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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Blues Mar 12. 2019

13. 아빠와 딸 여행기_2일차

풀타임 아빠 육아기 <아내가 이사갔다> 13화

아침은 어제 저녁을 먹었던 그 식당으로 가잔다. 여기 식당이 5개인데 왠지 3박 4일 내내 그 식당만 가자고 할 것 같다. 아침부터 옥신각신은 사절. 설득은 내일로 미루고 일단 그냥 기분 좋게 어제 그 식당으로 간다.      


언제나처럼 아이는 저 먹고 싶은 흰밥과 쿠키, 멜론만.. 하루의 준비운동 같은 마음수련이다. 내가 여기 애 잡으러 왔나, 행복하자고 왔지. 내심 돈이 아까웠는지 내가 무진장 먹었나 보다. 웬 테이블에 아빠와 딸내미 둘만 앉아서 아빠는 오늘 먹고 죽을 것처럼 먹고 있고 애는 멜론만 깨작거리고 있으니 보다 못한 옆 테이블 한국 아줌마가 애 좀 먹여보라며 챙겨 오신 한국 김을 건네주셨다. 민망함에 얼른 식사를 끝내고 다시 룸으로.     


기분 좋게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풀장으로 간다. 물에 들어가니 아이도 나도 즐겁다. 그래 이 맛이야. 우리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잘 놀다가 가자. 아이는 워터슬라이드 재미에 푹 빠져서 무한 반복 재생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눈빛에서 과흥분이 포착되었다. 잠깐 앉아서 쉬고 또 하자는 내 말을 거부하고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아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살짝 넘어지고 만다. 바닥이 매우 거친 까닭에 무릎은 이미 피가 낭자했다. 이런..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응급치료(소독 및 밴드)를 받은 후 둘은 벤치에 앉았다. 수영장에 온 지 2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긴 한숨이 나왔다.      


“안 아파?”

“응, 안 아파.”

“아빠는 마음이 아프다..”     


상처가 꽤 커서 다시 물에 들어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아.. 애를 질질 끌고 와서라도 쉬게 했었어야 했는데. 왜 너는 이렇게 컨트롤이 안 되냐. 고집은 왜 이렇게 세냐. 아빠가 말하면 좀 들어라. 이게 뭐냐 이게!     

속에서는 온갖 고함이 다 나왔지만 꾹 참았다. 앞으로 3일 동안 물놀이 안 하면 뭐한담.. 그야말로 멘붕이 와서 아이와 둘이 십여 분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골절 아니잖아. 여긴 미국이라 뼈 부러지면 진짜 대책 없다던데 피부만 까진 게 어디야.  괌이 마음수련이 잘 되는 곳인지 곧 붕괴되었던 멘탈이 차츰 회복되었다. 애를 데리고 방으로 일단 들어간 시간이 고작 오전 11시.      


물놀이 옵션이 사라졌지만 우리는 리조트를 최대한 즐겼다. 도마뱀도 쫓아다녀보고 방방이(트램펄린)도 하고, 미니농구도 하고, 해변에서 조개도 줍고, 예쁜 꽃도 따고..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아이가 자꾸 사진을 못 찍게 해 2차 마음수련에 들어갔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하자 슬슬 자기 사진 찍는 것을 피하더니 요즘은 단 한 컷도 허용하지 않는 지경이다. 남는 건 사진뿐이고 렌즈만 갖다 대면 모두 그림인 곳인데 카메라만 들면 도망가거나 이상한 표정을 지어버리니.. 사진이 죄다 뒷모습이거나 얼굴 없는 사진들 뿐이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파.


그렇게 물놀이도 못하고 하루 종일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아이와 참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빠, 오늘 나한테 감동받은 거 열 개 이야기해줘.”

     

어젯밤, 잠자기 전의 아이에게 ‘오늘 너에게 놀란 점 3가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씩씩하게 잘 걸은 점, 비행기에서 잘 견딘 점, 뷔페에서 혼자 잘 챙겨 먹은 점 등을 말해줬는데 아이는 그게 좋았던지 오늘은 무려 열 가지를 말해달란다. 놀란 점도 ‘감동받은 점’으로 격상해서. 니도 참 여자다. 훗.  


아이가 넘어진 이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내 머리의 반 이상은 계속 ‘상처’에 할애되어 있었다. 밴드는 언제 갈아야 할지, 뛰다가 또 다치면 큰일인데, 침대에 피가 안 묻었나, 밴드를 어떻게 살까, 내일은 물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아이의 상처부위가 커서 집에서 준비해온 방수밴드는 무용지물이었다. 새로운 방수밴드를 사려면 걸어서 10분 거리의 마트를 가야 했는데 가는 도중 비가 오는 바람에 다시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아내가 있었다면 누구 한 명이 휙 다녀오면 그만인 일인데, 아이와 둘만 가는 여행의 어려운 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다사다난했던 뜻밖의 일과를 보낸 터라 심신이 피곤했다. 아이와 침대에 누워 ‘오늘 너에게 감동받는 점’을 다시 한번 읊어주고는 아이에게도 오늘 제일 좋았던 것을 꼽아보라고 했다. 워터슬라이드, 방방이, 미니농구, 도마뱀 본거 까지 모조리 다 베스트였다고 하니 마음수련한 보람이 느껴졌다.     

 

아이에게 다시 한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줬다. 피가 났지만 부러진 것은 아니다. 넘어진 상처쯤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우리 서로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너 감기 걸리지만 않으면 계속 즐겁고 행복할 거다. 이제 자자 (..제발)     


곤하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니 짠하다.

투정도 못 부리는 아빠랑 둘이 이 먼데까지 와서는,, 다치기도 하고.. 에휴


잠든 아이가 움찔움찔한다.

농구하니? 아님 도마뱀 잡니?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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