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에 엄마가 나왔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꿈에 나왔다. 대부분의 꿈이 그러하듯이 잠에서 깨어나 꿈의 내용을 더듬어보려고 하면 할수록 꿈이 흐릿해져 갔는데 그 사이에서 엄마를 봤다는 걸 알았다. 꿈을 꾸면서는 몰랐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분명히 엄마였다. 엄마는 꿈에서 20여 년 전 젊고 건강하고 활기찼던 모습으로 계셨는데 너무 당연하게 곁에 계셔서 꿈에서 처음 만난 엄마였는데 놀라지도 않았다.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의 마지막 몇 달 깡마르고 아프셨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라서 휴대폰 엄마 사진첩에 엄마 예전 사진들, 웃고 계시는 사진들을 잔뜩 담아두고 수시로 보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제는 엄마를 떠올리면 엄마의 웃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다 이내 곧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의 모습이 떠올라서 마음이 시큰해지지만 그 모든 모습이 우리 엄마 생애의 여러 가지 모습이었으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엄마는 꿈에서도 나를 챙기고 돌보셨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꿈에서 만난 엄마를 꽉 껴안고 엄마 품에서 엄마 향기를 맡으면서 엄마를 느껴볼 텐데… 현실세계도 꿈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육신이 있는 것과, 눈앞에 실체로서 존재하진 않지만 어딘가 엄마의 영혼이 본질이 엄마의 의식이 존재할 거라고 믿으면서 엄마가 곁에 있음을 느끼려 하는 것은 아직 같지 않다. 엄마가 곁에 있다는 걸 안다면 나는 이다지도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을 텐데.
우리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전생에 우리는 어떤 인연이었길래 이 생에서 부모 자식으로 만나서 한평생을 함께 살다 이제는 영영 헤어졌을까. 이제 엄마를 엄마로서 다시 만나는 생이 다시 있긴 할까. 우린 어느 생에 다시 만날까. 이제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네. 만나도 알 수 없겠네.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생에서의 인연은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 동안이다. 작별은 영원한 작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테니. 얼마나 귀한 인연이었는지 모두를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곁에 존재하면서 보고 만지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지 모두를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누구에게나 별다른 기대나 수식어가 없어진다. 그가 그저 살아있다면 감사하다. 살아서 자신의 몫을 살고 누리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그저 그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나에게 무엇인가가 되지 않아도 그저 각자 여기에,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인생이 좀 간단해졌다. 내게 남은 시간도 얼마인지 모르는데 가고 나면, 내가 세상에 없으면 다 무슨 소용이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살아있는 것처럼 살다가 갈 때가 되면 가는 거다.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시간이 생기면 엄마가 누워계시던 침대 맡에 앉아 가만히 그때를 떠올려본다. 엄마가 있을 때와 엄마가 없는 지금. 그 세상에서 지금 엄마 빼고 모든 게 똑같아 보인다. 나도 그럴 테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갈 테다. 엄마가 떠났다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엄마는 이 세상에서 자식 둘 중에 하나를 먼저 잃고 사는 것도 고통스러우셨는데,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살지 못하고 아픈 몸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데 너무나 힘드셨는데 그 고통이 끝났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슬픔과 안도감.
지금 내게 현실세계는 꿈같은 때가 많다. 아침에 일어나 몸을 단장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지어먹고, 책을 보고, 티브이도 보고,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청소하고 목욕도 하고 공과금도 내고 좋아하는 디저트도 사 먹고 드라이브도 하면서 사는데. 몸을 움직이고 있는 내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나는 대부분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현실을 꿈처럼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밤이 오고 혼자 가만히 숨만 쉬며 존재하는 시간에는 오늘 밤 꿈을 꾸기를 소망한다. 꿈속에서 엄마도 아빠도 반짝반짝 빛나는 내 동생도 만나서 현실 같은 꿈을 꾸고 싶다.
어제 엄마가 꿈에 찾아왔는데 엄마를 꽉 안아볼 기회를 날려버렸다. 안기는커녕 인생 대부분의 나날에 그랬듯이 무심하게 엄마를 보고 지나갔다. 이 인간아…
요즘은 현실을 너무 꿈처럼 살고 있어서 정신을 좀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꿈에서도 정신을 좀 차려야겠다. 평소에 하던 습관대로 꿈에서도 하는 거라면 평소에도 엄마, 아빠, 동생을 마구마구 끌어안고 부비부비하는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꿈에서 또 만나.
미안하지만 한 번만 다시 찾아와 줘.
사진 : 사진: Unsplash의Justin McFad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