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난 비인간 동물

일주서로에서 만난 어린 직박구리

by 서기

아침에 보리랑 대정 오일장 다녀왔다. 가는 길에 강아지와 산책하는 중년 부부(장년 부부라고 해야 할까 - 나도 이제 중년에 접어들어 가는 걸 생각하면..)를 봤는데, 그들이 향하고 있는 길에 점박이가 있었다. 찻길에서만 보며 지나가서 안 보일 때가 많은데, 오늘은 보였다. 점박이가 보여도, 안 보여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데 점박이가 보이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 오래도록 무겁다. 물이라도 갖다 주고 싶은 마음과, 그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부딪혀 늘 아무것도 안 하고 마음 한 구석 미안하고 슬픈 마음뿐인데, 이렇게 눈에 보이는 날은 그 마음이 더 진하다. 한 번 정말 물이랑 간식이라도 주고 오자 싶지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장년 부부가 지나가며 점박이를 보고 그 주인에게 개를 잘 키우도록 영향이라도 주거나, 신고하거나, 구조하려고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그냥 지나쳐 가고, 그들이 오는 기척을 멀리서부터 지켜보던 점박이는 그들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볼 것이다. 묶여 있는 개들이 산책하는 개들을 보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개들이 사람처럼 복잡한 생각을 하거나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개들도 외로움이나 무서움, 즐거움을 느낀다는 건 확실하다. 외로움을 외로움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뿐이겠지.


오일장 나들이는 즐거웠다. 보리와 산책도 오래 하고, 김밥과 커피를 사서 아점도 먹었고, 의상으로도 쓸 수 있을 만한 여름 아이템도 장만했다. 여름의 맛인 참외와 토마토, 오이도 넉넉하게 샀다.

오는 길에 도로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걸 봤다. 차도 한가운데 있어서 용케 차바퀴에 치이거나 하진 않은 듯했지만, 우리가 지나온 뒤에도 찻길에 가만히 있어서 차를 돌려 새에게로 가서 형용이가 모자로 집어 길가로 옮겼다. 외상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새가 멍해 보였다. 물을 떠서 주니 먹진 않는데, 입으로 조금 흘려 넣어주니 먹는 것 같았다. 왠지 기운도 조금 차리는 것 같았다. 좀 더 그늘이 넓은 곳으로 옮겨 주려고 두 번을 옮겼는데, 그때마다 똥을 쌌다. 조금 씹어 삼킨 열매가 똥이 되어 나온 것 같았다. 물그릇에 열매를 토하기도 했다. 기운을 차리려고 하는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새 관찰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소철이라 날다가 떨어진 새는 가까운데 있으면 어미새가 와서 데려갈 수도 있다고 하길래 일단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120에 전화해서 야생동물구조센터와 통화도 했고, 위치 사진이랑 새 사진도 보내두었다.

그래도 걱정이 돼서 우리가 본 새의 이런저런 증상을 문자로 적어 구조센터에서 연락받은 번호로 보냈는데, 그분들이 와서 보니 새는 이미 죽어있었다고 했다. 비행 미숙으로 차에 부딪혀 뇌진탕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좀 더 자리를 지켜줄 걸 그랬나.. 전문가가 올 때까지 좀 더 보살펴 줬더라면 살 수 있었을까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아스팔트에서 죽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죽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오후와 저녁 내내 어린새 생각이 문득문득 났다.


