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장소는 어디인가요? "
몇 년 전, 어느 글쓰기 모임에서 이 주제로 글을 써야 했을 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했던 장소가 떠오르지 않아 며칠 째 끙끙거렸다.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으니, 행복했던 장소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며칠을 고심하다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막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비로소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당동 우물가 공터.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우리는 얼마 되지 않는 짐을 꾸려 논밭에 둘러싸인 사당동의 한 마을로 이사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사당동 일대는 개발이 되지 않은 농촌마을이었다. 숭실대에서 남성역 방향 도로는 복개되기 전이라 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개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봉천동과 경계가 되는 산 바로 아래 첫 집이 우리가 세 들어 살던 은행나뭇골의 작은 집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우물이 있고, 우물 주변으로 제법 너른 공터가 있었는데, 그 공터 옆으로 큰 기와집 두 채가 기억난다. 이 씨 왕가의 산소를 관리하는 양반가 집이라고 했다. 그중 한집에는 돼지를 키우고 있어서 쌀뜨물 등을 받아서 가져다주기도 했었다. 그 두 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품팔이를 하며 먹고사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가진 것 덜 가진 것 별반 차별 없던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콧물을 닦으며 함께 뛰어놀며 자랐다. 그 마을 한가운데 마을 사람들이 물을 길어 먹고 빨래를 하던 우물이 있었고, 우물 주변으로 제법 너른 공터가 우리들 놀이터였다.
거기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르며, 내 삶에서 가장 근심 걱정 없던 시절이 그때였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그 시간이 지난 이후, 제대로 떠올려 본 적도 없는 어린 시절의 한 때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놀던 그 마당, 그 골목길이 내 삶에 다시없을 행복한 순간이었다니, 그걸 잊고 살았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 공터에서 우리는 비석치기, 자치기, 오징어게임 같은 놀이를 하며 놀았다.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새를 쫓고, 메뚜기와 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기도 했다는 기억이 떠오르자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그 공터에서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자주 했는데, 특히 물구나무서듯 손을 땅바닥에 대고 일명 '삿가락질'을 하는 단계가 되면 나의 진가가 발휘되곤 했다. 아이들은 내가 너무 잘해서 고무줄만 잡고 있으려니 재미없다고 툴툴대기도 했다.
겨울이면 땅을 파 홈을 내고 자치기를 하였다. 새끼자를 톡 쳐서 튀어 오르면 야구공을 치듯 멀리 쳐내는 놀이였다. 나는 자치기를 꽤나 잘했던 기억이 난다. 서로 내가 멀리 갔느니, 쟤가 더 멀리 갔느니 실랑이하면서도
우리는 싸운 기억 없이 잘도 놀았다.
공터 바로 옆에 살던 나와 동갑이었던 정식이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항상 웃음으로 답하던 정식이가 발작을 일으킨 곳도 우물가 마당이었어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입에 나뭇가지를 물려줘야 한다거나, 건드리면 안 된다는 둥, 나름대로의 상식을 외쳐대며 정식이를 함께 지켰다.
여름밤, 밤새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했던 기억이 가장 새로웠다. 산비탈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라 경사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마을 골목골목을 뛰어다녔다. 숨을 헐떡거리며 '찾았다!'를 외치기도 하고, 들켜버린 것을 억울해하며 한숨을 내쉬기도 하면서 자정 가까이 뛰어놀곤 했다. 멀리서 엄마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술래잡기는 끝이 났다.
"얘들아, 열 두시다. 자야지, 빨리 들어와라!"
그래, 그랬구나.
그 우물가 공터에서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상처 없이, 가난에 대한 근심과 고생하는 엄마에 대한 연민, 무기력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마음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았구나. 그 우물가 공터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 멋진 아이였구나. 상처받지 않은 본래의 나였구나.
그런 발견을 하자마자,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게 해맑던 아이가, 왜 이렇게 상처 많은 아이가 되었을까?
그렇게 건강하게 뛰어놀던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질문을 던지자마자 마치 공간이동을 하듯, 어떤 한 곳에 머물고 있는 내가 발견되었다. 그 방이 어디인지 나는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그 작은 방구석 모서리에 머리를 처박고 웅크리고 앉은 채 떨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
슬픔이 엄습하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곧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조심히 그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경아니? "
아이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나는 왜 어린 내가 그 방에 그런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는지, 한순간에 알아차렸다.
그래,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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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2일.
제주도에서 올라오자마자 썼던 그림일기
서툴지만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글과 그림을 함께 썼다.
나의 내면아이와 처음 만났던 순간이다.