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 밤은 엄마의 사랑

by 신민화

무더운 여름이 드디어 지나고 부는 뽀송하고 상쾌한 바람을 느끼는 가을의 어느 날, 우리 집 식탁 위에는 큰 우동 그릇이 놓여 있었다. 어릴 적 학교에 가던 때를 생각하면 옆에서 이야기를 조잘거리며 걷고 있는 친구와 주변에서 함께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하나의 풍경으로 떠오르듯이 가을의 어느 날 집에 돌아왔을 때의 기억은 청소되어서 깨끗한 집 어딘가에 짐을 내려놓고 부엌을 향하면 식탁 위에 덮개로 덮인 큰 우동그릇이 놓여있는 풍경이다.




덮개를 치우면 그 큰 그릇에 삶아서 곱게 깐 밤들이 넘칠 듯 한가득 수북이 쌓여있다. 노릇노릇하게 잘 삶긴 밤들이 어찌나 예쁘게 까져서 담겨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든든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먹기도 아깝게 생긴 예쁜 깐 밤 하나를 입어 넣고 우물거리면서 다음에 뭘 먹을까 눈으로 요리조리 훑어보면 그 많은 밤들이 포슬포슬한데 바스러진 것 하나 없이 어찌나 동그랗고 예쁘게 생겼던지.




매년 가을엔 너무 당연히 밤이 있었다. 아니 깐 밤이 있었다. 그리하여 당연한 가을의 풍경이 되었다. 내가 본 건 늘 큰 그릇 수북이 담긴 깐 밤이었다. 그 깐 밤이 내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세세하게 본 적은 없었다. 엄마가 밤을 사고 삶는 건 본 적이 있다. 엄마는 늘 주방에서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거나 치우고 계셨는데 그중 한 장면으로 밤을 삶는다고 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대부분 다른 곳에서 TV를 보고 있거나 누워있거나 나가있었다.




밤은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얼마 뒤 큰 우동 그릇에 수북이 쌓인 깐 밤의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입 속으로 들어갔다. 생긴 값을 제대로 했다. 달콤하고 고소했다.




언젠가 엄마가 안 방에서 TV를 보시면서 쟁반 가득 담긴 무언가를 까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쟁반 가득 담긴 무언가와 과일칼이 각각 양손에 들려있는 엄마의 모습이 한 세트의 풍경으로 남아있는데 때로는 콩나물이나 고사리였고, 때로는 옥수수, 때로는 매실이었다. 때로는 밤이었겠다.




그러다 몇 년 전 인생 최초로 밤을 깔 기회가 생겼다…… 왜 나는 지난날 엄마가 무언가를 까고 있는 그 풍경 속으로 진작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늘 똑같은 장면, 안방과 TV, 쟁반 가득 쌓인 삶은 밤과 엄마, 그리고 과일칼이었는데 내가 추가되었다. 엄마가 과일칼로 어찌어찌 슥슥하니까 딱딱한 갈색 껍질 속에서 노랗고 예쁜 포슬거리는 밤이 쏙 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그날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달았다.




한편 나는 손대는 것마다 다 부셔먹었다. 나는 삶은 밤을 파괴하고 있었다.

엄마가 까도 간혹 부스러지는 게 생겼는데 엄마 손 위의 노란 밤 조각들은 절반은 엄마 입으로 들어갔고 절반은 내 입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예쁘게 잘 까진 밤만 그릇에 쏙쏙 넣으셨다. 그날 삶은 밤의 절반이 내 손에서 파괴되는 걸 보신 엄마는 이제 그만하고 쉬라고 하셨다.



그 뒤로도 엄마는 한참을 앉아서 밤을 까셨는데 그 옆에 앉아서 큰 그릇 속에 하나씩 하나씩 채워지는 깐 밤을 바라보면서 나는 매년 가을 예쁜 깐 밤들이 어떻게 내 앞에 나타났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먹은 깐 밤은 엄마의 사랑이 담긴 쌩노가다의 시간과 맞바꾼 것들이었다. 까다가 생기는 부스러기는 당신이 드시고 내게는 그날 최고로 예쁘게 까진 것들만 담아주신 거였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밤을 까지 않으신다. 아니 밤을 까지 못하신다. 팔에 힘이 없으시다. 그리고 작년에 쿠팡에서 밤 까는 도구를 판다는 걸 아셨는데 구입할 대 개수를 잘못 입력하셔서 같은 걸 네 개나 사셨다. 이제 밤 까는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도구 사이에 밤을 놓고 누르면 칼집이 나서 쉽게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도구가 고장 나도 세 개나 더 있어서 밥껍질 걱정은 없다.




엄마는 2020년에 위암을 진단받으시고 5년 동안 항암치료를 하셨다. 그리고 올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항암치료를 그만하겠다고 결정하셨다. 항암치료를 그만하겠다고 결정하시던 게 1월이었고 그때는 집에서 같이 밥도 드셨는데, 지금은 씹어서 즙만 삼키시고 건더기는 뱉어내신다.




작년 가을에 밤껍데기 까는 도구를 샀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엄마는 그때 삶은 밤을 까드셨는데 올 가을에는 우리 같이 삶을 밤을 까서 먹을 수 있을까. 엄마가 밤 알갱이를 뱉어내지 않고 삼키실 수 있을까. 엄마는 병원에 계시는 동안 당신이 밤껍데기를 까서 딸이 좋아하는 깐 밤을 주실 수 없다는 생각에 밤 까는 도구를 소포로 부쳐주시고 사용하는 법도 전화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딸이 행여나 가을에 삶은 밤을 먹지 못하고 지나갈까 봐 가을 내내 밤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게 노랗고 포슬포슬하게 잘생긴 반듯하게 깐 밤은 엄마만 가능한 거였다.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는 가을이 되자 더 이상 깐 밤은 볼 수 없었다. 엄마랑 안방에서 같이 밤을 까던 날, 과일칼로 밤을 하나하나 까는 일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직접 경험했던 날, 내 눈앞에 천천히 하나씩, 하지만 결국 수북이 그릇을 채운 그 밤이 엄마의 지극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나는 밤을 무심하게 대할 수 없게 되었다. 밤 한 알 한 알에 정성이 담겨있어서 이 세상에 엄마가 없으면 나는 다시는 이런 깐 밤을 먹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비단 깐 밤뿐이었을까. 내가 살아온 동안 엄마가 내게 준 지극한 사랑이 그것뿐이었을까. 기억하지 못해서 무심코 지나쳐서 알아보지 못한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많을까.




세상에 엄마가 없으면 비단 깐 밤 하나뿐일까.

엄마가 없다면 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 인생에서 가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깐 밤의 풍경.

그 풍경을 만들어준 엄마를 나는 알고 있을까.

내 인생의 풍경 속에 늘 함께하는 엄마를 풍경 속 존재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나는 엄마처럼 밤은 잘 까진 못하지만

엄마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잘 들을 자신은 있으니까.












<표지 사진 출처> 사진: UnsplashMarta Re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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