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방송 중

우리 이 순간만 살아요. 나중 일은 나중에 가서 생각하고.

by 신민화

요즘 내 기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가 시계를 봤는데 이제 끝날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아니 벌써?’



드라마는 예고편도 보여주고, 진득하게 기다리면 다음 이 시간에 다음 화를 볼 수 있다. 현실은 예고도 없고 다음도 없다. 그리고 끝나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인생은 생방송이다. 내게 주어진 시점은 오로지 지금 뿐이다. 예고도 없고 다음도 없어서 끝없이 계속되는 지금은 늘 처음 맞이하는 순간이다. 찰나의 순간은 계속 과거가 되어 지나간다. 지금만이 계속된다.






엄마 복수가 차오르고 있다. 퇴근 후 엄마가 요즘 부쩍 누워계시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걸 느끼고 이불을 살짝 걷어보니 엄마 배가 눈에 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엄마 배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얼마 전 만졌을 때 분명히 말랑말랑했는데. 딱딱해진 엄마 배를 만져보면서 이건 위기상황이라는 알람이 머릿속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때부터 엄마한테 나 없을 때 몇 시에 일어나는지, 뭘 드시는지, 하루 종일 뭘 하시는지 등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엄마 아래 눈꺼풀을 뒤집어 색깔도 확인하고 팔다리도 여기저기 만져봤다. 내가 일하러 나와 있는 동안 엄마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직접 보지 못하니 그동안 엄마가 혼자 늦은 아침으로 사과 한 알과 늦은 점심 겸 저녁을 겨우 드신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긴 했지만 난 알지 못했다. 아침의 사과 한 알은 씹어서 즙은 삼키고 건더기는 모두 뱉어버린다는 것과 점심 겸 저녁은 누룽지를 묽게 쑤어서 동치미와 곁들어 몇 숟갈 뜨시는 정도라는 것 말이다.



그동안 내가 놓친 걸까.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걸까. 진작 캐묻고 진작 엄마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지 못한 나를 책망했기에 내가 나에게 변명하는 듯한 호들갑이었다. 이제 와서 엄마 몸을 살핀다 한들 차오르기 시작한 복수가 알아서 빠져줄 리가 있나. 도드라져 보이는 뼈마디에 살이 차오를 리 있나. 머리카락이 전부 빠졌다 자라나고 있어 듬성듬성한 두피가 윤기로 채워질 리가 있나.



난 뭘 더 놓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맞이한 주말에 본 엄마는 화장실에 갈 때와 물을 마시러 주방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 종일 침대에 머무르셨다.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누워계셨다. 엄마의 요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우리 식구가 주로 보는 TV 프로그램은 트로트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그리고 음식 홈쇼핑이다. 지금 통신사 계약이 끝나면 이 세 종류 프로그램이 나오는 채널만 남기고 전부 삭제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이것들만 본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기 몇 달 전에 <미스터 트롯>이 방영하기 시작했다. 엄마랑 같이 보는데 임영웅 예선 무대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는 정말 웃기거나 정말 감동을 받았거나 정말 슬프면 눈물을 흘리신다. 임영웅이 예선에서 부른 노래는 잔잔한 노래였는데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동을 느끼게 하고 눈물이 나게 하다니 정말 대단한데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임영웅은 미스터트롯 초대 우승자가 됐다. 트로트 프로그램은 보고 또 보고, 봤던 걸 또 봐도 볼 때 마다 좋다고 하신다. 채널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트로트 프로그램이 엄마는 좋으시단다. 골라 보는 재미가 있어서. 매년 오디션 할 때마다 어디서 저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경연인지라 칼을 갈고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노래에 그네들의 결의와 영혼이 느껴진다. 그리고 계속 보다보니 나도 듣는 귀가 좋아져서 나름의 심사도 하게 된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자연을 터전으로 삼아 일상을 꾸리는 자연인들의 모습과 편안한 더빙 목소리가 휴식이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포인트는 자연인들이 직접 밥을 해 먹는 장면이다. 가짓수 얼마 되지 않는 소박한 재료들을 투박한 손으로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집밥인데 매 화마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데 또 자세히 보면 다르다. 자연 속에 내 손으로 지은 집, 그리고 그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밥. 하루 끼니 챙기고, 집안일하고, 소일거리 즐기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면 하루가 간다. 자연인들의 삶은 대부분이 그렇더라. 단순하고 부지런하다. 엄마는 특히 묻어둔 장독에서 꺼낸 김치 장면을 제일 좋아하신다. 자연인마다 김치 먹는 스타일이 다르지만 엄마는 김치 장면에서 늘 저 김치를 손으로 잡아서 죽죽 찢어서 밥에 툭 걸쳐 먹는 상상을 하신다고 했다.



음식 홈쇼핑도 김치와 같은 맥락인데 자연인들이 만드는 것보다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을 보면서 그걸 먹는 상상을 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호스트들이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신다고 했다. 항암을 시작하시고 생야채, 회 등 날것의 음식을 드시지 못했고, 매운 음식을 드시지 못하게 됐고, 소화가 잘 되지 않으니 일단 뭐든 마음껏 드시지 못했다. 엄마 입에서 5년 만에 주꾸미, 낙지볶음, 매운 김치, 간장게장 등의 단어가 나왔다.



