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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derless Aug 25. 2019

쓰나미와 함께한 한일연합전시 테츠손

요코하마 2011



갑자기 일본은 왜



2011년이라니. 벌써 8년이 흘렀다는게 신기하면서도 너무 빠르게만 느껴진다.

학부 시절 한번 쯤은 해외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대학에 와서 또 공부만 하는 건 나에게 무미건조한 일이었다. 큰 일탈은 없었으나 하고싶은 걸 해보는 게 대학 생활의 묘미 아닐까.



슬기와 민 아티스트

수업 중 '다이어그램의 추상화'


전시 준비는 1년 미만으로 진행했고 슬기와 민 교수님의 '정보디자인' 수업을 들었었다. 대학에서는 여전히 수직적인 교육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지금껏 들어왔던 수업들과 달리 정보디자인 수업은 학생들과 자유롭게 토론도 하고 작품에 대해 거침없이 피드백을 나눌 수 있었기에 정말 재밌게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명 만 '정보디자인'이지 사실은 개념 미술에 가까웠는데 왜 그 위치에 선을 넣어야 되는지 결과물을 만드는데 새로운 형식과 법칙을 만드는 것들이 까다로웠다.


 





전시 진행 과정 그리고

그림과 멀어진 이유


수업이 끝난 후, 미쳐 마무리하지 못한 과제  '언어의 시각화'를 완성하여 전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벽면에 붙여진 '한일 연합 그룹 전시회' 포스터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일본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지만 새로운 걸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고 뭔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즐겁게 느껴졌다. 그 이후, 집 근처에 작업실을 얻어 겨울이 다 지나도록 대형 포스터 작업을 천천히 해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추웠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한건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곳에 열정을 쏟을 것이 분명한데 항상 그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하나에만 빠지곤 한다.


 

사진 위 트레이싱 지를 데고 그림 연필 드로잉


전시를 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리고 다시는 붓은 잡지 않을 것 같던 내가 전시를 하려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고등학교 시절 실기 수업은 너무나 지루했고 정해진 틀과 패턴이 안에 선생님들께서 좋아하시는 그림 스타일이 있었다. 형태를 잘 맞추고 색을 엇나가지 않는 선에서 현실적으로 쓰는 친구들을 좋아하셨다. 그에 비해 난 아주 반대였는데 구도와 색을 특이하게 쓰지만 비례감은 취약했다. 그러다보니 1시간 만에 석고 형태를 잡고 명암을 후다닥 끝내버리는 친구들을 따라가는 것이 조금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미 서양화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경험한 바 상상과는 다른 수업방식이었고  시기에도 항상 내 길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표현 위주의 수업 방식으로 인한 매너리즘


무엇보다 입시 위주의 그림은 매너리즘으로 빠지기 쉬운 과정이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내가 매너리즘이 빠진 다는 말을 하는게 그렇긴 하지만 어떤 이론적인 내용 없이 감성적으로만 필력을 강조하는 과정들은 내가 원하는 방향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표현은 역사와 이론에 기반했을 때 그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것들을 배울 수 가 없었다. 서양화를 전공했음에도 서양사를 잘 모른다는 건 너무 창피한 일이지만, 그림이란 건 당대의 일반적인 흐름에 반기를 듬으로써 새로운 작품이 나오는 것인데 내가 그리는 입시 미술은 어떤 역사성도 없으며 그렇다고 기발하지도 않고 가치없는 것들이라 생각했다.





전시 포스터, TETSUSON 2011


일찍이 이런 앞선 생각들로 인해 호그와트일 거라고 믿고 싶었던 고등학교 생활은 물거품이 되버렸다. 그림을 좋아해서 특목고에 지원한 것도 있지만 꼭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지원을 한 건 아니었다. 집을 나와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예상과 달리 천재같은 친구들에 둘러쌓여 나의 부족함을 깨달을 때도 많았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는 서양화나 어떤 작품은 만들지 않을 줄 알았다. 그 길은 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에.





쓰나미가 터진 당일 거리의 모습


그러던 내가 일본에 별 겁도 없이 전시를 해보겠다며 포스터를 들고 요코하마로 날라간 것이다. 대학생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조금 겁쟁이 같다. 전시 둘째날, 무난하게 흘러갈 것 같던 전시 일정 중 쓰나미가 터졌다. 아니, 왜 100년 만에 오는 쓰나미가 내가 갈 때 오는건지. 여러모로 참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사는 듯 하다.



지금은 지난 일이니 특별히 생각할 일이 적지만, 지진은 살아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밤 낮으로 불안의 연속이었다. 재밌는 건 정작 일본인들은 아무 걱정이 없었고 그들 말로는 항상 이런 여진이 일상이라 괜찮다는 것이었다. 편의점엔 삼각김밥이고 간편 음식들은 아침이 채 되기도 전에 동이 나있었는데 지진으로 인해 빌딩 처마는 갈라져 온 세상이 균형을 잃어가는 듯 했다. 그 와중에 일본인들은 세상 너무 태평해서 나조차도 살아돌아가는  중요한지 전시를 마무리하는게 중요한지 구분하는것이 무의미하지 않았나 싶다. 한 편으론 스스로 안 죽을거라고 생각했고 같이 있던 친구들도 굉장히 해맑았다. 그래서 그 때의 상황이 나에겐 재밌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열심히 작품 설명 중인 내 모습
심사 중인 일본 심사위원들
선정된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나누는 심사위원들




일본 심사위원에게 작품 설명을 마친 뒤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의 학생들은 다같이 뒷풀이 겸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그 공간에서도 재밌는 경험이 되었다. 심사위원 중 한 분은 나에게 왠 어린 가 술을 먹으려고 하냐며 장난도 치셨는데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소탈하고 밝은데다 남학생들끼리는 이 여학생이 마음에 드니 마니 농담 겸 진담을 나누며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여전히 그리운 건 전시 자체도 있을 수 있지만 이만큼 단순한 사고방식과 추진력이다. 너무 많은 고민을 하지 말고 하나에 집중한다는  나이가 한살 한살 먹을수록 신중을 기해야 되는 일이 되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서 경제적인 끈을 놓지 않고 병행하는 것은 세배로 에너지 소모가 된다.




작품을 유심히 보는 심사위원 모습






멋있었던 Bank Art studio의 공간 내부



https://www.facebook.com/bankart.studio.nyk/

조화롭던 전시 공간 내 휴게실

그때는 해외 전시가 처음이다보니 전시 공간이 얼마나 멋있는 곳이 었는지 가늠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미술관 외벽 쪽으로 가면 바깥 풍경으로는 항만이 보이고 공간 내부는 벽면이 아주 넓었기 때문에 대형 작품을 전시하고자 하는 작가들에게는 정말 최적의 조건이었다. 보통 전시를 하기 전에는 본인의 위치와 벽면 길이 등을 설명해주는 전개도를 받는데 처음 전개도를 받아보고 좀 당황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너무 벽면이 길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여백이 너무 많이 남아 작품 자체가 허전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포스터를 제일 큰 사이즈로 출력한 것도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저녁의 Bank Art studio 모습







글을 마치며


새롭게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건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듯 하다. 과정은 불안하고 때때로 힘들어서 중도 포기하고 싶어지지만 결국 해내고 나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시간이 흘러도 나에겐 여전히 여운있는 스토리가 되어 이렇게 글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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