저녁을 먹고 보리와 산책을 나섰다. 오랜만에 이웃 동네 밭들 사이 길을 산책하기로 했다. 주인이 따로 있지만 거의 방치되어 지인이 도맡아 돌보고 있는 강아지 단비에게도 잠시 들렸다. 어제 지인이 들러 밥을 많이 주고 갔을 텐데 밥이 하나도 없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개들이 가끔 와서 뺏어먹기도 하고, 요즘엔 쥐들도 많이 온다고 한다. 보리가 있어 오래는 못 머물고 돌아가는데, 우리가 가려던 길에 그 동네에 돌아다니는 백구 두 마리가 있었다. 한 마리는 조금 크고 통통했는데, 한 마리는 너무 작고 여위어 보였다. 둘 다 얼굴은 어려 보였다. 괜히 개들을 도망가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길로 돌아서 왔다. 아까 단비에게 가는 길에 멀리서 봤던 하우스가 있는 길이었다. 그 하우스에도 개가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 하우스 옆면에 그늘막이 쳐 있고, 개 집이 보이는 것 같길래, ‘저기도 개가 있구나, 그래도 그늘막은 있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하우스 옆을 지나게 된 것이다. 그늘막도 있고, 줄도 여유 있게 묶어 두긴 했는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 아니라서 너무 외로울 것 같았다. 보리와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고, 내 손도 살짝 핥아주었다. 간식도 없고, 아무것도 줄 수 없어서 마음이 아쉬웠다. 다음에 한 번은 더 가서 간식이라도 조금 주고 와야겠다.


오늘만 해도 본 안타까운 개들이 다섯 명. 그리고 늘 내 마음속에 미안한 마음으로 무겁게 자리한 우리 동네 강아지 두 명, 그 외에도 조금은 덜하고 심한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 그렇게 살지 않으면 좋을 개들이 우리 동네와 옆 동네만 어림잡아 세도 두 손으로 다 꼽지 못한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불쌍하고 안타깝고 위험하고 아프게 살아가는 개들이 몇 명이나 될까? 못해도 만? 5만도 넘지 않을까? 더 되려나? 제주 작은 시골 마을만 해도 언뜻 생각나는 개가 열 명이 넘는데.. 한국 반려동물 수가 300만을 넘었다고 하니, 방치되거나 학대받고 있는 개들의 수도 10만은 되지 않을까 싶다. 시골에서 방치되어 사는 개들 중 많은 수가 도시에서 자녀들이 키우다가 맡긴 경우가 많다는 걸 떠올리면 더 될지도 모르겠고, 우리가 모르는 여러 규모의 개 농장들이 있을 걸 생각하면 그 수는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개 식용 금지법이 통과된 후 늘어나는 흑염소 식당들을 생각하면, 비단 고통받는 동물들은 (당연히) 개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 만난 새도 차에 치이지 않았다면 성공적으로 이소를 했을지도 모르고, 제트스키로 돌고래를 따라다니다 신고 됐다는 뉴스는 잊을만하면 나온다. 제주 해안에 수많은 양식장들을 생각하면 막막해지고, 오늘 오일장에 팔리려 나온 닭들은 그늘 없이 좁은 철장에 갇혀 있었고, 제주도에서는 종종 말이 실린 트럭을 보고, 제주도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도로에서 돼지들이, 소들이, 닭들이 실린 트럭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매일매일 비인간 동물들과 마주친다. 그들을 생각하며 혼자 마음 끓여 온 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어떤 때는 구조하려고 애쓰기도 했고,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대체로 외면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도 마음이 참 힘들고 무너지는 일인데, 개들을 구조하려고 애쓰며 무너지는 일상을 감당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일인 것 같다. 거칠게 말해 보자면, 어떻든 정신병이 올 것 같으면, 적어도 내 주위 사람들에게 도리는 하며 살 수 있는 쪽을 선택하는 게 나은 것 아닐까 라는 게 지금 내 생각인 것 같다.

그래도 혼자 그런 마음을 끌어안고 있는 게 괴로워서, 하루, 하루, 제주에서, 내가 만나는 비인간 동물들에 대한 얘기를 적어볼까 싶다.


개들을 구조한 이야기를 쓰려다가 다른 개들을 구조하는 바람에 멈추게 됐다. 그 이야기도 다시 써야겠지만, 이 글을 그냥 어떤 책임감이나, 바라는 것 없이 관찰자의 마음으로 한번 조금씩 적어나가 볼까 한다. 아마도 바라는 것 없는 마음도, 관찰자의 마음도 쉽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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