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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인 Oct 20. 2023

마흔 살의 운동

오십 대를 위한 준비

“요새 무슨 운동해?”


친구를 만나면 끝날 무렵 항상 나오는 질문이다. 그만큼 마흔 살의 운동은 필수불가결이다.


그동안 무수한 운동을 해왔다. 딱히 잘하는 운동이 있었거나 운동신경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운동을 몇 개월 이상 놓은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한 운동을 되돌아보면 발레, 요가, 한국무용, 수영, 검도, 생활체육이 있었다. 그중에 성인이 된 지금까지 도움이 된 운동을 생각해 보면 발레와 요가이다. 발레에서는 몸 전체의 근육에 해당하는 코어에 힘을 주고, 잔 근육을 기르고 유연성을 좋게 한다. 여자 아이들은 누구나 튜튜를 입는 예쁜 모습을 꿈꾸며 발레를 시작하는데, 나 또한 튜튜를 입지는 못했어도 핑크빛 살구색 발레 슈즈에 설레었던 추억이 있다.


○○이는 지구력이 좋아”


발레학원 선생님께 자주 들었던 칭찬이다. 그때는 지구력의 단어의 뜻을 몰라 선생님이 무엇을 잘한다고 칭찬하시는 줄 몰랐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았던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지구,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지구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그게 발레랑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이지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부족한 상식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니 '지구력'은 '오랫동안 버티며 견디는 힘'이라고 나와있다.


'이럴 수가'. 발레 선생님은 나의 운동실력을 정확히 꿰뚫어 보셨다. 딱히 잘하는 운동은 없지만 마흔이라는 시간을 사는 동안 오랜 시간 견디며 운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보다 성인이 되어 시작한 운동은 좀 더 다양하고 배운 기간 또한 길다. 대학생 시절에도 요가, 매트 필라테스, 에어로빅, K-pop 댄스까지 도전했으니 말이다. 에어로빅과 관련된 추억은 어린 시절 서랍 속에 있다. 90년대 여느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엄마도 에어로빅을 배우셨는데, 그런 엄마의 옷장 안에는 이상하고 괴상하지만 재미있는 에어로빅복들이 많았다. 엄마의 온갖 에어로빅 의상을 꺼내놓고, 이 옷 저 옷 입어보며 나만의 패션쇼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추억의 에어로빅을 한창 꽃다운 나이인 대학생 때 시작한 이유를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가격이 저렴해서…’가 컸다.


고등학교 단짝 친구의 아파트 부녀회에서 지하 공간을 이용해서 에어로빅 교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 달에 몇 만 원밖에 안 하는 수업료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에어로빅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막을 찢어버릴 것 같은 커다란 음악보다 나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것을 처음 느끼기도 했다. 그 이후에 좀 더 우리의 춤 실력을 기르기 위해 강남역에 위치한 댄스학원에 등록해 그 시절 유행하던 k-pop 댄스를 배우기도 했지만, 나의 취향은 전문댄스보다 에어로빅에 가까웠다.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제3의 운동시대가 왔다. 그때 처음으로 시작한 운동은 벨리댄스이다. 벨리댄스도 이제는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찰랑찰랑 소리를 내는 허리장신구를 달고 움직이는 몸동작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래도 오랜 기간 배우기에는 나의 정서와 약간의 핀트가 맞이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운동은 태보이다. “태권도와 복싱을 결합해 만든 태보” 육아에 찌들어있던 초보 엄마인 나에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태보를 하는 시간은 탈출구였다. 주먹을 날리고, 발차기로 하이킥을 하면서 거울 속의 나를 노려보며 세상 센 척을 하기도 했다. 태보가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집에 같이 사는 이를 향해서 괜히 주먹을 날리고 발차기를 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스트레스 해소에는 최고의 운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다시 시작한 운동은 에어로빅이었다. 신나는 음악과 몸을 계속 움직이는 유산소 운동이 역시 나와 잘 맞아라는 스스로의 성찰의 결과였다. 에어로빅이 가장 힘든 날은 바로 등록해서 처음 가는 수업 첫날이다. 에어로빅이라는 편입견을 갖게 만드는 특성상, 에어로빅에 다니는 사람들의 텃세, 캐릭터에 주눅 든다. 그러나 에어로빅 교실의 문을 열고 일단 들어가면 신나는 음악에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인다. 눈치 보던 마음보다 몸에 먼저 발동이 걸린다. 외국 생활에서 돌아와 새로운 동네에 적응해야만 했던 나는 에어로빅을 통해서 새로운 동네 친구를 사귀었다. 운동의 특성상 부끄러움을 마다하고 서로의 몸의 움직임을 보여줘야 하는 에어로빅은 함께하면 금방 친해진다. 마침 근처에 살면서 같은 또래의 딸들을 키우는 언니들과 같이 몸을 움직이고, 식사를 하고, 고민을 나누며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


에어로빅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였다. 제주로 이사가게 되면서 정든 동네도 떠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언니들과도 이별을 해야 했다. 제주에서 정착하기 시작하면서도 끊임없이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제주에 이사를 하면 꼭 배워보고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서 먼저 승마에 도전했다. 드넓은 초원에서 말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 없다. 한국에서 가장 말을 많이 기르는 제주에서 승마만큼은 꼭 배우겠다고 생각했다.


