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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인 Oct 22. 2023

마흔 살의 자전거

지역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법

"아, 너무 좋다"

"너무 시원해"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뻥 뚫린 들판을 자전거로 내려왔던 순간일 것이다. 2박 3일 일정으로 간 완주에서 아침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시간을 활용한 자전거 타기가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을 일깨워줬다.


살면서 꼭 배워야 할 것으로 자전거 타기를 꼽고 싶다.


자전거는 사실 취미이기보다는 이동수단이고 생존수단일 수 있다. 독일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시절에는 자동차 운전면허증도 없고, 차도 없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제외한 유일한 이동수단은 자전거였다.


버스나 전철이 자주 있지 않는 독일의 특성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일은 아주 중요했고, 내가 살고 있는 주택단지에서 동네 중심지로 이동하기 위해서 자전거만큼 중요한 교통수단은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걸어 다니면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동네 이곳저곳을 누볐다.


원도심, 올드타운이 발달되어 있는 유럽의 특성상 중심지에서 이동하기 위한 가장 편리한 수단은 자전거 일 수 있다.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러 독일에 온 다른 외국인친구들 역시 자전거를 한 대씩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우리는 함께 자전거를 타며 동네 이곳저곳을 누볐다.


물론 자전거의 가장 큰 단점으로는 안정성에 있다. 자전거 타는 실력이 아주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뒤에서 오는 차를 피하려다가 핸들이 돌아가서 배 쪽을 깊게 찌르고 넘어졌던 기억이 있다. 너무 아파서 잠시 피해있다가, 집에 돌아오기는 했는데 그때의 통증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그 외에는 큰 사건 사고 없이 안전하게 라이딩을 했으니, 결코 자동차나 다른 이동수단에 비해 위험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독일에서 6개월간 지내면서 항상 자전거와 함께였지만,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자전거를 타본 적은 별로 없다. 아이들을 위해서 자전거를 가르쳐주기 위해 잠깐씩 아파트 단지 안에서 탔던 것이 전부이다. 그랬던 내가 마흔 살이 되면서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는데, 자전거를 시작한 장소는 서울이 아니라 완주, 춘천 그리고 순천이다.


올 가을 춘천 여행을 계획하면서 자전거 타기를 필수코스로 넣었다. 완주에서의 자전거 탔던 긍정적인 경험이 춘천 자전거 타기를 계획하게 했다. 춘천 1박 2일 머무르기로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추천받은 자전거 대여점에 차를 주차한 후 네 식구 모두 각자 자전거를 대여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춘천의 호수를 따라서 라이딩을 하고 전망이 좋은 카페를 목적지로 제안했다. 


호수의 도시 춘천은 호수를 따라서 자전거길이 굉장히 잘 조성되어 있다. 개천변을 따라서 라이딩을 하다 보면 호수가 자전거를 맞이한다. 호수길을 따라 만들어진 데크길은 자전거를 위한 길로 춘천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자전거 타기가 아닐까 싶다.


빌린 자전거로 복장도 전문 라이딩 복장이 아닌 청바지에 운동화가 전문 자전거 라이딩 족에 비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하는 방법으로 자전거를 타는 거지 레저나 체력단련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 또한 괜찮다.


영랑호를 따라서 카페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자전거를 타다 보니 주변의 풍경을 즐기기보다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해야겠다는 생각에 풍경을 넘기고 자전거 페달에 집중했다. 막상 멋진 풍경이 있는 카페에 힘들게 도착했더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에 배가 고파서 우선 먹거리를 찾으러 자전거 페달을 더 밟았다. 춘천의 특산품인 곰취로 만든 핫도그집으로 목적지를 수정한 후 30여 분을 더 달려 도착했더니 그곳은 핫도그 핫플로 밭뷰를 보며 곰취핫도그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라이딩 후 굶주린 상태에서 먹은 핫도그는 그냥 맛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카페에서 핫도그 집으로 목적지를 변경하니, 자전거 라이딩을 처음 계획했던 것과 달리 거리와 시간이 늘어났다. 그래도 춘천의 호수를 오감으로 자전거 페달을 누르는 허벅지 근육으로 느낀 것 같아 그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볍게 시작한 춘천 라이딩이 총 4시간 반으로, 5km 넘었더니 여행을 하러 온 건지 체력단련을 하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번 주말에는 순천에 다녀왔다. 순천 여행을 계획하면서 많은 계획을 세우거나 리서치를 하지 않아 막연히 순천만습지에 가기로 했다. 순천만 습지에는 많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습지만의 풍경,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마음이 즐거웠다. 


근데 순천만습지를 이용하면 현재 순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무료라고 하니 습지 관광을 맞히고 국제정원박람회 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자가용이 없던 우리는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가 우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에는 우리를 반기는 반가운 물건들이 있었으니, 바로 순천시에서 제공하는 자전거 렌털 서비스였다. 주황색의 예쁘지는 않지만 투박해 보이고 튼튼해 보이는 자전거는 단돈 1천 원이면 3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었다. 갖고 있는 핸드폰 결제로 난생처음 키오스크를 이용해서 자전거를 대여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춘천에서 즐거웠던 라이딩 경험이 순천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른용 자전거라서 4학년 둘째 아이가 타기에는 까치발을 하면 겨우 땅에 닿을 정도라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못 탈정도의 크기는 아니었다. 두 딸들과 함께 자유롭게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다니 아이를 이만큼 키운 내가 대견스러운 순간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순천만습지에서 정원박람회장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도 순천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다 보니 순천만습지에서는 모노레일을 타고 정원박람회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사전 리서치가 부족하다 보니 전혀 이러한 방법을 몰랐던 우리에게는 자전거가 최고의 이동수단이었다.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리는 시간이다 보니 부담감도 적었다.


자전거길의 즐거움은 순천만습지에서보다 더 아름다운 갈대풍경이다. 사실 이 지역에서 갈대가 자생되다 보니 자전거길을 따라서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높이의 갈대가 자라고 있었고, 오히려 자연과 천변과 어울리는 풍경이 더 아름답고 자연스러웠다.


두 딸과 함께 셋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잘 쫓아오고 있나, 어디 넘어지지는 않았난 챙겨주는 모습에서 우리의 관계는 돈독해지고, 이 순간 함께한다는 사실이 더욱 소중해지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기로 한 우리의 선택에 서로에게 고마움을 더했다.


이번 순천여행은 입이 쩍 벌어지는 남도의 음식 솜씨도, 자연 그대로 보존했을 때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순천만 습지도, 엄청난 스케일과 창의성이 돋보였던 정원박람회도 아닌 우연히 빌린 자전거 라이딩이 가장 기억하고 싶은 한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지역에 가본다면 자전거 라이딩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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