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세우기를 통한 결정장애 탐구
2014년 천기누설 출연 장면
갈등 상황의 시작
작년 가을, MBN 천기누설 촬영 의뢰가 들어와서 긴급하게 야외부엌을 지었다. 10년 전인 2014년 출연 당시 마당 한쪽에 가마솥만 덩그러니 걸어 놓고 촬영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으므로, 이번에는 처마라도 있는 야외부엌을 지어 촬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유튜브 촬영장으로까지 사용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 허둥지둥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씌워 촬영을 마쳤다.
방송 촬영이 끝나고 긴 겨울이 시작되어 나머지 건축은 봄에 진행하기로 했다. 그 사이 이 건물을 좀 더 확장해서 다용도로 써도 좋겠다는 발견이 이어졌다. 길이를 2미터 정도 늘리고, 폭도 1미터 더 늘리면 직원들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도 될 수 있고, 가족세우기 통찰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듯했다. 고객들 찾아오시면 앉아서 차라도 마실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 공간은 고객들과 함께할 수 있는 뷰 맛집도 될 것 같아서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한 거냐?!'며, 의식의 확장을 나름 기뻐하고 환희했다. 남편이 만들어준 화덕을 부수고 다시 지어야하는 것은 아깝지만 남편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노프라블럼을 외쳤다.
공간 활용도가 야외 부엌에서, 유튜브 촬영장, 가족세우기 장, 고객과 함께하는 쉼터, 직원들의 휴식공간 등으로 확장되어질수록, 내 마음속은 복닥복닥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건물을 확장하려니 허가 문제부터, 공사의 기술적인 면까지 여러 가지 걸림돌이 드러났다. 화장실이 반드시 추가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아예 다 헐고 새로 지으라는 사람도 나타났다. 기왕 지을 것 투자를 더 해서 멋진 카페처럼 만들라는 건축업자도 있었다. 이런저런 견해를 추가하려니 애초에 지으려던 그림이 자꾸 지워지고, 추가되며 혼란이 가중되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 우리가 처음 터를 잡을 때부터 도움을 주셨던 풍수를 보는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이미 땅을 과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1미리도 더 확장하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뭔가가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언니 말대로 하기엔 아쉽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말이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이웃에 사시는 보살님에게도 찾아가 여쭤보았다. 보살님은 그 건물을 짓느니 차라리 당신들 살 집부터 먼저 짓고, 지금 건물은 간단하게 지어서 나중에 사무실로 활용하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해답을 찾고자 했지만,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혼란만 더 늘어나는 형상이었다.
"나는 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 사람 말, 저 사람 말에 흔들리며 갈등하고 있을까?"
봄이 와서 꽃들이 만개한 4월인데, 나는 여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짓다만 건물 앞에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 이슈를 가족세우기로 세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오후, 가까이 사는 도반을 초대해 둘이서 가족세우기를 했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해결해준 가족세우기였는데 이 이슈는 여태껏 세워보지 않았다. 아마도 마음이나 감정을 다루기에 바빠 집을 짓는 일도 내 마음과 관련된 어떤 이슈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세상 모든 일이 마음과 관련되어 있음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야외 부엌 용도로 건축을 시작했지만,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싶어서 조금 확장해서 짓고 싶은데 마음이 자꾸 망설여지고 헷갈려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땅의 마음은 어떤지, 땅을 세워보고 싶습니다. "
세션 진행하기
땅의 대역은 두발을 굳걷히 딛고 서서 자신감 있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이내 발뒤꿈치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면서도 나아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발이 잘 안 떨어져요. "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던 대역이 필요한걸 요청했다.
"뭔가 나에 대한 격려와 지지가 더 필요해요. 칭찬을 듣고 싶어요."
땅의 대역은 스스로 셀프 허그를 한 채, 자신을 쓰다듬으면서도 누군가 타인의 격려와 지지 칭찬이 듣고 싶다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꼭 내 모습 같다.
내가 촉진자로서 말했다.
"경아야, 너는 지금 셀프 허그를 하고 있어. 너 스스로를 잘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는 거야.!"
"어, 그러네. 맞아요."
땅의 대역은 촉진자의 말에 동의하더니 이내 오른쪽 발을 천천히 들어 올려 앞에 놓은 뒤, 왼쪽 발도 그렇게 천천히 떼어서 앞으로 내딛기 시작했다.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오랜 시간이 걸려 그렇게 세발을 앞으로 전진한 뒤에야, 땅의 대역은 긴장이 풀리고 두려움이 가신 듯 손과 발을 툴툴 털어내며 말했다.