제주도에서는 시민들이 승마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10회 강의에 굉장히 저렴한 금액으로 승마를 배울 수 있는 과정에 지원했고, 운 좋게 선착순 접수에 성공해서 승마를 배우게 되었다.


제주의 대학교에서 운영하던 승마장에서 같은 시간대에 몇몇 수강생들과 함께 승마를 배우게 되었다. 막상 승마수업은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드 넓은 초원을 여유롭게 달릴 것 같은’ 상상과는 달리 좁은 강의실에서 이론 교육부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승마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말에게 고삐를 채우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승마체험을 할 때는 말의 고삐부터 안장까지 다 채워진 채로 말을 타게 되는데, 이곳의 과정은 말에게 직접 고삐를 채우는 일부터 시켰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가까이서 보게 되는 말은 크기가 거대하고 근육도 많고 얼굴 부분 특히 이빨이 크다. 말에게 고삐를 채우기 위해서는 오른팔로 말의 머리를 감싼 후에 왼팔로 말의 윗니와 아랫니 사이를 벌려서 제갈을 물리게 해야 한다. 그런 제갈은 말의 입에서 승마를 타는 기승자가 쥔 고삐로 연결되어 말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지시하게 된다.


말은 고삐를 당기게 되면 입이 아파서 멈추게 되는데, 빠르게 달리게 할 때는 고삐를 느슨하게 풀어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천천히 걷는 말이 빠른 속도로 걷거나 뛰게 할 때에는 발로 말의 윗 허벅지 부분을 지긋하게 누르거나 발로 살살 걷어차기도 하고, 그렇게 해도 말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채찍을 들어 말을 때려가며 지시해야 했다.


‘후두두두둑’ 


말이 크게 숨을 내뱉을 때 내는 소리다. 승마는 사실 운동이기보다 말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여 움직이는 정신수련에 가까웠다. 말은 승용수단으로 오랜 시간 사람에게 길들여져 왔지만, 동물의 습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지능은 5살 수준으로, 반려견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액셀을 밟으면 빠르게 나아가고, 핸들을 돌리면 좌측이나 우측으로 움직일 것을 예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승마장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태운 말들은 생각보다 움직이기 싫을 수도 있고, 집중해서 앞에 가기보다는 다른 말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경로를 이탈해서 갑자기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승마수업에서는 원형으로 이루어진 실내공간에서 줄을 지어서 말을 타게 되는데, 그럴 때도 말들이 집중을 하지 않고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가거나 갑자기 속도를 높이거나 줄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말위에 올라탄 교육생 입장에서 말이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했을 때의 공포감을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급제동하는 자동차를 타는 입장처럼 초보승마인을 얕보는 말의 행동에 승마수업은 기대보다는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채워졌다.


그래도 승마수업을 통해 얻은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승마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가 함께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든든한 친구들이었다. 승마수업을 신청한 교육생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모두 제주사람들이 아니라 서울에서 온 이주민들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에서도 비슷한 지역에서 왔다는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과 승마수업이 끝날 때마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다가 보니 급속도로 친해졌다. 더군다나 모두 한동네에 살고 있어서 공통점이 많은 친구들과 가족처럼 가까이 지냈다. 이제 와서 보니 승마를 통해 사귄 친구들이 제주생활의 가장 든든한 친구들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승마가 아니라 다른 취미생활을 했다면 이토록 친해질 수 없었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지만 심하게 낙마를 한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위험한 취미생활을 한 친구들과는 가슴속 깊이 공유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새로운 지역에서 친구를 사귀는 방법으로 몸을 쓰는 운동을 추천한다. 서로의 극한 면을 봤을 때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에서 시도했던 승마라는 취미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다시 서울로 이주한 올해 마흔 살에는 인생 처음으로 새로운 운동에 도전했다. 바로 요새 누구나 다 하는 '기구 필라테스'이다. '기구 필라테스'가 그렇게 좋은 운동이라던데 나도 한번 시작해 본 것이다. 사실 필라테스 학원에서 일대일로 진행하는 수업은 효과는 좋았겠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수강료가 단점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집 앞 청소년 수련관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그룹 기구 필라테스 수업을 진행한다기에 등록을 한 것이다.


지난 5월에 시작했으니 벌써 6개월째 기구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있는 셈이다. 함께 시작한 같은 시간대의 수강생들은 한 명 빼고 다 이탈했다. 그사이 여러 사람들이 들고 났다. 최후의 2인이 되어 필라테스 수업을 받는 나 자신을 보니 역시 "지구력이 좋아"라고 했던 발레학원 선생님의 말이 옳았구나 싶다.


이런 지구력으로 지금까지 해온 운동으로 건강한 50대를 맞이하는 것이 지금의 작은 소망이고, 운동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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