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서 그런가 하필 그 날이랑 겹쳐서 감기가 걸려버렸다. 여자들은 이렇게 추운 날씨에 그 날까지 겹치고 감기까지 걸리면 몸 컨디션이 바닥이 된다. 머리에서 계속 열이 나는 바람에 5일을 아무것도 못하다 이제 다 나았다. 어쩐지 이상하게 자꾸 쳐진다 했네.
향수점으로 가는 길에 인생 샷 남김
해리 레흐만 향수점
harry lehmann perfume
원래는 숙소 근처에도 향수점이 있어서 가까운 곳을 가려다 미술관 가는 길에 해리 레흐만이라는 오래된 향수점이 있길래 오게 됐다. 한국에도 커플들을 위한 향수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서 간간히 저런 모습을 보긴 했지만 실제로 향수병이 나열돼있는 걸 보니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아 감동이었다. 향수를 잘 쓰지 않는 나조차도 그 순간엔 나에게 어울리는 향이 뭔지 찾고 싶었다. 그리고 가끔 사람들이 느끼는 나의 향은 어떨지 궁금하다. 내가 상상하는 향이 맞을지 아님 완전히 다른 느낌일지.
샤를로텐부르크 정원 옆에 있는 베르그루엔 뮤지엄. 피카소, 폴 클레, 앙리 마티스, 자코메티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현대 미술관이다.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은 부족해서 가끔 전시 볼 때 답답할 때가 많다. 왜 저렇게 그렸는지, 왜 저 색을 사용했는지 의미를 알고 싶은데 해석이 안 되는 작품을 마주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린다. 진심 큐레이터 찾고 싶었다.
나선형 계단
소라 껍질 안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작품들은 저렇게 둥근 라인을 따라 작품을 볼 수 있다. 베를린에 있는 미술관들은 대체적으로 건축 내부가 잘 꾸며져 있어서 작품 보는 것만큼 건축물 보는 재미도 컸다.
다른 전시실로 이동하는 통로
앙리 마티스의 작품
생각보다 엄청 감동스러운 작품들은 없었지만 색감이나 형태감이 예쁜 작품들이 많아서 몇 장 찍었다. 공간이 많이 어두워서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어둡게 나왔지만 실제로 뮤지엄 내부가 굉장히 고요하고 조용해서 작품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샤를로텐부르크 성
Charlottenburg Palace
샤를로텐부르크 성은 바로크 궁전으로 17세기 후반에 지어졌으며 18세기에는 확장을 하여 넓혀나갔다. 바로크와 로코코 스타일 장식으로 꾸며졌으며 2차 세계대전 동안 궁전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고 한다. 궁전의 정원은 많은 방문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1697년에 Simeon Godeau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Godeau의 디자인 스타일은 기하학 적이고 성 주변의 못과 길로 만들어졌다.
사진이 다한 샤를로텐부르크 정원
베르사유 궁전에 친구와 함께 간 적이 있는데 궁전의 화려함보다 생각나는 건 친구가 배탈이 나서 손 주물러 주던 일만 기억난다. 첫 배낭여행이었는데 한 겨울에 생고생을 해서 그런지(웃음) 유럽은 비상약이 필수라는 것과 언제나 만약을 대비해야 된다는 걸 알았다. 베를린에서 안정적으로 여행한 이유일지도ㅎ
날씨 좋을 때 가볍게 입고 다니던 착장
정돈을 칼 같이 해놨다. 10월 중순에 와서 다행히 푸른 잔디를 볼 수 있었고 궁전의에메랄드 지붕이 상큼하다. 색은 한 가지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모든 색을 좋아해서 어딜 가나 자연의 색에 잘 감동하는 것 같다. 노을 지는 풍경, 제주의 푸른 바다, 노란 단풍, 핑크빛 구름, 어두운 밤에 초승달. 아직까진 감정이 메마른 어른이 아닌지라 자연을 잘 느낀다.
정원이 생각보다 넓어서 걷는데 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베를린에서는 젊은 부부들과 아이가 산책을 하거나 주말이면 마우어 파크나 근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해 질 무렵 해가 따스해서 한 장 남겨본다.
유럽은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돌바닥 스웩에 지하철 쾌쾌한 냄새도 똑같고 수동식 문도 한결같았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건 추억이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것들이어서 오래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난 아직도 유럽의 찌든 냄새가 그리 불편하지도 않고 오히려 녹슨 것들이 있는 게 좋다. 을지로나 종로에 미로 같은 골목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