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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Blues Mar 18. 2019

14. 아빠와 딸 여행기_마지막편

풀타임 아빠 육아기 <아내가 이사갔다> 14화

아이는 아침부터 TV에 빠져있다. 당연히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 방송. 집에서 TV 등 영상 시청에 나름 엄격했더니 호텔, 리조트만 오면 TV에 대책 없이 빠져들어 곤혹스럽다.      


아침식사는 또 그 뷔페식당에서 먹고 (그래도 한 군데 꽂힌 식당이 뷔페식당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ㄷㄷ) 숙소에서 대망의 미션 – 상처부위 방수작업 –을 시도했다. 밴드를 거의 한통 다 사용해서 ‘물 샐 틈 없이’ 붙이고는 풀장으로 가서 입수해 본 결과, 물놀이가 가능했다!      


기쁨의 눈물이 흐를 뻔했다. 괌 리조트까지 와서 멜론먹고 산책만 하다 갈 수는 없지. 기쁨으로 가득 찬 나와 아이는 풀장에서 하얗게 불태웠다. 약 1시간의 즐거운 물놀이. 괌의 3박 4일 중 즐거움이 가장 오래 지속된 장면이었다.      


‘좀 놀아본’ 지인들이 하나같이 스노클링을 강추했기에 무료로 제공되는 스노클링 레슨을 받아보고 싶었다. 아이에게도 그 희열을 선사해주고 싶어서 같이 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아이는 완강히 거부했다. 몇 차례의 전략적인 회유마저 실패하자 잠시 또 마음수련의 시간. 부글거리는 심정은 저 푸른 바다에, 목에서 삼킨 성난 말들은 저 야자수에 던져버렸다.      


그럼 물놀이나 더 하자 했더니 더 하기 싫단다. 혹시 이게 마지막..? 불길했는데 역시나 그 1시간의 물놀이가 괌에서의 마지막 물놀이가 되었다. 숙소에서 옷을 갈아입은 아이는 괌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      

저 꽃은 나의 사리


3일 차부터는 나의 마음자세를 더 고쳐먹었다. 나의 규제와 잔소리에 아이가 온전히 즐겁지 못했다. 나름대로는 정말 최소한의 선만 지키고자 했지만, 그 선 때문에 아이는 짜증이 났고 억울해했고 속상해했다.

      

이제 딱 하루 반 남았다. 내가 옳냐 네가 옳냐를 따지지 않아 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온전한 행복만 선사해 보기로 했다. 용기를 내어 보았다. 부모로서 절대 쉽지 않은 다짐 해보았다.      


내려놓자. 마치 이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닌 것처럼.   
  

말로는 쉽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 이틀의 마음수련이 나를 열반의 경지로 이끈 것인지 (아님 넉다운시킨 것인지?) 저 another level의 새로운 다짐 덕분에 남은 이틀을 아주 평화롭고 오붓한 시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아이 입장에서는 천국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다 내려놓았지만 다행히 아이는 다치거나 아프지 않았고(결과적이지만), 더 많이 웃고 더 즐거워했다.


그렇게 보낸 마지막 이틀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해변에서 슬리퍼에 모래가 들어가서 짜증이 돋은 아이를 조용히 등에 업고는 바다 멀리 일어나는 하얀 파도를 함께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언제든 마음이 시끄러워서 힘들 때에는 저 장면을 떠올려보라고 말해주었다.      


이제 내년이면 업을 수도, 업히려고 하지도 않을 아이. 이제 먼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를 보고 시적 비유를 할 수 있을 만큼 자란 아이. 아빠한테 업혀 저 아름다운 파도를 함께 보며 이야기했다는 것을 평생 기억해 주길. 간절히 소망했다.      

저 바다와 파도를 기억하길.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들도 기억해 주길



그렇게 괌에서의 3박 4일이 지나갔다. 마지막 밤, 아이가 잠든 후에는 맥주 한잔이 몹시 땡겼으나 마지막까지 맥주의 유혹을 잘 이겨냈다.(‘애 잘 때 자자’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괌에서 과천까지 돌아오는 여정도 길고 지루했지만 아이는 그 며칠 사이에 훌쩍 자란 것인지 너무나 잘 따라와 주었다.      


괌 좋았냐는 물음에 아이는 2학년, 3학년이 되어도 매년 가면 좋겠다 한다.

이제 여름옷 못 입는다고 속상해하다 잠든 아이.

아차, 아빠랑 둘이 가자는 건지 엄마랑 셋이 가자는 건지 안 물어봤네.

아빠는 이제 너랑 둘이만 다녀도 좋을 거 같은데.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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