그동안 먹을 수 없어서 먹지 못했지만 한 번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마음껏 먹고 싶은 음식들이다. 급기야 어제는 보고 계시던 간장게장 홈쇼핑 채널에 전화해서 구입하자고 하셨다. 나는 엄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검색해서 구입 버튼까지 찾아서 누르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6개가 한 세트인 건 늦게 아셨나 보다.



“사지 마 사지 마. 6개를 다 사야 되네. 아니 저렇게 많이 사면 누가 다 먹어. 너 바빠서 냉장고 열어볼 시간도 없는데 나 죽고 나면 누가 다 먹어. 아이고 안돼. 그냥 사지 마.”



“……….”



아니 무슨 간장게장 하나 사는데 그렇게까지 말하냐고.



결국 간장게장은 사지 않았다. 엄마는 이제 생야채도 드시고 과일도 드신다. 비록 씹어서 삼켜지는 건 삼키고 안 되겠는 건 걸러서 뱉어내시지만 허락하는 한 마음껏 드시려고 한다. 엄마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건 아니다. 지켜보니 그렇다. 항암 하신다고 제한하시던 것들이 이제 엄마 손에 들려있는 걸 보고 하는 말이다.



그래,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1월 2일. 엄마가 항암을 중단하겠다고 처음 이야기를 꺼내신 날. ‘엄마는 이제 솔직히…’로 시작한 긴 문장이 전부 끝날 때까지 나는 듣기만 했다. 엄마에게서 흘러나온 문장에 마침표가 찍혔다.



‘나도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좋겠어.’



6개월 전쯤부터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후로 감정이 잘 출렁거리지 않는데 저 말을 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은 전부 진심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삶의 마지막 가는 길’ 위에서 통상적으로 살기 위해서 하는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라니.



엄마는 지난 5년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살아는 있지만 이건 사는 게 아니라고 하셨으니까. 할 만큼 하고 싶은 만큼 항암치료를 받아보았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게 엄마의 바람이라는데.

엄마는 엄마는 아직 혼자 움직이고, 잠도 잘 주무시고, 집에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컨디션이 허락할 땐 기꺼이 하신다.



반면 나는 엄마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그때부터 초조해했다. 당장 엄마가 어떻게 될 것처럼. 엄마가 저러다 아파질까 봐. 내 마음 한 구석에 엄마가 앞으로 걸어갈 뻔한 길을 만들어두고 그 길 위에 엄마를 올려놓고 내 맘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엄마는 지금 저렇게 살아계시는데.



살아있다는 건 언젠가 죽는다는 것과 같다. 엄마도 나도 우리 전부가. 내가 살아있는 쪽만 바라봐서 그렇지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인간은 모두 죽는 존재이다. 더 멀리서 바라보면 누가 좀 먼저 가냐의 차이이지 결국 우리의 종점은 똑같다. 엄마가 아프다고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나리라는 법도 없다. 엄마가 나보다 먼저 죽을까 봐 미리 슬퍼하고 있는 내가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 한 치 앞도 모른다.



내 엄마는 나이가 들었고, 아픈 몸속에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해내고 계시는 강인한 존재다. 당신은 지금 한 끼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면서 하나뿐인 딸이 당신 때문에 슬플까 봐 걱정하시는 분이다. 내 곁에 실시간으로 존재하는 엄마가 엄마다. 이 순간 살아있는 엄마를 나는 마음껏 사랑하면 된다. 엄마가 살아계신다.



“엄마 간장게장 먹으러 갈래요?”

“그럴까?”



‘그럴까?’는 엄마의 가장 확실한 긍정의 표현이다.

엄마의 눈이 살짝 커지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조금 더 일찍 엄마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내게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 엄마가 안 계시면 날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랑해 줄 사람이 있긴 할까? 엄마한테 받은 사랑에 아직 보답을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내겐 아직 기회가 있다. 엄마가 곁에 계시잖아. 집에 가서 엄마를 부르면 엄마가 대답하시잖아. 엄마를 보고 만질 수 있잖아. 엄마가 곁에 계실 때 지금이라도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으면 됐어. 이제부터는 엄마를 사랑만 할 거니까.



우리가 같이 주연인 이 드라마가 갑자기 끝나더라도 우리 그냥 재미있게 생방송해요.



이번 주말에 엄마랑 간장게장을 먹기로 했다. 엄마의 오랜만의 외출이 되겠다. 간장게장 맛집에 가서 실시간으로 차려진 한 상 가득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먹을 예정이다.



엄마의 복수가 찬 배를 만진 날 밤에 한참 검색했었다. 복수가 차면 염분은 제한해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복수는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배출되지 어렵고 어쩌고 저쩌고….



그래 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맛있는 간장게장 집으로 갈 거다.


부산에서 제일 맛있다고 소문난 집으로 갈 거다.











사진출처: 사진: UnsplashSamuel Regan-As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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