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 만원 버스, 하루종일 햇빛 한번 쬘 일 없이 이어지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과 함께 나답게 살 수 있는 시골살이를 꿈꾸게 된다. 자녀가 있다면 시골살이가 끌리는 이유가 추가되는데, 집-학원 루트를 무한 반복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연과 함께 여유롭게 유년시절을 보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부모로서는 자연스럽게 생긴다.
정부에서도 그러한 귀농귀촌, 지역으로의 이주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서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청년마을' 사업이다.
청년마을 사업은 행정안전부가 2018년부터 시작해 시범기간을 거쳐, 2021년부터 전국의 12개 지역을 선정해 지역에 매년 2억, 총 6억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현재 전국의 27개 청년마을이 조성되었고, 올해 12개 지역이 추가로 선정되었다. 지방자치단체에 예산을 지원하는 형태가 아니라 청년단체가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공모에는 수십대일의 경쟁률이 있을 만큼 인기가 많은 사업이다.
2023년에 선정된 청년마을 사업 지역으로는 세종 연서면, 충남 예산군, 충남 홍성군, 전북 익산시, 전남 영암군, 전남 고흥군, 경남 의령군, 경북 고령군, 경북 연천시, 충북 보은군, 충북 진천군, 강원 홍천군이 있다.
기존 귀농귀촌 정책이 주로 장년층을 대상으로 운영되어 왔다면, 청년마을 사업은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한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다른 지역에서의 삶이 궁금했다. 그래서 독일에서 1년간 살아보기도 했고, 그 이후에는 제주에서 4년간 내려가서 살다가 다시 살던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에 다시 정착하니 언제 제주도에 살았나 싶을 정도로 금방 도시에서의 삶이 적응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여유로운 삶, 다양한 삶, 나다운 삶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가치를 구현하는 장소는 서울보다는 비서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지역 창업에 관한 다양한 일을 해오면서, 청년마을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청년마을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던 청년들도 만나왔는데, 이처럼 관심은 있었지만, 스스로가 사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려워 궁금하던 차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며 완주로 향했다.
지역에 내려가서 산다고 해서 모두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는 농사 외에도 다양한 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렇게 농촌 지역이 아닌 소도시 원도심으로 귀촌하는 현상은 최근 귀로컬이라고 불리고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40~50대 귀로컬인을 타깃으로 하는 정책이다. 그동안 다양한 정부지원사업을 눈여겨보면서 대부분의 지원사업이 만 39세까지 제한된다는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는데, 그런 차원에서 로컬 X 체인지는 X세대(1970~1984년)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캠프이고, 귀농귀촌뿐만 아니라 듀얼라이프, 삶의 균형과 조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선발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1기부터 3기까지 기수별로 2박 3일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특히 3기는 10대 자녀 동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어 초등학교 4학년, 6학년 10대 자매를 키우는 나에게 맞춤형 프로그램이었다.
완주에서 첫째 날
출발하기 전
'완주', 사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지명이었다. 서울, 제주외의 지역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인데, 전라도 어느 지역이라고 생각해 봤던 완주를 떠올려 보니 로컬푸드의 성지이고, 김혼비 작가가 쓴 <전국축제자랑>의 완주 와일드푸드축제로 소개된 지역이었다.
완주에 가면서
금요일 오후에 출발하면서 길이 많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걱정은 잊은 채로 서울과 수도권지역에서 멀어질수록 오랜만에 제주에서는 질리도록 보던 초록이 보이니 정말 반가웠다. 고속도로를 나와서 산을 굽이굽이 따라 흐르는 계곡길로 이어지는 국도를 달리면서 자연을 좋아했던 나의 자아를 찾아가고 있었다.
완주에 도착해서
미리 알려주신 목적지를 네비로 따라가니 오래된 교회가 눈에 띄었다. 오래된 건축자원의 아름다음과 중요성, 경제적 가치에 배우고 있었던 찰나에 교회 건물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를 하고, 저녁 시간에 맞춰 바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집밥으로 구성된 식사였는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식사는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곤드레밥에 나물과 각종 반찬들, 딸기로 만든 푸딩까지 집밥이라면 절대 구현하기 힘든 다양한 음식을 한 끼에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2박 3일간 묵게 될 숙소에 올라갔다. 숙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창문 밖으로 펼쳐진 초록 뷰이다. 리틀포레스트가 연상되는 내부 분위기에 산너머로 지는 해와 밭 풍경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완주까지 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 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완주청년마을 '다음타운' 대표이자 밀양소통협력센터 본부장을 맡고 계신 김주영(톨)님의 프로그램과 과 완주 고산면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완주 고산면은 인구는 약 4,500명으로 완주 북부의 중심지이다. 쌀, 마늘, 양파, 한우가 주요 특산품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 마을 공동체, 로컬 푸드가 유명하다. 특히 공립학교가 좋아서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젊은 귀로컬인들이 찾아오는 지역이다.
