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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인 Feb 12. 2024

타지 못한 산정호수 오리 썰매

한국 관광지는 왜 발전하지 못하나?

명절에는 고속도로 통행료가 무료다.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난해부터, 명절 차례를 지낸 후에는 톨비 무료 찬스를 활용해 서울 근교 여행지를 찾고 있다. 지난 추석에는 춘천에 가서 1박 2일을 보내며, 춘천호수를 따라 자전거도 타고, 춘천 원도심의 스테이에서 하루 묶으면서 춘천도시 여행을 즐겼다. 올해 설 연휴에는 포천 산정호수를 목적지로 정했다.


산정호수를 여행지로 선정한 이유는 온천, 산정호수 오리썰매, 집에서 가까운 거리였다.


포천 산정호수 썰매축제는 벌써 99회를 맞이한 지역대표 축제이다. 지역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썰매축제는 노란색의 러버덕썰매가 이 축제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아 인스타그램에서도 핫한 인기를 누리는 축제이다. 산정호수를 여행 목적지로 정하고 검색을 하던 중, 작년 12월 30일부터 올해 2월 중순까지 예정되어 있는 산정호수 썰매축제를 알게 되었다. 그냥 온천만 하고 오는 것보다는 귀여운 노란 오리썰매를 타면 아이들도 즐겁고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사진도 찍을 수 있겠다 싶었다.


'주차는 원래 주차장 말고 돌담병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시고 산정호수 둘레길로 걸어가시는 게 빨라요.'

'운영정보는 산정호수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보고 가세요.'


친절한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통해서 유용한 정보도 알아냈다. 산정호수 인스타그램을 찾아서 오늘 운영한다는 일정도 확인했고,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주차장을 내비게이션에 찍고 산정호수로 향했다.


가까워 보이던 포천 산정호수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도 생각보다 멀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2시간이 넘게 걸려서 겨우 산정호수에 주차에서, 블로거가 알려준 '돌담병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병원 주차장에서 썰매축제장까지는 생각보다 멀어 보여서 결국 차를 돌려 붐비는 축제장 근처에 주차를 했다.


축제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이곳이 산정호수가 맞아?'싶게 간이 바이킹, 범버카, 두더지 잡기 같이 번잡하고 산만한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커다란 음악소리에 맞춘 DJ의 추임새가 귀를 피곤하게 했다. 썩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 놀이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관경이 조금 의아했다. 썰매장에 가까워지자 방금 전의 의문은 바로 해소가 되었다. 어제보다 따뜻해진 날씨로 안전상의 이유로 얼음썰매가 운영되지 않는 것이었다. 매표소에 빨리 가서 줄을 서야지 했던 조급한 마음은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으로 변했다.


대부분 썰매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제대로 된 공지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산정호수 주변에는 산채비빔밥, 포천 이동갈비, 이동막거리와 곁들이 향토 음식점들이 있었지만 볼품없는 가건물처럼 음식점의 맛도 관광지에서 보는 외지인들을 타깃으로 한 딱 그만큼으로 보여 발길을 돌렸다.


산정호수는 대한민국 100대 관광지중에 하나이고, 수십 년간 사랑받았던 관광지이다. 1925년 일제강점기에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관개용 저수지로 처음 축조되어 온 이후에, 산 정상에 이렇게 넓은 호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이끌었을 것이다.


산정호수에서는 겨울에는 억새축제, 썰매축제를 즐길 수 있고, 산정호수 주변으로 둘레길을 조성해 놓아 호수를 보면서 걷기 좋은 길을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산정호수 인근의 관광지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산정호수 둘레길중에 궁예의 길 입구에는 흔히 말하는 국립공원입구 마을처럼 산채비빔밥과 정체 모를 손수건, 모자, 공, 등긁개 같은 나무 공예품을 파는 오래된 기념품점들이 있었다. 기념품점들의 건물도 제대로 된 건물 하나 없이 비닐하우스나 가건물형태에서 산정호수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관광객이 시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 민망하게 만들 만큼 초라했다. 아름답고 웅장한 빙벽 앞에도 초라한 가건물의 백숙집이 있어서 자연경관을 망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그런 가건물대신 한옥이 있었으면 한 폭의 산수화 같았겠다 싶어서 내내 안타까웠다. 산정호수 앞 놀이공원, 둘레길 앞 메인 주차장 앞 관광지 모두 지난 30여 년간 전혀 발전이 없고, 그 시절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했다.


두 번째로 산정호수를 찾은 이유인 온천은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연휴기간 워낙 많은 이용객들이 찾는지 노천탕 속에는 미역 같은 오염물과 사람들의 각질이 둥둥 떠다니는 위생상태로 눈을 뜨고 온천을 즐기기 어렵게 했다. 앉아서 씻는 자리는 워낙 자리가 없어서 서서 치열한 눈치싸움 끝에 겨우 자리를 맡고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러한 피곤한 온천욕 경험을 하니 지난여름 일본여행에서 피곤한 일정을 마치고 마음 놓고 즐겼던 노천온천목욕 경험이 소환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다행히 온천욕은 몹시 피곤하고,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목욕 후의 피부가 보들보들해지고 피로가 말끔히 풀린 것을 보고 그나마 만족스러웠다.





설, 추석 같은 민족의 대명절에 대체공휴일을 지정하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무료로 하는 등 국내여행을 장려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여행수요는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고, 같은 시각 인천국제공항은 외국으로 향하는 한국여행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바쁜 것이 현실이다.

 

산정호수에 있는 한화리조트의 명칭은 '산정호수안시'이다. 산정호수 그 자체로 부족했는지 프랑스 파리근교의 소도시 안시 지명을 산정호수 뒤에 덧붙였다. 산정호수가 예전의 관광지로써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의 이름 하나를 더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MZ세대 관광객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산정호수다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도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얼음썰매 축제에 오리썰매 같은 산정호수 많이 재미거리를 만든 점, 또 커다랗고 멋스러운 한옥을 새로 지어서 여러 채의 별채를 만들고 그곳을 한옥 베이커리 공간이 최근에 생긴 점을 생각하면 '산정호수다음'이 조금씩 생기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순간 여행을 간다는 정의가 해외여행을 간다는 의미로 변하고 있다. 설, 추석 같은 명절만이라도 여행을 간다는 것이 매력적인 한국의 동네를 찾아가는 국내여행으로 변하기를, 그러기 위해서 지역마다 지역의 '다움'을 찾고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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