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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인 Dec 13. 2023

대도시를 걷는 산책가의 기쁨

작은 가게를 응원합니다.

다시 돌아온 동네에 정을 붙이기 위해 하는 일. 차는 지하주차장에 곤히 모셔두고 두 발로 골목 여기저기를 부단히 도 걸어 다닌다. 


걷다 보면 걸을 때만 찾을 수 있는 뜻밖의 기쁨도 발견한다. 필라테스 수업을 마치고 걸어오는 길, 삭막한 콘크리트 옆 구석진 담배꽁초 덤불 위에서 자기 부리보다도 더 큰 열매를 입에 물고 앙상한 나뭇가지 위를 부지런히 옮겨 다니는 이름 모를 새의 움직임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회색빛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의 보행로는 사람이 많으면 부대껴서 걷기 힘들다. 주말이나 밤시간에도 황량하면 황량한 데로 걷는 사람에게 우울함을 더한다. 조금이라도 넋을 놓고 다니면 차가 나오고, 오토바이가 뒤에서 나타난다. 그래도 대로변 뒷골목은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는 숨 쉴 수 있는 길이다.


걸으면 얻을 수 있는 기쁨은 한 가지 더 있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작지만 빛나는 가게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 이런 게 있을까 싶은 곳에, 나만 알고 싶은 깔끔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의 카페, 주인장만 입을 것 같은 양복을 파는 가게도 있다.


오늘 가본 처음 가게도 산책을 통해 발굴한 곳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어두컴컴한 뒷골목을 걸어가는데 멀리서 따뜻한 온기가 보였다. 이런 따스함이 느껴질 곳이 있을 법한 길이 아니라, 나의 눈을 의심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니 작은 가게 안, 따뜻한 조명 아래서 몆몇의 고객들이 와인잔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그 순간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질투가 났다. 나도 노란색 전구 등 아래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며 편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현실은 산책을 나온 처지. 아쉬운 마음을 네이버 지도에 저장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몇 차례 그곳에 가려고 시도를 했지만, 노키즈존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마땅히 갈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고 기억에서 희미 해질 즈음 송년회를 핑계 삼아 회심의 미소를 띤 채 지인에게 약속장소로 그곳을 제안했다. 그 결과 모임장소로 채택되어 가보게 것이다.


3가지 요리(안티 파스티, 파스타, 디저트)가 포함된 런치 메뉴의 가격은 점심에 지출하기에는 다소 높은 가격이었지만, 저번달 방문했던 청담동의 생면 파스타 단품 가격에 비하면 합리적이다.


안티파스티는 성게, 고등어를 활용해 창의적인 요리라 좋았지만, 맛이 비슷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다음으로 나온 파스타는 스파게티면이 아니라 굵고 두꺼운 면이라 내 입맛에는 너무 알단테로 설익어서 잘 맞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온 디저트는 피스타치오가 들어간 티라미수로 세 가지 메뉴 중에 제일 맛있었지만, 곁들일 차나 커피를 팔지 않아서 물과 함께 먹으니 아쉬움이 컸다.


전체적인 만족도는 기대에 비해서 낮았다. 그래도 이곳에 두 번 다시 안 가고 싶다가 아니라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곳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친절함, 철학, 요소요소 정성껏 꾸며놓은 공간에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기본적으로 트리놓았지만 산타할아버지가 총을 들고 있는 위트 있는 포스터, 세련되지만 웃긴 산타 모형이 눈길을 끌고, 마음을 끌리게 한다.


어제 한 달간 참여한 에세이 글쓰기 수업의 성과 공유회에서 서로의 작품을 읽고 무기명으로 코멘트나 질문을 남기는 시간이 있었다. 나에게도 한 가지 질문이 들어왔다.


"제주나 여러 지역에서 살아보셨는데요. 다음에 살아보고 싶은 지역이 있으신가요?"


"여러 지역에 살아보니까 결국 제가 현재 사는 동네 애정을 갖고 사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 당분간은 제가 사는 동네를 가치를 찾정을 붙이고 살아가고 싶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오늘 처음 가본 우리 동네 가게는 부족한 점은 많았어도 식사를 마친 우리를 가게 밖까지 나와서 배웅해 준 셰프님의 응대 덕분에 마음까지 따뜻했다.


동네에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작지만 고유한 가치로 빛나는 가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염두에 둔다고 한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그알의 편에 서겠다.



알의 편에 서는 마음으로 동네에 고유한 가치로 무장한 연약 하지만 강한 독립가게들을 응원하고 싶다. 우리 동네를 좋은 동네로 바꾸기 위해 내일도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동네 골목 구석구석을 누벼야겠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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