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요가, 색달해수욕장, 달팽이식당, 사계해안, 인스밀, 곽지해수욕장
숙소에 새벽 6시쯤 나와보니 모두들 러닝을 하고 있었다. 새벽 바다도 좋았지만 부지런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제주에 와서 더 많이 느낀다. 할 일이 많아서 일어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야 하루가 온전하게 흘러가서도 크다. 새벽은 기분을 묘하게 뭉클하게 만든다.
바다요가를 꼭 해보리라 하고 급히 예약했다. 금년은 계획된 루트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제주를 덜 즐긴 것 같지만 하고 싶은 것 1-2가지 해도 여행은 충분하다. 바다요가 장소는 서귀포 중문관광로에 있는 퍼시픽 리솜이다. 기사님 말씀으로는 경치가 아름다워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고. 나는 수업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바다를 더 오래 즐겼다. 수업은 기본 레벨과 난이도 있는 하타 요가를 했는데 오랜만에 안 쓰던 근육을 쓰니 좀 어려웠고, 끝날 때는 등 뒤로 땀이 맺혀 오히려 개운했다. 바다를 좋아하니 바다를 보며 요가를 해보고 싶었다. 아주 단순한 이유다.
요가 수업 장소에서 가까운 색달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모래사장 위 누워서 약 1시간 정도 잠을 청했다. 좀 피곤했었다. 요가 수업이 7시 50분에 시작이라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도착하려면 새벽 5-6시에는 일어나야 되어서 말이다. 전날 비가 계속 오던 터라 모래사장은 축축했고, 그 나름대로의 짙은 바다의 매력이 있다. 해변가에 가면 맨발로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발이 어느새 부드러워져 있다.
색달해변에서 멀지 않은 한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제주에 가면 넓은 나뭇가지 소쿠리 같은 곳에 나물 반찬을 이것저것 담아주는 경우가 있다. 보통 돔베고기, 물회, 전복, 갈치가 유명하지만 나는 주로 생 해산물보다 익힌 전복과 새우, 생선류 그리고 한식을 먹는 편이다. 그래야 이동할 때 힘이 덜 빠지고 컨디션 관리가 돼서 말이다. 달팽이 식당에서는 기본 정식으로 청국장과 불고기, 몇 가지나물 등을 소박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음식 맛은 서울 같아서 차별점은 없으나 부담 없는 한식을 드시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다. 제주에 가면 꼭 맛집을 위해 가진 않는다. 그것보다 자연을 만나러 가는 게 더 크다.
한 번쯤 보고 싶었던 사계해안에 가보았다. 우도처럼 맑은 모래사장의 바다도 아름답지만 축적된 지질과 깎인 돌들의 모습도 보고 싶었다. 검은색부터 갈색까지 짙은 그러데이션이 광활하게 펼쳐진 남성스러운 해안이다. 기사님께 여쭈어보니 바다색은 바닥에 해조류가 있는지, 모래가 검은색인지에 따라 색깔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그중 나는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를 제일 좋아해서 맑은 바다 빛깔을 보고 싶었으나 이번에는 좀 더 푸르고 짙은 바다를 더 많이 본 것 같다. 그래도 멋있었다.
보리개라 하여 커피 대신 미숫가루를 주문했다. 카페에 가면 기사님께 커피 한 잔을 사드렸고, 나는 나대로 시간을 보내며 카페에서 주변 경관을 보며 휴식을 취했다. 공간 내부는 현대적인 느낌보다는 제주와 어울리는 향토적인 인테리어가 가미된 공간이었는데 감흥이 있진 않았다. 아무래도 카페 공간이 많다 보니 나 스스로 시각적으로 새로운 걸 찾고 있는 모양이다. 보리로 만든 튀김 간식도 판매하고 있었고 창문이 넓어 창 너머로 바다도 편히 볼 수 있는 곳이다. 중간중간 기사님을 통해 제주 방언을 배우는 게 사실 더 재밌었다.
기사님은 내가 커피를 한 잔씩 사드릴 때면 항상 '감사합니다'하며 음료를 받아 들고 가셨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기사님만의 감사표시인지 내 뒷자리에 물을 수줍게 놓아주셨다. 추석 저녁에 친구들과 같이 물고기를 구워 먹을 거라며 신나 하셨고, 나는 한 3일쯤엔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틀고 편안하게 돌아다녔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난 인생에 귀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다. 그리고 남들은 보지 못해도 내가 베푸는 삶을 쌓다 보면 마치 윤회하는 것처럼 복이 다시 돌아온다고 여긴다. 그렇다고 내가 착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하는건데, 세상을 대할 땐 사필귀정, 역지사지 이런 것들을 잘 인지하고 살면 좋다.
수영복 입고 수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서핑 보드로 파도를 타는 분들이 많이 보였다. 항상 서퍼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물을 무서워하여 깊은 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편이다. 일전에 함덕해수욕장은 물높이가 얕고 맑아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맥주병처럼 둥둥 떠나닐 수 있는 곳이다. 곽지해수욕장의 파도는 서퍼들에게는 최적의 조건으로 보였다. 언젠가 나도 파도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진 용기를 못 내고 있다. 하지만 언젠간 도전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내년에는 할 수 있을까.
저녁에는 가볍게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동문시장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조천이나 어느 마을로 들어갔으면 먹거리 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제주시에 있다 보니 음식 찾는 건 크게 문제가 없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전복 주먹밥과 관자 치즈구이를 집어 들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비좁은 데다 내부도 좁아 서 있을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급하게 사서 자리를 빠져나오기 바빴던 것 같다. 외국인도 보이고, 뭐 먹어야 될지 고민하고 있길래 옆에서 추천도 해줬다. 밤 야시장은 처음 와 보는데 낮의 야시장보다 더 활기찬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