지역에 많은 변화 요소를 1. 살고 싶은 마을, 2. 오고 싶은 지역, 3. 매력적인 로컬을 나드는데 연결기획자, 4. 다거점 주거, 5. 워케이션, 6. N잡러로 설명해 주셨는데, 씨앗은 지역, 연결, 전환, 문화를 연결하는 협동조합으로, 2021년 청년마을사업에 선정되고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관계와 생계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크게 4가지 거점 시설을 운영하는데, 코워킹스페이스 '고래당', 게스트하우스 '다음 스테이' , 식당과 양조장인 '커뮤니티 부엌', '비빌 언덕 연결사무소'가 있다. 다음타운이 이룬 성과는 지금까지 59명이 참가해서, 5팀의 창업팀, 6명의 취업인, 4개의 공간, 140회의 교류활동, 11회의 행사, 32회의 교육을 통해서 24명의 정주 인구를 유치했다는 데 있다.
완주 고산면이 찾은 테마는 '디자인', '도시재생', '전통주', '공동육아', '제로웨이스트', '프리랜서', '농업', '요리'이다.
참가한 로컬 X체인지@완주 프로그램은 청년마을 사업의 후속사업의 성격으로 기존 정책에서 소외된 X세대를 2박 3일 과정을 통해서 지역을 탐색하고, 2주간 살아보는 연결실험과 1~3일의 자유실험을 통해 완주를 탐색하고 체험하여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모하는 과정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과 완주에서 청년마을사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대한 강의를 듣고 그동안 막연하게 글로만 봐왔던 청년마을 사업에 대해서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이후 진행되는 소개시간에서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이곳에 왜 오게 되었고, 현재 감정에 대해서 감정카드를 선정하여 살펴보며 서로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 자신의 소개를 하거나 다른 어른들의 자기소개를 들어볼 기회가 많지만, 막상 우리 아이들이 타인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들어보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학교 생활에서 어떻게 발표를 하고, 타인에게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이들과 어른들의 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완주에서의 첫날밤이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목조주택으로 청년목수들이 만든 다음 스테이는 1층과 2층 다락 구조로 되어 있는데, 목조주택으로 친환경적으로 외관이 정갈했지만, 기존 콘크리트 아파트 생활에 익숙했던 저에게는 몇 가지 불편한 점도 있었다. 그렇지만 앞으로 미래에 환경을 생각한다면, 궁극적으로 모든 건축물들은 목조 건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건축 환경 문화에서 앞서 나가는 스웨덴에서는 새로운 산업단지를 주변 숲에서 나오는 삼림자원을 활용해 전부 목조건축물로만 건설을 해나간다고 하니, 앞으로 지역에서 목조 주택을 늘리고, 이를 직접 만들고 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일이 더 많이 필요해 보인다.
