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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집

2025_제주 여행 2일 차

유동룡 미술관, 박서보의 집, 풍차해안도로, 클랭블루제주, 와랑식탁

by borderless

제주 서쪽의 신창리와 한경면은 밭과 축산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다. 관광 택시 기사님께 여쭤보니 서쪽은 브로콜리, 비트, 양배추가 많이 나고 동쪽 구좌에서 당근이 주로 재배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흙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바닷가와 가까운 곳은 밭, 오름과 산지가 있는 곳은 축산지가 많다. 제주는 겨울이 지나 봄에 수확한다는 것도 재밌었다. 땅이 따뜻하여 작물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겨울이 와도 흙 안에 있는 채소들이 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을 보낸 무는 그렇게 달고 맛있다고 한다. 대신 브로콜리는 얼어서 겨울 재배는 어렵다고.



유동룡미술관

방주 교회

여행을 가면 어딜 가든 미술관은 꼭 가는 데, 이번에는 유동룡 미술관을 방문했다. 유동룡은 이타미준의 제2의 이름이다. 유동룡의 '유'자는 당시 일본에 없는 한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타미라는 이름은 '이타미 항공'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니, 그 항공을 이름을 따서 경계 없는 건축가를 뜻하는 '이타미'를 이름에 넣었다고 한다. 그가 실제로 태어난 곳은 일본이다. 동양사조가 접목된 건축물 스케치와 그림들을 볼 수 있었고 그의 건축 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추석 연휴인데도 불구하고 매 시간대마다 사람들이 많아서 예약을 하고 입장을 해야 되는 시스템이었다.

유동룡 미술관 1층
유동룡 작가의 여권
건축 조형물
시그니쳐 티와 디저트 떡

미술관에서 받은 티켓을 1층에 있는 차 마스터에게 드리면 시그니쳐 티와 디저트 떡을 먹을 수 있었다. 통창 너머로 짙은 녹색과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차 한 잔은 궁합이 괜찮다. 제주이지만 일본 느낌도 나는 것이 신기했다. 아무래도 공간 내부가 검고 통창을 통해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짙은 녹색의 결합이라서 그랬던 것 같고, 일본을 가면 주로 검은 인테리어나 작품을 볼 수 있는데 그 유래를 아직 찾지 못했다. 전시 공간이 그리 넓진 않기 때문에 작품 수가 많진 않았지만 알맞게 배치되어 있어 가볍게 보기 좋은 곳이다.




박서보의 집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3/10/15/NYZ4DMADSZC6VFMK4MOCGMAB7Y/?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1904040001142

박서보는 좋아하는 작가고 그의 추상화를 좋아한다. 평소에도 구체화보다 추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그중 제일 좋아하는 건 색면 추상화나 패턴 추상화다. 단순한 걸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색면 추상이라면 어떤 의미를 찾기가 힘들긴 하지만, 색면이 넓을수록 우주 같고 광활해서 깊이 빠져드는 느낌을 좋아한다. 그 색이 내 마음이 될 수도 있고, 푸르면 바다가 되기도 하고, 밤이면 우주가 되기도 하여 해석하기 나름이다. 아쉬운 건 박서보의 집은 문이 닫혀있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점.


2011년 요코하마에서의 연합전시 작품 발표 중

여러 작품들을 마주할 때마다 작가를 안 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오래 그렸지만 작가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의 길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되는데 그럴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지극히 상업적인 것을 원했는데, 그에 반해 고등학교에서 잘했던 전공은 동양화와 조소였다. 세밀하게 선을 여러 번 그어 파내는 작업을 선호했지만 그 일이 돈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을 선택해 왔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지금은 예술을 향유하는 개념으로 관조하고 있다.




신창 풍차 해안도로

마치 대형 선풍기가 바다에 콕 콕 박혀 있는 모습이다. 비가 많이 와서 해면도 거칠고 그 분위기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빗줄기로 길을 걷는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남아 길게 바다를 바라봤다. 카메라만 없었다면 더 오래 바라봤을 텐데 비바람이 거세져 오래 서 있기는 사실 어려웠다. 해안다리 초입에서 가족 단위로 방문하신 관광객 아주머니께서 사진을 찍어 달라 하셔서 사진을 남겨드렸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종종 사진 찍어달라는 분들이 계실 때가 많다. 아마 내 목에 걸고 있는 카메라를 보시고 '저 친구는 사진을 잘 찍을 것 같아'라고 판단하시는 걸 수도 있고, '저 친구라면 사진을 찍어줄 것 같다'는 이미지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여행지에서 사진 찍어드린 일이 종종 있다.

멋진 풍차 행렬



클랭블루 제주

주문한 말차라테

풍차와 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곳을 찾았다. 기사님은 아메리카노만 원하셔서 커피 한 잔을 사드리고 나는 말차라테를 시켜서 아주 조금만 마셨다. 생각보다 너무 세서 소량만 마셨는데도 이 날 잠을 못 잤다. 아시겠지만 말차와 홍차의 카페인 함량은 생각보다 세다. 여행길에서 기사님의 인생 스토리도 들었는데, 제주도 토박이로 지금의 아내이신 부인은 서울 여자이셨고, 여행 온 아내의 예쁨에 반해 결혼을 하셨다고 하셨다. 어떻게 대시하셨냐 여쭈어보니, "아내가 예뻐서 내가 밥 먹자고 하고 술도 먹었지!"라고. 어쩌다 보니 여행 중에 기사님의 러브 스토리도 듣게 되었고, 제주 문화나 사회 문제도 들을 수 있었다. 클랭블루는 블루리본 맛집이었고 그중 말차와 우도 카페라테가 메인 음료였는데 그중 말차를 주문했다. 간간히 외국인 분들도 보였고 아주 가까이서 바라보는 풍차는 장관이었다.



와랑식탁

비가 오니 몸 컨디션이 영 떨어져서 간단히 숙소에서 쉬면서 먹을 수 있는 오니기리 주먹밥을 포장했다. 주먹밥과 해물라면을 판매하는 곳이었고 날씨가 썩 좋지 않아서인지 내부에 손님도 한 명뿐이었다. 매장 내부에는 LP판과 음악이 흘러나왔고 모던함보다는 빈티지함이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 날은 많이 흐렸지만 도착한 숙소에서 조용히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숙소 앞이 바다라서 바닷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과 브런치에 여행 기록을 차분하게 남길 수 있는 시간도 평온했다. 서울로 가면 항상 바쁘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서울 사람들은 대부분 바쁘긴 하지만 가끔 아주 한적한 동네에 머물면서 자연과 자유로이 시간을 보내다 올라가는 걸 좋아한다. 책도 있고, 음악도 있고, 바다도 있고. 그렇게 자연에서 충전을 하고 올라가면 그 추억으로 남은 해를 마무리한다. 그게 나의 아주 소소한 행복이다.


매장 구석에 LP 들

다음 이야기도 곧 작성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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