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실패가 내 길을 바꾸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경력은 ‘기록’이 아니라 ‘흐름’이었다.
어느 순간 멈춘 것 같던 날들,
소속은 있었지만 마음은 떠나 있던 시간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나날들.
그 모든 시간은
내 커리어의 빈칸이 아니라,
방향을 틀게 한, 방향을 잡게 한, 굽이였다.
지금도 이력서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잠시 멈춘다.
그 안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다.
문서에서는 요약되지 않는 그 감정.
그 선택이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
그때의 나에게 무엇이 소중했는지.
그 누구도, 아무 시스템도 묻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꽤 많은 이직을 했다.
각기 다른 회사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사직서를 썼다.
때로는 더 나은 환경을 향한 기대였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의 탈출이었다.
그때마다 마음속에는
지금 회사에 대한 아쉬움과 분노,
다음 회사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어설프게 뒤섞여 있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모든 결정은
항상 바깥의 이유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내 안에서 만들어진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
이력서를 정리하며 ‘공백’을 걱정한다.
하지만 그 공백조차도, 나의 궤적이다.
속하지 못했던 회사,
적응하지 못했던 역할,
혼자서 시간을 정리하던 멈춤의 순간들까지.
그 시간들은
'경력의 손실'이 아니라,
나를 조금 더 '내가 되게' 만든 시간이었다.
경력은 흐름이다.
서류에 남은 건 숫자와 직함의 기록일 뿐이고,
내 안에 남은 건
선택과 감정, 그리고 시간이 만든 결이다.
이 연차가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모든 순간
나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지금의 증명은
그건 더 이상 이력서에 쓰는 성과가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일하는지,
어떤 말로 사람을 대하는지,
어떤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인지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다르게 증명하고 싶다.
애써 보이려 하지 않고,
비교의 언어에서 벗어나,
그저 지금까지 축적해 온 나의 궤적을 믿는 일.
이미 충분히 걸어왔다.
충분히 멈췄고, 다시 일어섰다.
이제 그 흐름을 먼저 존중하는 것,
그 흐름 속에 있는 나를 단단하게 지키는 것.
그게,
지금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