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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Blues Mar 29. 2019

15. DNA 때문에 피땀눈물

풀타임 아빠 육아기 <아내가 이사갔다> 15화

아이는 내 마음같지 않다. 육아가 힘들다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이것이다.


이제 초딩 쯤 되니 내 마음같지 않은 부분들이 더 다채로워진다. 게다가 아이와 둘이서만 하루 종일 붙어지내다보니 아이의 성정 하나하나가 UHD 화질급으로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내 마음같지 않은 아이를 보며 '얘는 왜 이럴까' 하다가,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르며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나를 닮아서 그랬던 것이다.


나를 닮아서 그랬던 것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입이 짧았다. 아이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이 부모의 원초적 행복인데 뭘 잘 먹지를 않으니 하루 세 번 있는 식사시간마다 행복보다는 안타까움으로 가득 찬다. 얘는 왜 이렇게 잘 안 먹나 하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그랬다. 지금의 먹성(아는 사람은 아는)은 중학교 3학년 즈음 갑자기 발현된 것이고 나 역시 어린이 시절에는 안 먹어서 문제인 아이였다.      


아이는 TV 보는 걸 너무 좋아하 해서 거의 매일 나에게 딜을 걸어온다. 하지만 열에 아홉 번은 끝이 좋지 않고 그런 이유로 ‘더 엄격한 통제 – 딜(이라 쓰고 땡깡이라 읽는..) - 조건부 허용 – 분쟁 – 더 엄격한 통제’라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못 보는 아이나 못 보게 하는 아빠나 스트레스받기는 매 한 가지. 얘는 왜 이렇게 TV를 좋아하나 하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그랬다. 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TV를 보고야 마는 TV 홀릭 어린이였던 것이 기억난다.      


부모의 속이 가장 뒤집어지는 때가 아이 공부 가르쳐줄 때가 아닐까. 초등학교 1학년 수학이 5+3, 10-4 같은 덧셈 뺄셈인데, 아이 공부를 봐주다 보면 말로 형언하기 힘든 기분이 들 때가 있다.(빡침, 실망, 좌절, 공포가 믹스된..ㅎㅎ) 얘는 왜 이렇게 숫자 감각이 없나 하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그랬다. 산수는 엉망이었으며 숫자 놀음 자체에 어떠한 흥미나 재미도 느껴지지 않아 학창시절 내내 수학이 제일 싫었다.      


7세 정도가 되자 아이가 사람들에게 인사하기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타이르기도 하고 훈계도 해보았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 보기도 그렇고 내 말을 일부러 안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얘는 왜 이렇게 인사를 안 하려 할까 하는데! 인사 참 안 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한번 하는 게 그렇게도 쑥스러웠던 게 희미하게 기억났다. 이런 것까지 나를 닮았네 하고는 덜 다그치게 되었다.      


피아노학원은 왜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지, 그림은 왜 저리 그렸다 지웠다 하는지, 감기는 왜 이리 자주 걸리는지 하다가도 ‘내가 저 때에 그랬었지’ 깨우치게 된다. 매일 나를 마음수련케 하는 행동들이 나를 닮아서 그랬던 셈이니 인생의 오묘함에 또 한 번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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