완주에서의 둘째 날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평소에 듣지 못하던 닭소리, 개 짖는 소리가 아침잠을 깨운다. 아침 일과의 시작은 전날 추천해 주신 '자전거 라이딩'으로 시작한다. '다음 스테이'에서는 투숙객들을 위하여 자전거를 구비하고 있는데, 완주에서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로 자전거 타기를 추천해 주셨기 때문이다. 완주를 떠나온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 와서도 가장 좋았던 경험은 역시 자전거를 타며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던 순간이다. 물론 준비해 주신 프로그램을 통해서 징역살이에 대해 많은 점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어른용 자전거 4개가 준비되어 있어, 아이들은 뒷자리에 태우고 자전거 2대를 이용해서 길을 나섰다. 얼마 만에 타는 자전거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 독일에서 머물렀을 때의 주로 교통수단이 자전거로 모든 이동을 자전거로 했던 시절이 마지막 순간 같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서자 곧바로 논뷰가 눈앞에 펼쳐진다. 논에는 신기하게도 백로로 추정되는 두루미과 새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도시에 비둘기가 있다면, 완주에는 두루미가 있다. 친환경농법으로 생산되는 논이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맛있는 아침식사는 숙소에서 해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카페인을 보충하기 위해서 고산면 중심지로 자전거를 타고 향했다. 마침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면중심지는 물건을 팔러 나온 상인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도 아침 일찍 문을 여는 곳은 저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다. 지역에서 동네에 카페가 주민들을 불러 모으고,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프랜차이즈 커피숍, 독립 커피숍 모두 필요하다. 아이스커피를 주문하고, 옆 트럭에서 판매하는 뻥튀기도 한 봉지 사서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고 분주하게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은 만경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개성 있는 산새가 있는 안수산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특히 오성교를 지나 숙소로 향하는 길은 논을 사이에 두고 내리막길로 이어지는데, 아침 바람이 그 무엇보다 시원할 수가 없다. 마흔 살 인생에서 이토록 편안하게 아름다운 풍경에서 자전거를 탔던 경험을 없었던 것 같다. 자전거 타는 법을 알고 있는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제 이번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둘째 날 일정이 시작된다. 일정은 크게 완주 다음타운에서 그동안 한일과 이곳에 정착한 완주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완주사람책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전 시간에는 '시골살이의 일&삶 디자인'을 주제로 임경수 박사님의 강의가 있었다. 귀촌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을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농촌의 소득이 지출에 비해서 증가하지 않았다.
한 가구가 소화할 수 있는 농사규모를 생각하면 전업농보다 겸업농의 수입이 높다.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정의: 지역이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에 존재하는 자원을 활용하여, 비즈니스 형태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업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시작: 수요의 발견 -> 지역과의 공감 -> 사업화
완주군의 주요 특산물: 곶감, 양파, 마늘, 딸기, 한우, 쌀, 봉동산업단지, 모악산, 대둔산, 만경강
완주군 고산면 삼우초등학교: 폐교를 혁신학교로 리모델링하여 도시에서 이사 오고 싶은 학교로 탈바꿈
고산 군 교육 공동체: 삼우초등학교, 혁신학교 지구, 공립형 대안학교 고산고등학교와 여러 교육 공동체
미래세대 전망: 노동, 활동, 소명의 공통분모가 개인으로, 개인은 큰 공동체 안에서 활동
반농반: 귀농초기에는 도시에서 하던 일을 하고,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과 농업, 상업농, 로컬푸드, 자급자족 활동의 이상적인 비율로 경제활동을 추구
로컬리티: 삶의 터로서의 로컬과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역사적 경험을 통해 만들어가는 다양한 관계성의 총체
강의를 통해 귀촌보다 귀로컬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었다는 점과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정의가 로컬 비즈니스와 공통분모가 많다는 점, 완주의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교육인프라와 부족한 점을 메꿔주는 교육공동체가 완주의 인구가 늘어나는 비밀이라는 점을 배웠다.
어른들이 시골살이의 적정한 일과 삶의 비율에 대한 강의를 들을 동안 아이들은 요가수업과 양말목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은 의무적으로 만들던 양말목에 빠져들어 1인당 만들 수 있는 개수 3개를 넘어서 무한대로 양말목 코스터 만들기에 몰두해 있었다.
서울에 있었다면 너무 많은 즐길거리와 유혹거리에 빠져서 이렇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없었을 텐데, 환경이 바뀌니 창작 활동에 몰두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모든 인간의 본능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메이커에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후 일정으로는 본격적으로 완주 고산면 미소시장 일대를 둘러보고 정착한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둘러보는 시간이었다. 방문한 날이 마침 고산 이야기 장이 열리는 날이어서 고산면 일대가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빌언덕중개사무소에서는 제이가 어떻게 완주 고산면에 정착하게 되었고,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지, 여가시간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제이를 비롯한 많은 이주인들이 고산면에 있는 아파트에 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귀로컬하는 1인가구라면 혼자 농가주택에 처음부터 주거하기보다는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지역을 충분히 탐색한 후에 자기에게 적합한 주거지역을 선택하는 방법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농촌지역의 대단지 아파트가 아닌 적당한 규모의 아파트 단지는 매력적인 주거공간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제이가 생각하는 지역살이 장단점은 느슨한 연대, 속도, 로컬푸드, 돈, 로켓배송이었다.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이 있으니 퇴근할 때 로켓배송을 시키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징역살이의 장점이다.
