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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Blues Jan 14. 2019

4. 병이 난 아이

풀타임 아빠 육아기 <아내가 이사갔다> 4화

엄마가 이사 간 아이.

새로운 환경으로의 연착륙을 위해 최대한 아이가 스트레스 안 받게 하고자 했다. 그간 집에서 엄격함(혹은 악역)을 맡고 있던 아빠로서는 쉽지 않은 테스크였지만 한달은 참아보자를 되뇌이며 (그 어렵다는) 8세 딸아이 심기보좌에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가을로 접어들며 일교차가 커지자 약간의 콧물과 기침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열은 나지 않아 그냥 병원에 가지 않았다. 전업 풀타임 육아전담자인 내가 있으니 이제 약한 감기에 병원약을 먹이지는 않겠다는 자신감 내지는 각오 같은 게 있었다. 우리 어릴 때야 콧물 기침 달고 살았는데 뭐. 열 안나면 큰 병 아니겠거니 하며 도라지, 배나 끓여 먹이면서 밤이고 낮이고 원 껏 놀게 했다.


그러던 10일째, 9월 중순 어느 밤, 발작적 기침 후 숨을 들이쉬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수면 중 갑자기 연이은 기침으로 숨을 다 내뱉고는 다시 들이쉬지 못하였고, 이런 준질식상태가 수 초동안 지속되다 마치 조르던 손이 풀리는 것처럼 힘겹게 호흡이 돌아오는 증상인데 하루밤에도 두 세 번을 그러했다. 일단 호흡이 돌아오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곧 다시 잠들지만 그것이 (저산소증으로 인한) 일시적 기절인지 탈진인지 정상회복인지도 알 수 없어 조용해진 아이의 심박을 확인하고서야 나는 겨우 내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숨이 딸깍딸깍 넘어가는 아이의 표정을 본 이상 나 역시 그날 잠은 다 잔 것이었다.


당장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증상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약 두 달 동안 동네병원 3군데, 대학병원 2군데, 응급실 2번, 2박3일의 입원과 수많은 검사를 겪었지만 어느 의사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내지 못했고 추측성 처방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 일수였다. 원인모를 호흡곤란이 계속되니 매일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낮에는 너무도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밤중의 고생으로 늘 다크서클이 져 있는 것 빼고는)


다행히 두 달 여가 지나자 증상의 횟수와 강도가 약해졌다. 한편으로는 아이와 내가 증상에 적응을 한 것 같기도 했다. 아이도 보다 빨리 호흡을 되찾는 방법을 찾아냈고, 나도 ‘결국 다시 숨을 쉰다’는 경험칙으로 전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하지는 않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내와 나는 갑자기 바뀐 육아환경이 원인인 것만 같았다. 의사들은 기침감기, 천식, 폐렴부터 편도선 비대, 역류성 식도염까지 다양한 원인을 지목했으나 (맨 마지막에는 변비가 원인일 수도 있겠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낫지 않았고 나와 아내는 당연히 바뀐 육아환경 - 엄마의 부재가 원인일 것이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멀리있는 아내는 아내대로, 주 양육자가 된 나는 나대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는 반성했다. 육아에, 인생에 너무 겸손하지 못했다. 남들처럼 똥기저귀 갈고, 밥 먹여줘야 하는 유아도 아닌 다 큰 아이를 위한 육아휴직 – ‘꿀 빠는 생활’이 될 수도 있겠다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내의 성취가 쉽지 않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긴 했지만 외벌이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았고 미취업으로 인한 아내의 실존적 불안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뻤다. 아빠표 육아로 아이를 좀 더 풍성한 아이로 만들어 줄 자신감에도 한껏 부풀어 있었다.


결국 ‘아픈 아이’라는 현실의 고난을 겪고서야 행복은 불행과 함께 온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우치며 인생 앞에 조금 더 겸손하게 되었다. 꿀 빠는 생활은 (기침 예방을 위한) 이불 빠는 생활로, 함께 양재천 자전거 라이딩을 다니고 관악산 등산을 꿈꿨던 아빠표 육아계획은 (양재천 근처) 종합병원 라이딩과 (관악산에서 왔을 수도 있는) 도라지 탕 만들기로 대체되며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한편으로 이 두 달 여의 시간은 훗날 많이 기억에 날 것이다. 덕분에 아이와 친밀감도 많이 높아졌다. 아이 또한 기댈 어른이라곤 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낮에는 약으로 병원으로, 밤에는 경각의 순간마다 함께 했으니 예전처럼 아침, 저녁에 잠깐 보던 아빠와는 아주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가 날 보는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는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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