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억이 흐려진다. 많은 기억이 사라진다. 내 경우에는 어느 시기의 일들은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때 내가 했던 말, 내가 먹은 음식, 내가 지은 표정을 그때 함께 했던 사람은 기억하는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머릿속 저 깊은 기억 속 어딘가 파묻혀있을지 모르는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져보려 해도 뒤질 실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좀 신기하고 좀 걱정돼서 제미나이한테 물어보니 사람의 뇌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너무 힘든 일은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때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내 뇌가 날 보호해 준 거라는 것.
감정도 무미건조한데 비어버린 기억의 구멍을 마주하니 뭔가로 메우고 싶어졌다. 휴대폰에 저장된 엄마 사진을 보다가 구글 포토에 백업된 사진첩으로 들어가 무작정 아래로 아래로 스크롤해 보았다. 기억에서는 흐려졌지만 사진첩에는 존재할지 모르는 엄마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정말로 있었다.
엄마가 투병생활의 한가운데에 계시던 모습. 그때는 엄마 얼굴이 많이 상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마지막 몇 달을 생각하면 와 너무 고왔다. 더 과거로 내려가 막 암 진단을 막 받으셨던 시기의 엄마는 선녀였다. 우리 엄마 저렇게 예뻤나. 왜 모르고 살았나. 뽀얗고 통통한 살결, 새치하나 없는 머리카락, 단정한 단발머리, 진달래빛으로 차오른 입술, 고운 미소. 잊고 살았던 엄마의 건강했던 시절.
엄마를 떠올리면 앙상하게 마른 모습으로 엄마 영혼의 대부분이 엄마 육신을 빠져나와있다는 게 느껴지던 모습. 언제라도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촛불같이 느껴지던 그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게 가장 최근의 모습이었으니까. 과거로 과거로 기억을 더듬어야 엄마가 건강했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내 기억 말고, 지금 흐려지고 왜곡된 기억 속 모습 말고 사진 속에 남아있는 진짜 그 시절의 엄마 모습을 보고 그대로 떠올리고 싶었는데 내 기억보다 우리 엄마 훨씬 더 아름다웠구나.
늘 곁에 있을 때 우리 엄마 곱다 엄마 예쁘다 엄마 선녀 같다 이런 말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늦어도 너무 늦게 깨달은 바보다. 늘 이런다. 다 잃고 후회한다. 또 반복한다.
그때는 코로나 팬데믹이 막 시작한 시점이어서 엄마는 입원하시고 1인실에 계셨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음성이 나올 때까지 격리되어야 했다. 그 병실에서 엄마가 짐을 정리하는 모습, 냉장고를 열어보는 모습, 환자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사진에 남아있다. 아마 사진 찍지 말라고 얼굴을 가리셨던 것 같다. 동영상도 찍어놨다. 동영상 속 엄마는 또렷이 말하신다. ‘영상 찍지 마!’ 다시는 볼 수 없는 엄마가 영상 속에 찍혀있다니. 엄마 모습이 저렇게 남아있다니. 엄마가 찍지 말라고 했는데 카메라 안 끄고 버틴 과거의 내가 기특해서 미칠 것 같다.
저런 영상 또 없나 찾아보니 또 있다 세상에. 엄마가 텃밭을 가꾸시는 모습. 거름 주고 물 주고 뭔가를 심고 계시는 모습도 있다. 과거의 나 또 칭찬해.
저걸 찍어놨다는 기억 자체가 흐려져서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이는 대로 휴대폰으로 다운로드했다. 엄마 사진첩 폴더에 넣었다. 종종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숨어드는 내 동굴 속 빛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친절하게 대해야 하고, 제일 잘 보여야 하고, 가장 소중히 극진히 대접해야 하는 존재는 가족이라는 걸 너무너무 늦게 깨달았다.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죄송하고 염치없어서 정말로 가슴 어딘가가 뻐근해진다.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하는 마지막은 엄마는 어떤 마음이실까를 생각한다. 지금 이런 나를 보면 엄마는 어떤 마음이실까. 내게 무슨 말을 해주시고 싶으실까. 엄마는 내게 행복하게 살라고 하셨다. 엄마 없어도 울지 말고 재미나게 행복하게 살라고 하셨다. 자식을 두고 가는 엄마는 정말 그런 마음일 거다. 세상에 남는 자식이 우는 거 너무너무 애달프실 거다. 가서 안아줄 수도 없고, 울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을 텐데. 말할 수 있을 때 일러두신 진심.
기억은 흐려지지만 사진은, 동영상은 영원히 보여준다. 사진 찍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사는 동안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내가 칭찬하듯이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칭찬할 거란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