"아, 이제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다 할 수 있겠어요." 대역은 환한 얼굴로 웃으며 말하며 씩씩하게 여기저기를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비단 이번 건물 짓기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환갑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삶이 꼭 그랬다. 쉽게 할 일도 두 배의 힘을 써서 한발 한 발 어렵게 내디디며 애써 살아왔다. 가볍게 선택하고, 가볍게 내 디뎌도 되는데, 더 알아봐야 하고, 더 생각해야 하고, 더 올바른 길이 따로 있을 거라 믿으며, 나의 선택과 나의 길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러니 두 배 세 배로 용을 쓰며 살아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셀프 허그로 스스로를 격려하고 지지할 만큼 내 마음의 힘이 커졌다는 것이다.
갑자기 땅의 대역의 눈이 커지며
"큰 그림을 그려요! 내 앞에 큰 그림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큰 그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냥 '큰 그림'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내가 큰 그림의 대역으로 들어가 보았다. 대역이 더 없었으므로 이럴 때는 의뢰인이나 촉진자가 대역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내가 내 이슈의 대역으로 들어갔을 때 큰 깨달음이 오기도 해서 이런 세션이 좋기도 하다.
땅이 그리는 큰 그림, 땅으로 상징화된 정경아가 그리는 큰 그림은 무엇일까?
'큰 그림'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 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어린 딸의 사랑이 큰 그림 앞에서 흥분하고 있었다.
'아, 아버지.'
등줄기로 섬광 같은 에너지가 좌르륵 흘렀다. 아버지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믿었는데, 여전히 더 받아야 할 것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가족세우기에서 아버지는 일과 관련된 상징들로 나타난다. 내가 아버지에게 갖는 상, 아버지에 대한 신뢰, 아버지로부터 오는 사랑과 축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와 일과의 관계가 잘 맺어지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하고, 어그러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딸이었다. 무기력하고 무능한 아버지를 비난하며 아버지를 무시했다. 아버지로부터 엄마와 우리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고, 아버지를 대신해서 내가 우리 집안을 일구고 성공 시기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쥔 채 여전사처럼 살았다. 아버지의 자녀로 살기보다 아버지의 부모 자리에 올라서서 아버지에게 훈계하고, 가르치며 아버지를 존중하지 않는 딸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생명에 대한 감사도 몰랐고, 아버지가 주시는 사랑과 축복은 더더구나 받을 생각이 없었다. 어느 세션에서는 아버지가 주시는 축복을 거절하기까지 했다.
"안 받아요. 지금껏 안 줬는데 이제 와서 무슨 축복이에요? 그깟 축복 안 받아도 상관없어요."
지금 다시 떠올려도 그 순간은 '오마이갓!!!'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거절하며 화를 내는 딸이라니. 그 딸이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는가? 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상실이다. 그 후로 7-8년의 시간 동안 꾸준히 가족세우기를 하면서 아버지와 엄마를 만나왔고, 이제는 아버지와 엄마의 사랑과 축복 속에서 살고 있다.
나는 이제 부모님이 주신 생명에 감사하는 딸이 되었다. 부모님이 주시는 축복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부모님의 사랑이 내 가슴에 흐르기를 고대한다. 지난달 세션에서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내 가슴에 막혀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사랑이 흐를 수 있는 세션이 진행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또 아버지가 나온 것이다. 아직도 풀어야 할 어떤 맺힘이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이리라.
큰 그림인 아버지는 땅으로 상징화된 자신의 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딸이 이쁘고 사랑스러웠다. 큰 그림이 들어서자 땅이자 딸이기도 한 대역이 큰 그림 앞으로 걸어와 마주 섰다. 아버지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오는 나의 무의식이 갸륵하다. 그동안 참 애썼다.
큰 그림이 보기에 딸은 웃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얼굴이 반반으로 나뉘어 오른쪽은 환하게 빛나고 왼쪽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작게 보였다. 아직도 절반의 불안을 떠안고 사는 것이다. 딸은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살짝살짝 옆을 바라보거나 아버지 대역의 뒷공간을 공허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마음이 얼굴의 빛으로, 시선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무엇인가 더 다른 것을 찾고 있는 딸이 안타까웠다.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딸이네요."
딸의 대역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불안해요."
우리는 대역을 바꿔 내가 딸의 대역으로 서고, 딸의 대역이었던 분이 큰 그림의 대역으로 자리를 바꿔서 세션을 진행했다.
내가 딸의 대역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버지 앞에 주저앉으며 투정 부리는 4살짜리 아이가 되었다.
투정 부리듯 온몸을 좌우로 흔들며 '더 줘, 더 줘' 하고 있었다.
처음 세션 시작할 때, 인정과 지지가 더 필요하다고 했던 대역의 말은 곧 4살짜리 나의 내면아이가 아버지에게 사랑을 더 달라고 보채는 말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 대역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계속 머리를 쓰다듬다 이윽고 말문을 여셨다.
"우리 딸, 너무 이쁘고 자랑스럽다. 어떻게 이렇게 이쁠 수가 있니, 어떻게 이렇게 장하고 기특하니.
