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처단에 실패했습니다

by 보리아빠

정초부터 한파가 몰아쳐, 집안이 냉골이 되었습니다. 이사 온 곳에서 처음 맞는 겨울이라 어디를 보강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어요. 베란다 곳곳에 방풍 비닐도 붙여봤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난방을 하자니, 어마무시한 관리비가 손끝을 망설이게 했습니다.


저는 냉기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곳곳을 살폈고, 동장군을 몰래 불러들인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안방 베란다 밖에 있는 에어컨 실외기실이 범인이었어요. 에어로드의 날개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엔 무리였던 거예요. 어떻게든 틈을 좁여야겠단 생각에, 박스를 찢어 바깥쪽에 덧대 두기로 했습니다. 배신의 책임은 나중에 묻기로 하고요.


도구를 준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테이프를 붙일 자리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크기를 맞춰본 뒤 아래쪽부터 박스를 붙였어요. 의자를 밟고 올라가야 할 정도의 높이는 작업 속도를 늦췄습니다. 때 묻은 물티슈처럼 몸도 점점 얼어갔고 손도 점점 느려졌습니다.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차가워진 새시가 테이프를 거부했거든요. 생각보다 잘 붙지 않아, 얼마 남지 않은 손의 온기를 전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접착력이 강한 청테이프가 있었다면 일하기는 더 수월했을 거예요. 하지만 새로 사 오기엔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기에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필요하면 나중에 보강하기로 하고, 작업을 마무리했어요.



어찌어찌 통로를 막았지만, 바람길을 막아주기엔 충분하지 않았어요. 집에 들어와 보니 역시, 극적으로 추위가 가라앉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에어로드는 여전히 냉기를 집안 곳곳으로 들이고 있었어요. 이런 구조의 실외기실은 처음이라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에어로드가 우리 가족을 배신할 걸 알았더라면, 일찌감치 대비를 했을 거예요. 이제 와서 한탄한들 어쩔 수 없었어요.


결국 작업은 눈에 띄는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날씨가 조금 풀리길 기다리며, 다른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어요. 암막 커튼을 두껍게 쳐서 막아두던가 해야겠습니다. 적어도 겨울을 한 번은 더 이 집에서 보내야 하니,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게 좋을 듯싶네요.


집안까지 겨울이 찾아오면,

그땐 이미 늦은 겁니다.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오늘 느낀 진리입니다.




태어난 계절의 영향을 받아, 겨울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매년 겪으면서도 이 한파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네요. 그래서 봄날의 햇살과 파릇한 새싹이 문을 두드릴 때까지, 마음을 잠시 닫아 두려 합니다. 겨울을 사랑하지만, 그 추위까지 사랑하진 않거든요. 배신의 계절인 겨울이 얼른 지나가길 바랍니다.


곱은 손으로 쓴 곱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