을 시켜줄 수는 없지만 계속 묶여 있는 호두가 안쓰러우니 호두를 한 번씩 풀어주시는데, 그러면 호두는 묶여 있던 쇠 줄을 그대로 끌고 다니며 온 동네를 돌아다닌다. 한 번은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일주도로 건너편에서 호두를 만나 엄청 긴장한 상태로 불러서 데고 온 적도 있었다.(일주도로는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왕복 4차선 도로다) 얼마 전부터는 아드님이 자전거를 타고 호두를 산책시키시길래, 위험할까 걱정이 되면서도 호두에게는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매일 오시는 건 아니니 할머니가 또 풀어주신 모양이었다.


내가 산책을 시켜주기도 하지만, 또 밖에서 풀려있을 때 만나면 집에 데려와 묶어 두니 이제 풀려 있을 때는 내가 불러도 잘 잡히지 않는데, 그래도 오늘은 보리에게 막 달려갔다가도 내가 부르니까 바로 다시 나에게 왔다. 호두가 조금만 공격성이 있는 강아지였어도 바로 보리랑 싸움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보리 리드줄을 잡고 있던 형용이가 잘 대처를 했고, 호두도 나에게 바로 다시 돌아와서 큰 일 없이 잘 헤어질 수 있었다. 호두가 나를 보고 너무 반가워 한참을 뛰어오르는 걸 받아주다가 다시 집에 데려가 묶어 주었다. 아직 어린 강아지인데, 제대로 노는 걸 배운 적도 없으니, 조금씩 입질을 하려고 한다. 보리와 싸움이 붙었을 때 보리만 상처가 났던 것도, 다른 개와 놀아본 적이 없어 힘 조절을 할 줄 몰라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두가 뛰어오르며 자꾸 입으로 내 팔을 풀려고 했다. 당연히 아프게 물려는 건 아니지만, 이빨이 날카롭고 힘 조절을 할 줄 모르니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고, 호두를 생각해도 고쳐주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늘 묶여 있는 강아지의 사회화를 어떻게 잘 도와줄 수 있으려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강아지 예쁘면 데려가 키우라고도 하셔서 입양을 보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기도 했는데, 도저히 그 일을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 그리고 호두가 없으면 아이들이 다른 강아지를 또 어디서 데리고 오겠다고 할지도 모르겠고. 정말 좋은 건 아이들과 엄마 아빠가 호두를 잘 데려가 잘 키우는 것일 텐데.. 너무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호두가 안쓰러운 마음이 늘 저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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