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훠궈를
십 대 자녀들과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마스가 특별했던 시절에는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아이가 없었거나 결혼한 지 n자릿수였을 때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특별한 곳에 가서 식사를 했다.
높은 빌딩 전망 좋은 곳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했고, 작지만 실력 있는 레스토랑에서 특별한 코스 요리를 예약해서 먹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시절은 지났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특별한 외식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24일, 25일 이틀간 외식을 할 수는 없기에 24일에는 라끌렛을 집에서 먹고, 25일은 밖에서 먹는 식으로 루틴을 만들어왔다.
라끌렛은 퐁뒤와 더불어 스위스를 대표하는 치즈 요리로, 단단하게 굳어진 치즈를 불에 직접 쬐어 녹인 후 긁어내 채소나 빵, 고기 등에 얹어서 먹는 음식이다. 직접 녹여서 얹기 때문에 와인을 섞어 끓이는 퐁뒤와는 다른 치즈의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 나무위키 참조-
라끌렛 그릴은 독일에서 살 때 사 온 것으로 당시에 7만 원 안팎의 저렴한 금액에 사서 독일에서 손님 초대 시 유용하게 사용했고, 한국에 온 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해 크리스마스 만찬을 도와주는 고마운 도구다. 라끌렛 요리는 사실 추운 계절이면 언제 먹어도 상관없지만, 그릴을 닦고 정리하는 일이 워낙 번거로워 연 1회만 꺼내먹고 보관하는 것을 암묵적인 룰로 삼았다.
하지만 올해 라끌렛그릴은 크리스마스보다 조금 일찍 꺼냈는데 친정 식구들을 초대하는 연말모임에서 라끌렛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라끌렛은 치즈와 야채, 고기만 있으면 멋진 한상차림을 큰 노력과 투자 없이도 내놓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손님을 위한 상차림에 제격이다.
이미 12월에 한 차례 라끌렛 요리를 먹었기에 12월 24일 라끌레를 다시 먹었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다. 사실 치즈와 각종 재료를 많이 준비해서 남김없이 먹느라고 마지막에는 속이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12월 25일 외식 메뉴로는 담백한 음식을 먹자고 결정했다. 무수한 리서치 끝에 당첨된 메뉴는 중국 훠궈이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다는 중국 체인의 한국 지점이다. 12월 주말에 2시간 이상 대기가 있었다는 무시무시한 리뷰를 읽고 난 후, 12월 25일 아침에 아침식사도 거르고 서둘러 버스를 타고 강남역으로 향했다.
강남역 훠궈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10시에 오픈런을 하지 못해서 어떡하나 대기표에 이름을 걸고 대기석에 앉아있는데 눈앞에 웰컴 드링크로 주스 2종과 따뜻한 보리차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의자옆에 같이 먹기 위한 커피쿠키도 놓여있다. 준비된 간식을 채 먹기도 전에 안내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건다.
"한 시간 반 안에 식사를 끝내실 수 있으면 바로 자리로 안내해 드릴게요."
"좋아요"
뷔페도 아니고 훠궈 집이니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4명이 안기에 충분히 넓어 보이는 자리로 안내한다. 처음 왔다고 하니 회원가입을 도와주고 태블릿 PC를 남겨두고 간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낸 방법으로 주문을 시도한다. 훠궈 베이스 국물을 한 가지가 아니라 4가지로 주문하고, 4가지 맛은 삼계탕, 토마토탕, 홍탕, 맹물로 주문한다. 맹물은 전체 가격을 낮춰주고 국자를 닦는 용도로 쓴다고 친절한 블로그가 알려줬다.
"고객님 소스는 1인당 시키셔야 하는데요. 아이가 몇 살인가요?"
매운걸 못 먹는 둘째는 제외하고, 소스는 3인만 추가했다. 국물 베이스를 추가하니 금액이 꽤 높아져서 훠궈 재료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선택한다. 야채, 가는 당면, 피쉬볼, 유부, 소고기, 흰밥과 마라닭 이렇게만 주문해도 금액이 꽤 높다.
소스바에 가보니 이곳은 신세계이다. 기존 마라탕집처럼 소스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있을 뿐 아니라 후르츠칵테일, 황도 통조림, 귤, 떡, 당면 잡채, 김치, 멸치볶음, 옥수수 죽까지 기본 사이드디쉬로 제공된다.
신나는 마음에 소스바에서 과일로 시작해서 훠궈 국물에 야채를 넣고 먹기 시작한다. 근데 웬걸. 평소 마라탕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 1단계 홍탕이 너무 매워도 극악하게 매웠다. 얼굴은 빨개지고 코를 풀어도 마라맛이 온몸 가득 스며들어 배출하기 어렵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삼계탕 베이스 국물을 시켜서 삼계탕을 먹으며 놀란 속을 달랠 수 있다는 것이다.
홍탕에 놀랜 첫째도 홍탕에 삼계탕 섞어먹으면 정말 맛있다며 좋아한다. 너무 매워 온몸 가득 마라맛을 채우고 후식으로 떡과 과일로 배를 채운 후 식당을 나선다.
로맨틱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훠궈 식당이지만 그 어떤 크리스마스보다 화끈하고 인상에 남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곳이 특별했던 이유는 또 하나 있다. 기존 중국식당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친절함이다. 자리에 벗어놓은 외투를 정성스레 접어서 덮개를 덮어주거나, 국물이 부족하면 알아서 리필해 주고, 국물에 떠 있는 기름 불순물까지 제거해 줬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하루 지난 오늘 큰 딸에게 어제 너무 매운 것을 먹어서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괜찮은지 물어봤다.
"삼계탕 국물 두 국자에 홍탕 조금 넣으니 너무 맛있었어요. 오늘 또 먹고 싶어요. 크리스마스에 같이 훠궈 먹는 엄마는 너무 MZ 같아요."
이 말을 들으니 십 대 딸들에게 즐거운 크리스마스 디너를 선물한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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