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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인 Dec 12. 2023

인사동에는 없는 인사동다움

K 컬처의 미래는?


"이번달에 재미있는 데 한 번도 못 갔어요."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6학년 큰 아이가 볼멘소리를 한다. 제주에 살 때는 주말이면 산으로 바다로 놀러 다니기 바빴는데, 서울에 오니 변하기는 변했다. 그간 하지 못했던 가족 모임과 제주에서 보다 늘어난 학원스케줄, 그나마 남은 시간에 하는 외출이라고는 코스트코나 이마트 장보기, 집에서 가까운 코엑스몰 쇼핑하기가 다였다.


“그래? 그럼 어디 가고 싶은데?

“인사동이요”

아이가 가고 싶은 곳은 뜻밖에도 인사동이었다.


"인사동?"


'인사동이라고 하면 전통문화 관련 가게들이 많은 곳이지, 재미있는 곳으로 인식되는 동네가 아닌데…' 아이의 말에 따르면 몇 달 전 엄마 없이 아빠와 다녀온 인사동 쌈지길에 재미있는 체험이 많아 보였는데, 집안의 결정권자이자 답정녀인 엄마가 없어서 체험을 하지 못하도 돌아왔다고 한다. 엄마와 함께하는 오늘은 그때 찜 해놨던 체험을 기필코 하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친다.


"그래 그렇게 가고 싶으면 인사동 쌈지길 가자!"


집에서 사대문을 향할 때면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교통체증에 주차료를 생각하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내려 쌈지길과 가까운 6번 출구로 향한다. 지하에서 지상을 올라가는데 안국역 역사의 세련된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단아한 컬러의 타일이 정갈한 무늬를 갖고 있고, 돌을 깎아 만든 장식물이 감히 지금같이 건축비와 인건비가 비싼 시대에는 엄두조차 못 낼 비싼 장식품으로 보인다.


역에서 3분 정도 걸으니 낯익은 인사동이 보인다. 인사동입구의 편의점 지에스25의 영어를 뺀 한글 사인이 여기가 인사동임을 각인시킨다. 인사동 초입에 눈길을 돌리니 모자 가게가 보인다. 겨울에 쓰기 좋은 벙거지 모자를 깔끔하고 정갈하게 진열해 놓아 이제 막 인사동에 진입한 방문객의 발길이 저절로 향한다. 모자 디자인은 다른 곳에서 흔히 파는 생김새와 달랐지만, 조금은 비싼 가격대에 계산대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그래도 독립적인 한국 브랜드가 인사동 입구에 있다니 인사동 탐방의 시작이 좋다.

 

5년여 만에 찾은 인사동은 방문객과 외국인 관광객으로 벌써부터 분주해 보이고, 곳곳에 보이는 필방, 전통소품가게로 인사동임을 느끼게 해 준다. 여전히 예전 방식 그대로 한국전통소품들을 개성 없이 진열해 놓은 가게들에서는 안타까움과 비난의 눈길을 거두기 어렵다.

 

안녕 인사동’이라는 거대한 복합 문화공간은 인사동의 오랜 건물이 없어지고 개성 없이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지만, 그래도 1층 공간을 개방 있게 마당으로 조성해 놓아서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발길을 더 돌려 오늘의 목적지인 '쌈짓길'에 도착했다. 언제 적 쌈짓길인지… 대학교시절 데이트 장소로 많이 왔던 곳을 오랜만에 오니 쌈짓길은 죽지도 않고 예전보다 더 활기찬 곳으로 변해있었다. 1층부터 4층까지 걷기 좋게 되어 있는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 보니 건물전체가 소품가게, 공예 체험장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은 건물을 샅샅이 걸으면서 무슨 체험을 할까 한참 고민에 빠져있다. '레진아트', '원석 팔찌 만들기', '마이크로 레고블록 만들기', '생일초 만들기'를 제치고 당첨된 체험은 '양모 펠트 체험'과 '모루 인형 만들기 체험'이다.

 

둘째가 선택한 '양모 펠트 체험'은 양모뭉치를 뽀족한 바늘을 이용해서 뭉쳐서 모양을 만드는데 인형을 만들 수도 있고, 액자에 원하는 그림모양을 완성할 수도 있다. 예전에 키운 강아지 보이를 직접 양모펠트로 남기기 위해서 액자체험을 선택했고, 체험가격은 3만 원으로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이 체험을 위해서 왔으니 흔쾌히 체험을 승낙한다.

 

이제 한 명 남았네’

 

큰 아이는 평소에도 너무 하고 싶었던 ‘모루 인형 만들기’ 체험을 신청했다. 한창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만들기인데, 털실로 된 철사를 감으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인형이 완성된다. 거기다 귀여운 선글라스, 안경, 핸드백, 옷, 머리핀으로 나만의 인형을 꾸밀 수도 있다. 모루인형 체험은 조금 저렴한 2만 2천 원.

 

두 아이 모두 체험장에 맡기고 근처 카페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어느새 체험을 마친 아이들이 카페로 와있다. 체험의 결과물은 체험 가격에 비해서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지만, 만족감 가득한 얼굴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과정을 설명해 주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 다 괜찮겠다 싶다.

 

체험을 마치고도 시간이 남아 전부터 궁금했던 서울공예박물관을 찾았다. 풍덕여고를 리모델링해서 만든 ㄱ공예 박물관은 입구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난해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체험으로 지친 아이들을 억지로 데리고 온 곳이라 빨리 관람을 마쳐야 하는데 사전가 직물관동에 '자수 전시관', '보자기 전시관'이 있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자수를 놓았다고 하는데, 전시관의 자수작품들은 수집가 허동화 선생님이 몇십여 년에 걸쳐서 모아놓은 컬렉션이었다. 집념에 가까운 빼어난 자수 솜씨, 현대 어디에 내놓아도 세련되고 정갈한 디자인,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수작품에 이런 게 한국의 명품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자수 작품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오는데, 고인이 되신 허동화 선생님님의 인터뷰 영상이 있다.


“한국사람처럼 바느질에 뛰어난 민족이 없어요.”

 

한국 전통문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동네인 인사동에서 찾을 수 없었던 인사동 다움이 한국전통자수나 보자기가 아닐까. 쌈짓길의 수십 개의 체험공방 중에 한국 전통문화를 새롭게 체험할 수 있고 만드는 공간이 없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것이 공예박물관을 나오며 느낀 점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박물관에 전시되고 보존되어 가지만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생활문화 속에 자리잡지 못하는 현실.


K문화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많이 염려되는 이유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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