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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인 Jan 31. 2024

대치동 만나분식을 떠나보내며

편의만 남고 취향이 사라진 동네

대치동 은마상가에 30년간 있었던 떡볶이집 만나분식은 지난 1월 8일 문을 닫았다.


대치 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을 곳이다. 폐업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오픈런할 정도로 향수를 자극하던 곳이었다. 나 또한 중학 절,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고 향하는 곳은 강남역, 코엑스도 아닌 은마상가였다. 중학생이 은마상가에 왜 갔을까? 싶겠지만 그 시절 그곳은 중학생에게 재미있는 놀거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만나분식이나 그 앞 있던 떡볶이집에서 배를 채우고, 만나분식에 바로 붙어있던 오락실에서 게임을 했다.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집에 게임기, 컴퓨터도 없었기 때문에 그 오락실에서 추억의 게임 1945를 배웠고, '보글보글'도 하면서 시험으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었다.


시험기간이 아니라 련회 가기 전에도 은마상가를 찾았다. 1층 상가를 샅샅이 훑어가며 친구들과 샌들을 맞추고, 비슷한 줄무늬 티셔츠를 다. 온라인 쇼핑이 전혀 없었던 때라, 최신 유행 아이템은 은마상가를 몇 바퀴 돌면서 파악할 수 있었다.('생각해 보니 대치동이 아니라 홍대 앞에 살았다면 지금보다 더 패션센스가 낫겠구나 싶다.')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없었던 그 시절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최신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그때 갔던 곳도 곳도 은마상가 지하 비디오대여점이었다.


그런 은마상가에 터줏대감, 앵커스토어였던 만나분식이 사라진 것이다. 사장님 건강상의 이유로 폐업을 하신다고 하는데, 왜 2세가 물려받지 않았는지, 다른 경영인에게 가게를 넘기고 상호를 지키시지 않았는지 원망 섞인 비난을 기도 했다.


지난여름에 수학학원 레벨테스트를 끝내고 딸아이의 손을 잡고 향한 곳도 만나분식이었다.

"여기가 바로 엄마가 중학교 때 시험 끝나면 친구랑 왔던 데야. 어머 예전에 계셨던 아줌마, 아저씨가 그대로 계시네. 예전이랑 그릇, 기구, 포크모두 그대로네."

"네...."

40대 엄마가 10대 딸에게 마음껏 라테를 시전 했던 곳도 만나분식이었다. 다른 떡볶이집보다 엄청난 비법 양념이 있는 것도, 더 맛있는 것도 딱히 위생적이지 않았던 그곳이 특별한 이유는, 그 공간에 가는 것만으로도 1990년대 후반, 10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할 것도 없었던 떡볶이집이 30년이 지나니 추억이 쌓여 나름의 해리티지가 생기고 특별해졌다. 그런 해리티지가 한순간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고 쓰라리다.


오늘 아침 신문의 헤드라인은 강남은 고전하고, 강북은 뜨면서 서울상권 지도가 바뀐다는 내용이었다. 강남의 골목길현상을 주도했던 가로수길은 아직도 임대문의와 폐업한 공간으로 흉흉하다. 그에 비해 홍대입구는 여전히 건제하고, 성수는 계속 핫하고, 명동도 관광객이 돌이 왔지만, 강남은 아직이다.


강남구 동네 곳곳을 걸어 다니며 느끼는 점은 편리만 남고 취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동네에서 어우러져 살면서 사람 냄새나는 동네만의 분위기와 정취, 문화를 만들었던 공간은 사라지고 용적률을 꽉꽉 채운 빌딩숲, 오피스텔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대치동에는 그래도 은마상가가 남아있지만, 이제 나분식은 없고, 초등학교 시절 토요일 생일파티가 열렸던 맥도널드도 사라지고, 사람이 즐비하던 오래된 아파트 상가 앞 빈자리는 배달 오토바이가 대신 주차되어 있다.


mz세대가 강남에서 회사를 다녀도 강남에서 놀지 않고, 강북을 찾는 이유도 강북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 지어진 감성이 담긴 건축물이 사라진 고층빌딩에서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다. 그래도 강남구의 랜드마크를 찾는다면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이 있을 것이다.

평일 저녁 직장인이 빠져나간 저녁시간에도 코엑스별마당 도서관은 대형트리와 책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기 위한 관광객들로 붐볐다. 8만여 권의 책이라도 비치해야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오픈한 스타필드수원도 별마당도서관을 오마쥬한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하니, 도심 빌딩이나 몰에서 사진명소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픈된 테라스 도서관일지도 모른다.


편의, 효율성만 남고, 취향, 추억이 사라진 동네에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쓸쓸하다. 그런 동네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독립서점이라도 동네마다 생긴다면 좋겠다.


#대치동 #만나분식 #강남상권 #별마당도서관 #독립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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