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봄방학이 이어지고 있다. 초등학생, 예비중학생과 함께하는 돌밥돌밥의 루틴을 깨는 오늘의 일정은 '동대문 종합시장' 방문이다.
방학을 맞이해 단짝친구와 특별한 일정을 함께하고 싶은 예비초등학교 5학년이 가고 싶었던 곳은 다름 아닌 동대문종합시장이다. 집에서 동대문까지 거리는 있어도버스 한번 타면 도착하니 접근성이 좋다. 그래도 아이들 혼자 보낼 수는 없기에 기꺼이 동참했다. 거기에 예비중학생인 언니도 동대문 방문을 함께 하기로 하고, 그녀의 단짝 친구까지 당일 아침에 섭외하는 데성공해 졸지에 10대 소녀 4명을 데리고 동대문 종합시장에 오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동대문은 어려서부터 여러 번 엄마 손에 이끌려서 와봤다. 물고기를 사러 오기도 했고, 잠시 키웠던 금화조라는 새도 이곳에서 추천받아서 샀었다. 원하는 신발을 사기 위해 신발상가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청계천이 없던 시절 육교 위는 저렴한 옷을 파는 성지였는데, 한벌에 5천 원 하는 바지를 엄마와 함께 열심히 골랐던 기억도 있다. 헌책방 거리를 누비며 마음에 드는 독일어 사전을 저렴한 가격에 사서 뿌듯하기도 했고, 평화시장은 초등학교 시절 내 옷을 사는 단골상가였다. 이처럼 기억 켜켜이 동대문 시장이 새겨져 있는데, 동대문 종합시장은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 와봤다. 패션이나 관련 종사자가 아닌 이상 부자재를 살 필요가 없어서 와보지 않았던 것인데, 올 겨울 이곳을 벌써 두 번이나 찾았다.
"ㅇㅇ이랑 이번주 금요일에 동대문가요. 빨리 금요일이 왔으면 좋겠다. 너무 기대돼요!"
친구와의 동대문 방문을 기다리던 아이와 함께 나까지 총 5명이 동대문 종합시장에 왔다. 저번에는 입구를 잘 찾지 못해 5층까지 계단으로 힘겹게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한번와봤다고 한 번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B동 상가 입구를 찾는 데 성공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리니 초등학교 학생들, MZ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초등학생 사이에 인기 있는 모루 인형 만들기 재료는 기본이고, 키링 인형과 인형에 필요한 액세서리 재료가 즐비하다.
이처럼 인형 커스텀이 대유행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키링을 가방에 달면 그 가방은 세상에 유일무이한 가방이 된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온갖 수고로움이 동반되는데 털북숭이 인형은 귀여움은 있지만 수고가 훨씬 덜 하니 인기다.
동대문 종합시장 5층은 엄마와 함께 이곳을 찾은 유, 초등학생들로 붐빈다. 문구점에 있는 이미 만들어진 인형이나 소품이 아닌, 내가 직접 고른 재료로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열망으로 후끈하다.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서 웬만한 DIY기술을 배울 수 있다. 연희동을 대표하는 바늘이야기도 대표님의 딸이 김대리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직접 수업을 듣지 않아도 친절하게 한 땀 한 땀 알려주는 뜨개수업을 통해 유명해졌다. 초등학생들도 유튜브를 통해 뜨개질에 입문할 수 있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로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 수 있다. 필요한 재료는 인터넷으로 구입하거나 오프라인 시장에서 살 수 있다. 지금 아이들이 만들기를 하는 그 시작은 특별한 기술이 없이도 할 수 있는 모루인형일 테지만,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DIY기술도 함께 성장한다면, 뭐든지 직접 만들어 생활하는 수공예의 시대가 올 수 있다.
생활문화는 의-식-주 순으로 발달한다는데 모루인형, 뜨개질에서 시작된 활동이 식문화와 주거문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AI가 고도화되더라도 내가 직접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다. 미래에는 집에 가구 하나정도는 직접 만들고, 직접 도배하고 페인트 칠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