이어서 미소시장에서 열리는 이야기장을 둘러보았다. 여러 협동조합에서 각자 부스에서 그동안 만든 물건을 가져다가 파는데, 그중에서 중학생들이 여름방학 제주도 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직접 음료를 판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고산이야기장이 열리는 중심부에는 기존의 점포도 있었는데, 베이커리 구운, 로컬 우유로 만든 '이모요구르트', 독립서점 '감나무책방', 음악문화공간, 자전거샵 등이 있었습니다. 모종린 교수님은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4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카페, 베이커리, 독립서점, 스테이가 그것이다. 스테이를 제외하고 3가지 요소를 갖춘 지역이 고산면이다. 특히 지금 사는 서울의 동네에서는 여름의 하이라이트인 빙수를 파는 집이 없는데 고산면에서는 카페마다 빙수를 판매하는 모습에 에 당장 이곳으로 이사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야기장 중심부에는 동네 밴드가 한창 공연 중이었다. 최근에 꽂힌 10cm의 '그러데이션'을 시작곡으로 선곡해서 놀랐고, 잔나비 등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선곡한 점이 좋았다. 물론 밴드의 실력이 출중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취미를 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실현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퇴근시간이 많이 들지 않고, 함께 육아를 도모할 공동체가 있기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도 평소에 하고 싶었던 밴드활동도 이어갈 수 있겠다.
고산면을 대표하는 독립서점은 '림보책방'이다. 올해 6월 느림보식탁과 함께 몸의 양식인 음식과 마음의 양식인 책을 파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2층에 자리한 독립서점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공간이 넓어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다. 간단한 다과와 음료도 팔아 고산면을 방문하는 관광객들과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흥미로웠던 점은 공동 저자로 참여한 <로컬브랜드리뷰 2023>이 서점에 비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져다 놓으신 이유를 물어보니 이곳 주민들이 로컬 브랜드, 로컬 창업에 관심이 많아 로컬 비즈니스분야의 책 수요가 있다고 한다. 완주에서 새롭게 탄생할 로컬 브랜드에게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독립서점이 중요한 이유는 그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을 리서치하고, 책을 만들고 동네지도를 만든다는 점이다. 림보책방에 방문했을 때에는 지도가 품절되어 이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미소시장 탐방을 마치고, 방문한 청소년 공간 '고래'에서 완주 고산면의 지도를 찾았다. 고산의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고래탐사 마을지도'로, 자료조사-정보탐색-현장조사-지도제작-지도배포의 과정으로 지도를 제작했다. 제작한 지도에는 청소년 친화 공간,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버스 정보, 맛집, 산책로, 불편한 점, 개선해야 할 점을 모두 담았다. 지역에 애정을 갖고 자란 청소년들은 성장해서도 타 지역에서 생활하다가도 커서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뿌리를 이어나가지 않을까?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커가는 두 자녀를 키우면서 항상 아쉬운 점은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 너무 부족한 점이다. 한국의 놀이터의 이용연령은 보통 13세 초등학생까지이다. 중학생 이상의 청소년들은 갈 곳이어서 편의점, 문구점, 카페 등을 전전해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는데, 고래는 이러한 청소년들의 고충을 해결해 주는 공간이다. 공간 안에 탁구대, 게임시설, 보드게임, 창작공간, 스터디공간이 있어 아이들이 방과 후에 간식도 먹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고래라면, 초등학생들을 위한 공간도 있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날씨가 궂거나 더운 날에는 놀이터에서 놀기가 어려운데, 그러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마롱'이다. 마롱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데 회비는 매월 3만 원으로, 회비대신 간식들의 현물로 이용료를 지급할 수 있다. 초등학생 딸들을 고산에서 키우면서 마롱의 운영을 맡고 계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는데 수익을 내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고충도 들을 수 있었다.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둘러봤다면 마지막으로 어른들을 위한 공간도 있다.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을 둘러보았다. 4명이 함께 매입한 공간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은 최대한 보존하고, 화장실만 깔끔하게 수리했다. 공간에서 여가시간을 보내고, 본인의 사무실로 사용하고, 지역을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스테이로 제공하는 용도로 운영되고 있었다. 농촌 지역에 아름다운 건축자원이 남아있지 않은 점이 항상 아쉬운데, 완주에서도 아름다운 건축물의 진가를 알아보시는 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완주 고산면의 공간들과 사람책을 들으면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둘째 날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완주살이에 구체적으로 배울 수 몇 가지 배운 점을 정리해 봤다.
