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유일히 나에게 편지를 써주지 않은 사람

by 빌림

너는 유일히 나에게 편지를 써주지 않은 사람


운의 시기를 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오래 써왔던 물건을 처분하고 싶어지고, 주변 인간관계도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진다.

온몸으로 대운을 맞이한다.


4년 전, 첫 자취방에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구했던 가구들을 최근에 모두 처분했다.

그래도 여전히 좁은 방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자, 그럼 이제 무엇을 버려야 할까.’


책과 다른 물건들을 정리하던 중 받았던 편지들이 무수히 쏟아졌다.

타지에서 가족과 같이 의지하던 친구들의 글씨로 이전의 기억도 악보를 본 것처럼 흐른다.

그렇게 편지를 묶어 정리하려던 찰나. 4년간 맺은 인연 중 유일히 내게 편지를 써주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이 떠올랐다. 불행 중 다행일까? 그 편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휘발된 걸지도 모른다.


‘내가 귀신을 만났나.’


함께 하던 순간, 즐거웠던 기억들이 하나도 남지 않은 채로 인연이 정리될 수 있나?

울고 힘겨워하던 순간들마저 이제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좀 힘들긴 했었는데. 흠. 이젠 상관없지.’


이전에 이상형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게 편지를 써주는 사람.

그렇게 기억을 내게 오래 남겨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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