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만에 콘서트를 다녀왔다. 바로 가수 10cm의 콘서트. 사실 10cm를 좋아하게 된 것은 라디오에서 흘려 나온 그의 신곡 '그라데이션' 덕분이었다.
몇 개월 전이다. 새벽녘 운동을 가기 위해서 떠지지 않는 눈에 겨우 물만 묻히고, 차에 몸을 실었다.새벽 시간 좋아하지 않는 라디오 dj의 음악방송을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듣고 있었는데, 잠들어 있던 귓가에 어떤 음악이 계속 들리더니, 이내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달콤한 색감이 물들어 조금씩
정신을 차렸을 땐 알아볼 수도 없지
가득 찬 마음이 여물다 못해 터지고 있어
내일은 말을 걸어봐야지"
머릿속에 새겨진 멜로디가 운동 연습을 하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운동이 끝난 후에 그 노래를 찾아보니 10cm의 '그러데이션'이었다.
'이게 10cm 노래라고? 아메리카노 부른 그 가수?'
내가 알고 있던 가수 10cm의 노래라는 점도 신기했지만, 나온 지 몇 개월 된 신곡이 아닌 노래였고, 꽤 인기가 있다는 사실마저 생소했다. 최신 가요를 챙겨 듣지 않는 내게는 신곡이었다. 라디오에서는굳이 찾아서 듣지 않아도 일상의 배경으로 있다가도 좋은 노래를 찾을 기회를 큰 장점이 있다. 이후 10cm의 팬이 되었다. 그라데이션을 하염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비록 좋아하는 노래이지만, 아무리 많이 들어도 가사가 외워지지 않고, 혼자 흥얼거리기 어려운 난제 같은 곡이다.)
10cm의 다른 노래를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예상외로 알고 있었던 히트곡이 많았다. '아메리카노', '봄이 좋냐', '쓰담쓰담' 같은 곡들. 노래를 듣다 보니 직접 육성으로 현장에서 노래를 듣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고, 10cm 콘서트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10cm 연말 콘서트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작게 얘기했더니, 의외로 센스 있는 남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몰래 2장을 예약해 두었다. 막상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티켓이 발송되지 않아, 크리스마스 선물이 1월경에 배달된다고 얘기를 들었다. 믿지 않았던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지 않아서 핑계를 대는구나 했었는데, 진짜 1월 5일에 10cm 콘서트 티켓이 발송되었을 때, 무안함과 민망함에 몸 둘 바를 두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10cm 콘서트를 가게 되어 며칠 전부터 열심히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10cm의 노래를 유튜브에서 틈틈이 찾아드는 것이 전부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공원역에 내려서 kspodome(체조경기장)으로 걸어가니, 가는 길에 걸린 휘장이 10cm 콘서트장을 가는 길임을 실감 나게 했다. 객석으로 가보니 2층이지만, 생각보다 무대와 거리가 가까워 꽤 이득을 본마음이 들었다. 클래식 공연장과 비교하면 시야가 넓어서 시원하다.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 360도 공연장이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10cm가 뒷모습으로 등장하고, 앞뒤로 돌아보며 노래를 불렀다.
10여 년 만에 가본 가수의 단독 콘서트는 두 가지 사실이 신기했다.
1. 기술발전이 엄청나다.
대형 스크린으로 실시간 가사 전송이 되고, 무대가 길가로도 변하고 하늘로도 변했다. 크레인에 올라타서 위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공연 마지막에만 나올 법한 폭죽과 반짝이가루 공연 사이사이 적절한 순간에 나왔다. 그에 따라 조명과 무료로 나눠준 응원 팔찌에 조명이 알아서 바뀌니 보는 내내 신기했고, '이것은 콘서트가 아니라 한 편의 뮤지컬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2. 팬서비스에 진심이다.
응원팔찌를 무료로 나눠주고, 가는 길에 핫팩도 챙겨줬다. 콘서트에서만 볼 수 있는 동영상도 3~4개 이상 준비했고, 자신의 노래가 아니어도 팬들이 좋아할법한 다양한 노래도 불러줬다. 10cm가 불러주는 쿨의 애상에서는 10cm의 노래보다 더 큰 떼창이 나온 느낌은 느낌인 것일까. 10cm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뉴진스 하입보이(Hype Boy)를 불려주는 것을 보며 '10대부터 40~50대까지 신경을 써서 준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으로 예정된 공연 시간보다 3시간을 꽉 채워 준비했다. 중간에 커피차를 타고 사랑은 은하수 다방 노래를 들려주며, 관객들과 호흡하려고, 스킨십하려고 노력했다.
