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디드 차일드 & 원더풀 차일드
초등학교 5학년때 새로 사귄 은지는 우리 반 부반장이었다.
은지네 집에 처음 간 날, 나는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은지의 삶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잔디가 깔린 너른 마당이 있는 집도 놀라웠고, 자매들이 각자 자신의 방을 쓰는 것도 놀라웠다.
엄마가 새벽에 장사를 나가지 않고 도시락을 싸주는 풍경도 놀라웠다.
은지 엄마는 김치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맥심 커피병에 김치를 담고, 라면봉지에 담아 노란 고무줄로 묶어서 작은 가방에 담아주셨다.
부러워서 그랬을까? 나는 매일 아침 은지네 집으로 달려가 은지 엄마가 도시락 싸시는 풍경을 쭈그리고 앉아 지켜보며 두려움을 키웠다. 은지 엄마의 손길이 마치 나를 어루만지는 손길처럼 느껴져 약간은 중독적이기까지 했다.
나의 일상은 달랐다. 아침에 눈뜨면 엄마는 벌써 새벽장사를 나가고 안 계셨다. 스스로 아침밥을 챙겨 동생들과 함께 먹고 설거지까지 하고 학교에 등교하던 나로서는 엄마가 장사를 나가지 않고, 부엌에 앉아 도시락을 싸주는 풍경이 소름 끼치도록 부럽고 놀라운 풍경이던듯하다.
어느 날, 은지 엄마가 도시락을 싸시는 틈에 나는 조심히 은지네 집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때 남몰래 슬그머니 문을 열어보았던 방. 미대에 다니는 은지의 큰 언니 방이었다. 초록색 풍경화가 그려진 캔버스와 이젤, 여기저기 쌓여있던 물감이 생각난다.
그 방이었다. 골목길을 누비며 뛰어놀던 맑고 순진했던 아이가 사라진 곳. 물감냄새가 가득하던 큰 언니의 방. 그곳에 어린 경아가 벽을 바라보며 등을 구부린 채 얼굴을 파묻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너 경아니?"
"......"
질문을 던져도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 방 모서리에 머리를 처박고 웅크리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나 마음은 안타까웠다.
"경아야..., 경아야..."
낮은 소리로 이름을 계속 불러주었다.
아이가 좀 힘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경아야, 이제 괜찮아. 모든 것이 다 잘되었어."
어느 순간, 아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만화 속에 놀란 아이처럼 여러 개의 원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다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이의 눈빛이 충격적이었다. 내가 저 눈빛으로 저렇게 혼란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순간 자각되었다. 그 당시는 내면아이라는 개념조차 모르던 때였으므로 저 아이를 위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지만, 내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한 순간이 그곳에 머물러 있다는 발견은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은지네 집에서 두려움을 만난 이후, 그 두려움이 내 삶을 이끌어 왔다. 사람들을 어려워하고, 쉽게 주눅 들고 움츠러들었다. 친구를 새로 사귀는 것도 힘들었다. 성취욕을 발동하다가도 이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감을 잃었던 이유들도 이해가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그리지도 않는 미술도구들을 사 모았는지, 내가 왜 그렇게 정신없이 혼란스럽게 살았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중요한 삶의 순간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막막해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던 혼란들도 이해가 되었다. 왜 때때로 어린아이 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분노하고 돌아서버리고 도망치며 살았는지도.
내 안에 살고 있는 나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내 삶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는 발견은 충격적면서도 큰 해원의 느낌도 있었다. 지금껏 그 고통을 방치했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고통의 원인을 찾은 느낌이랄까. 이제 나는 더 이상 상처받은 아이로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씩씩하고 건강한 나를 다시 만난 것도 좋았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우물가 공터에서 나는 두려움이 없었고 주눅 들지 않았으며 가난한 부모와 살림살이가 부끄럽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공평하게 지냈고, 내 안에 있는 그대로인 나로도 충분했던 행복한 아이였다. 동생이 딱지를 잃고 오면 달려 나가 그 딱지를 다 따오던 야무지고 당찬 아이였다. 친구들과 가족들을 사랑하던 원더풀 차일드였던 것이다. 내 안에 상처받은 아이와 더불어 씩씩하고 모험심 많으며 사랑이 충만한 원더풀 차일드도 함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당시 썼던 글을 보니 그 느낌이 더 크게 와닿는다.
"어린 경아가 이렇게 씩씩하고 맑은 줄 지금껏 몰랐습니다.
우물가 공터에서 뛰어놀던 어린 경아에게 위로를 받습니다.
이제 나의 두려움을 내려놓아야겠습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아야겠습니다.
가난에 대한 열등감으로 낙오자처럼 자존감이 떨어졌던 어린 시절의 은지네 집으로부터
이제는 그만 나와야겠습니다."
내 안에는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경아도 살지만 존재 자체였던 씩씩한 경아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은지네 집으로부터 이제는 그만 나와야겠다고 마음먹는 것도 치유의 시작 버튼을 누른 것이리라. 물론 순식간에 되지는 않아서, 은지네 집으로부터 나오기까지 2년의 세월이 흘러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