막 동네 방네 뛰어나가서 외치고 싶다. 네가 내 딸이라고, 내 딸이 이렇게 장하다고."
아버지의 인정과 칭찬이 한참 동안 이어졌지만, 사랑과 지지를 더 받아본 적이 없다고 믿는 네 살짜리 내면아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그저 가만히 머물러 있기만 했다. 아버지의 말씀이 가슴으로 와닿지가 않았다. 평생 단 한 번도 해보신 적이 없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의 말이, 이제 갑자기 와닿을 리가 없었다.
그때 불현듯, 30대 때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말씀이 떠올라 대역에게 그 말씀을 좀 해주십사 부탁했다.
"경아야, 너는 대기만성형이야. 나이가 좀 들면 넌 크게 될 거야. 이제 그때가 되었다."
그제야 가슴속에서 깊은 한숨이 토해져 나오며 아버지 어깨에 머리를 기댈 수 있었다. 4살짜리 어린 경아는 아버지의 사랑에 얼굴을 묻고 아버지의 사랑에 흠뻑 젖어들어 그 사랑을 호흡으로 받아들였다.
30대 중반 즈음이었다.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며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드라마 수업을 다니던 때, 허구헌날 술에 취해 새벽녘에 들어와 잠이 들었다 오후가 되어야 하루를 시작하는 딸이 딸이 뭐 그리 이쁘셨을까. 그런 딸을 옆에 두고 아버지는 엄마에게 말씀하시듯 내게 사랑의 말씀을 전하신 적이 있다.
"우리 경아는 대기만성형인 것 같아. 나중에 때가 되면, 진짜 큰 일을 하게 될 거야. 나는 우리 경아를 믿네. 자네는 어떤가?"
그날, 겸연쩍은 마음에 슬그머니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내방으로 들어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 말씀은 아버지가 나를 인정해주시는 유일한 말씀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한 번도 나를 칭찬해 본 적이 없다고 기억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지지해 주고 계셨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혼내고 화를 내시는 순간에도 그 사랑은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 세션에서 아버지의 그 말씀은 막힌 물꼬를 트듯, 내 안에 사랑을 가득 채워주는 감로수가 되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제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알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저를 믿어주셨듯이 이제 저를 믿으며 제 삶을 잘 살겠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나는 아버지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온전히 열린 마음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는 조용히, 내 어깨를 어루만지며 지지를 보내주셨다.
세션을 마치자, 마음속에서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이 알아차려졌다.
'혹시 잘못되면 어쩌지? 혹시 저 언니 말이 맞으면 어쩌지? ' 이런 두려움과 갈등이 씻긴 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자리 잡았다. 허용이 자리 잡았다. 다 괜찮다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크게 지어도 괜찮고, 작게 지어도 괜찮고, 허물고 다시 지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 다 허용되는 마음이 이런 것이로구나.'
가슴에 막힌 걸림돌이 쑥 빠져나간 느낌을 처음으로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세션은 우리가 아버지를 믿지 못할 때, 나 자신도 믿지 못한다는 걸 일깨워 주는 세션이었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사람은 나의 절반을 스스로 미워하며 산다. 나를 미워하므로, 나를 믿을 수가 없다. 나를 믿지 못하므로 타인의 의견을 더 존중하고, 타인의 의견을 궁금해하고, 타인의 결졍을 따랐다가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의식에서는 아버지를 믿고 의지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으로 들어가보면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사연들이야 개별적으로 모두 다르기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소한 말 한마디, 사소한 눈길 한 줄기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두려움에 떨었던 우리의 미성숙함이 만들어낸 오해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결정장애의 원인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드러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신뢰의 결여도 결정정애의 큰 원인 중 하나라는 걸 알게되었다.
오늘 세션을 통해 나는 나를 신뢰하는데 한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타인에게 의견을 묻고, 타인에게 의지해서 어떤 결정을 하려는 나의 행동패턴은 많이 바뀔 것이다. 이제는 나를 믿게 되었으므로.
그동안 여러차례 아버지 세션을 통해 아버지와 많이 화해했다고 믿었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아버지와 관련된 다양한 생각의 습관, 마음의 습관이 남아 있음도 알게되었다.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발견하고 치유해 나가리라.
세션을 통해 다시 한번 아버지의 사랑에 연결되어 기쁘다. 아버지 세션이 여러 번 진행되었지만, 최근에 들어서야 아버지와 진심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이제야 아버지를 마음으로 존중하는 딸이 되어가나보다. 아버지의 사랑이 온몸의 세포를 일깨워 세우고 따뜻한 온기가 흐르게 한다.
아버지를 향한 기도가 마음속으로 계속 흐른다.
"아버지, 내 영혼에 항상 살아계신 아버지, 제가 이제야 비로소 당신의 딸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작은 딸로 당신이 주신 생명과 사랑으로 저 자신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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