이처럼 엄청난 기술발전과 진정성 있는 팬 서비스에 콘서트 보는 내내 감동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가수 10cm가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를 여는 가수이자 크리에이터로 성장하는데 크게 2가지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홍대이다.
10cm는 홍대파이다. 홍대에서 버스킹을 하며 성장해 왔다. 버스킹을 하며 관객이 없을 때도 노래를 불렀고, 즉석에서 색소폰 연주자와 합주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콘서트의 앙코르 공연에서도 일부러 팬들에게 버스킹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쓰지 않고, 생목으로 노래를 불렀다. 버스킹으로 단련된 그의 성량은 마이크 없이도 체조경기장을 채우기 충분했다.
홍대가 없었어도 10cm가 있었을까? 한국에서 무대가 없는 가수들도 무대를 가질 수 있는 곳이 홍대이다. 10cm가 '아메리카노'로 성공을 거두고 홍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세운 목표는 단 하나였다고 한다. 300명의 객석을 채우는 것이었다. 홍대에서 300명의 객석을 채우는 목표를 이루고 1만 명의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대가수로 성장한 것이다.
가수로서의 10cm도 좋아하지만, 작곡가로서, 씽어송라이터로써 그를 응원한다. 후배가수들은 그를 '좀비'라고 부른다고 한다. 10cm는 이미 몇 곡의 히트곡이 있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묵묵하게 곡을 쓴다. 그중 어떤 곡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기도 하고, 많은 곡들은 애정을 가지고 썼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묻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의 역할을 다한다.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일.
그가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를 콘서트에서 밝혔다.
"2017년에 슬럼프가 있었어요. 내가 노래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는구나를 느꼈지요. 2017년에 10cm가 그룹에서 솔로가 되는 아픔을 겪고 많은 비난을 받고, 신곡을 발표했지만,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2017년에 콘서트를 끝으로 그만 노래를 해야 해야지 느꼈는데, 그때 객석에서 보내주신 팬 여러분의 사랑으로 다시 노래하게 되었어요."
두 번째는 팬이다.
이번 콘서트의 테마는 9+1cm이다. 의미는 팬이 9할이라는 것이다. 본인은 1할만, 단 10%라는 것이다.
10cm는 사실 콘서트 내내 울컥함을 참지 못했다. 1만 명이 객석을 가득 채운 체조 경기장을 봤을 때 감정이 북돋아 올랐을 것이다. 10cm는 콘서트시작에 너무 긴장하고 감정에 복 받힌 나머지 이런 설명을 다 하지 못했고, 공연 막바지에 공연제목에 대한 설명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준비한 멘트를 다 마치지 못해도, 울컥함에 제 타이밍에 노래를 시작하지 못해도 그냥 그 자체로 좋았고, 용인할 수 있었다. 진정성,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10cm의 빅팬은 아니지만, 크리에이터로써 그를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가 콘서트에 얼마나 노력하고 준비해 왔는지 내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cm 콘서트는 나에게는 십여 년 만에 가본 콘서트였지만, 남편에게는 인생 첫 콘서트였다. 40 몇 년 동안 단독콘서트는 한 번도 가지 않았고, 가보지 못했던 남편은 10cm 콘서트를 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거금을 드려 티켓 2장을 직접 예매했다. 큰돈을 써서 인생 첫 콘서트를 티켓을 구입하고, 공연 관람을 마친 남편에게 물어봤다.
"공연 어땠어"
"재밌었어. 돈이 하나도 안 아깝네"
짠돌이 남편을 콘서트 티켓을 사게 만드는 데 성공하고, 공연에 만족하게 만든 10cm 그는 진정한 크리에이터다.
창작자는 1000명의 진정한 팬이 있으면 먹고살 수 있다.
케빈 켈리의 1천 명의 찐팬 이론을 다시금 실감하게 됐다. 10cm의 콘서트를 보고 나오며 반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