무작정 주택을 매입해서 귀촌하기보다는 아파트 등 거래가 용이한 곳에 거주하면서 내가 살 곳을 탐색하는 방법이 유리하다.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지역에서의 삶은 느슨한, 조금 깊이 있는 연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적합할 수 있다.
전주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완주행을 택한 귀로컬인들이 많다.
가족과 함께 귀촌한 경우 아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이 잘 맞는 것이 중요하다.
완주에서의 마지막 날
아쉽지만 벌써 마지막날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 2개의 자전거를 가지고 길을 나섰다면 오늘은 4명이 각자 한대의 자전거를 가지고 출발했다.
어제의 루트보다 조금 더 멀리까지 가보기로 했다. 만경강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가다가 큰 다리를 건너서 숙소로 돌아오는 30분 정도의 루트이다. 어제 가보지 못했던 길로 가니 논뷰와 산이 어우러져 근사한 풍경을 자아낸다. 다리에서 보는 만경강의 풍경은 잊고 있었던 한국 지역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을 되찾기에 충분했다. 제주에 살면서 무수히 마주쳤던 제주의 아름다움과 또 다른 육지만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면 완주에서의 삶이 꽤 괜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로가 많지도 않지만, 그나마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로들은 많은 바이커들과 사람들도 북적여 이처럼 여유 있게 풍광을 즐기며 라이딩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풍광이 아름답고, 자전거도로가 이미 구축되어 있는 완주야말로 자전거의 도시를 목표로 삼는 것은 어떨까? 기존의 자전거거 동아리를 활성화하고, 미소시장의 자전거샵에서 직접 자전거를 수리하고, 자신만의 자전거를 만들어보는 메이커 스페이스까지 생긴다면, 완주가 자전거의 도시가 되는 길이 멀지 않을 것이다.
완주의 자연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던 아침 라이딩을 마치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일정은 가족이 함께 피클과 김밥을 만드는 쿠킹 클래스였다. 공유 주방을 맡고 있는 선생님들이 요리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면, 아이들이 직접 부모님들과 함께 시현해 보는 과정이었다.
집에서 생활할 때는 시간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다해서 갖다 주는 일상의 반복이었는데, 아이들이 막상 도마와 칼이 주어지니 생각보다 칼질을 썩 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이 요리 똥손인 줄 알았는데, 김밥을 말고 김밥을 썰어서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는 모습을 보니 요리 자신감이 쑥쑥 올라간다.
완주에서의 2박 3일을 마치고 나서
이렇듯 지역에서의 삶은 사람을 좀 더 인간답게, 나답게 살 수 있도록 한다. 나다움이 부족해서 도시에서의 다른 사람이 설계해 놓은 삶을 따라가는데 지쳤다면, 내가 좋아하는 지역에서 , 여유롭게 시간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일의 교집합에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
제주에서 삶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와 살면서 도시의 패턴의 익숙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완주에서의 2박 3일은 지역에서의 삶의 이점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일본에서는 가짜시골프로그램이 인기라고 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있었던 시골을 그대로 재현해 시골지역에 방문하면, 지역의 할머니가 친할머니처럼 연기하고 방문객들을 환대하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한번 방문한 사람들은 그 지역의 할머니와 매력에 푹 빠져서 계속 그 지역을 찾고, 시간이 지나서 할머니가 고령으로 세상을 등지신 후에도 친 손자처럼 할머니의 빈자리를 슬퍼하고 그리워한다고 한다.
이처럼 도시에서 태어나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역살이 체험은 특별한 가치를 제공한다. 최근 많은 청년들이 유입되어 인기가 많은 양양, 제주뿐만 아니라도 고유한 매력을 지닌 완주에 푹 빠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완주 청년마을 협동조합 다음타운을 통해 타 지역의 청년들 이완주의 매력을 느껴 이주하고, 이들이 완주 로컬 브랜드를 만들어, 슬로 라이프,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타운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초록의 매력이 가득했던 완주를 경험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니, 다른 계절의 완주가 가진 매력이 궁금해졌다. 징역살이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아이들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면 완주에 가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