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 로퍼의 발등에 뚫린 구멍엔 1센트짜리 동전을 넣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공중전화가 일상이던 시절, 급히 전화할 일이 생겼을 때 요긴하게 사용했었지요. 이 유행은 스마트폰이 생활필수품이 된 지금도 디자인에 남아 있습니다. 10원짜리 동전을 끼우기도 하고, 장식용 동전이 포함된 로퍼가 나오기도 하지요. 사실 페니 로퍼는 그것 외엔 그다지 특색 있는 모양새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평범함 덕에 지금까지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어요.
그런 점이 아내의 눈에도 예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웨딩 촬영을 준비하려 백화점에 갔을 때 제게 구두를 선물하고 싶다며 페니 로퍼를 골랐거든요. 평소 저는 구두라곤 거의 신어본 적이 없어 망설였지만, 아내의 선택에 따랐습니다. 역시나 처음엔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신어 보니 조금씩 발에도 맞고 마음에 들더군요. 그렇게 짙은 갈색의, 발등을 살짝 덮는 페니 로퍼는 웨딩 촬영 이후로도 꾸준히 제 발을 감싸주었습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이 구두는 흘러가는 세월에 긁혀 처음 모습을 잃어갔습니다.
앞 코는 접착제가 떨어져 덜렁거렸고, 밑창도 살짝 갈라졌습니다. 겨울엔 발끝에 찬바람이 들이쳤고, 비 오는 날이면 발이 젖어왔습니다. 급한 대로 가죽용 접착제로 손을 보기도 했지만 곧 떨어지더라고요. 조금씩 이 신발과 외출하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미 수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버리긴 싫었습니다. 오랫동안 포개온 아내와의 추억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았거든요.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요. 하지만 추억을 불러오는, 정든 물건과 헤어진다는 건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앞을 바라보며 사는 게 조금 더 생산적인 마음가짐이고요. 그래도 아까운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에 붙잡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습니다. 이젠 제 발을 감싸주기 힘들어진 걸 알면서도 말이에요. 발등에 십 원짜리 동전 하나 끼워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구두와의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일까요?
구두의 밑창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갈색빛이 완전히 바래기 전에요. 이젠 사진을 봐야만 떠올릴 수 있는 그 추억의 시간으로 떠나고 싶어요. 이 로퍼를 신으며, 어색했지만 행복해 웃음을 짓던 그때로, 한순간이라도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가 로퍼 제조사에 남겼던 AS 문의 글입니다. 이 제품을 수선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어요. 제조사 홈페이지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인 구두였거든요. 하지만 구두 회사는 지금도 운영하고 있었기에 희망을 걸고 글을 남겼습니다.
답변은 금방 달렸습니다. 상당히 싱겁고 당혹스러운 방식으로요.
"저희 OOO 브랜드 제품을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OOO는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위해 평생 AS를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두를 보내주실 곳의 주소를 알려드릴 테니 잘 포장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평생 AS. 긴 글을 쓴 게 무색해질 정도로 강력한 단어였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로 먼저 알아볼걸 그랬어요. 담당자가 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읽고 기분이 어땠을까 궁금해지네요. 어쨌든 수선은 해 준다니, 상자를 구해 구두를 얼른 보내야겠습니다.
오늘의 교훈
· AS가 궁금하면 전화로 먼저 문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