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울림

by 김수권

'소리와 울림'이라는 말이 있다. 소리는 음파가 전해지는 것을 의미하고, 울림은 그 소리가 더 크고 맑게 되울리는 것을 뜻한다. 소리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음파가 귀청을 울리어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귀가 없는 식물도 소리에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 꼭 귀에 들리는 것만이 소리라고 규정하는 것은 다분히 인간 중심의 편협한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소리와 울림'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음악은 다양한 요소와 형식으로 이루어지지만, 본질은 곧 소리와 울림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음향(音響)이다. 그리고 이 말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소리와 울림이라는 현상은 인간사회의 소통과 교감을 비유하기에 매우 적합하다는 것이다.


물체의 진동으로 시작된 최초의 음파(音波)는 소멸(消滅) 되거나 증폭(增幅) 될 수도 있으며, 잔향(殘響)을 남기기도 하고 반향(反響)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소리'라는 말에는 여론이나 주장의 의미가 담겨 있고, 그러한 것이 미치는 영향을 파동(波動)이라 부르기도 한다. '울림'이라는 말은 소리를 더 크고 분명하게 되울리는 현상이므로, 어떤 의견이라도 귀 기울이겠다는 공명(公明)한 의지의 표현이거나 혹은 특정한 주장과 견해에 동조하여 전파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담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리와 울림이라는 말이 비단 정치적, 사회적으로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위대한 작곡가가 소리와 울림으로 삼라만상과 그 심오함을 담아내듯이, 악기를 만드는 사람이 악기의 소리와 울림을 위해 심혈을 쏟듯이, 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자신의 연주 소리와 울림에 혼신을 불어넣듯이, 그 연주를 듣는 사람이 소리와 울림에 깊이 감응(感應)하고 공명(共鳴)하듯이,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성심을 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악은 대체로 최고, 최상, 최선, 최적의 음향 상태를 지향한다. 그래서 악기의 재질이나 제조기술은 물론 곡의 해석과 연주자의 기법, 기교와 콘서트홀에서 최적의 잔향을 얻기 위한 건축기술까지 좋은 소리와 울림을 얻기 위한 노력은 부단히 지속된다. 그러나 좋은 음향을 위해 필요한 요소와 노력이 이렇듯 외적인 것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실상은 아무리 수준 높은 음향을 선보인다고 하더라도 듣는 이의 내면에서 수용 또는 작용하지 못하면 그저 허향(虛響)에 그칠 것이다.


사람에게는 몸이라는 울림통이 있으니 저마다 체향(體響)이 다르고, 여기에 가슴이라는 울림통까지 있으니 심향(心響) 또한 다르다. 결국 소리와 울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 사람의 몫이니,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깊은 심향을 가진 사람이 되고자 소망한다. 그래서 근사하고 화려한 연주뿐 아니라, 어린아이의 서툰 연주 소리나 길거리 악사의 투박한 연주 소리, 미훈의 벗이 불어주는 피리 소리, 빗소리, 바람 소리, 파도 소리, 벌레 우는 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에도 가슴속에서 울림을 갖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심향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 늘 함께하고 싶다. 길을 걷다가 문득, 나무 위에서 어미 새를 기다리며 지저귀는 아기 새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귀 기울이며 미소 짓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무치는 그리움이 고요 속에서 환향(幻響)으로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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